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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시평] 팰런티어 현상

실리콘밸리의 이단아
애국주의로 무장한
AI 시대 무기상
21세기 전쟁 보여줄
수정구슬인가

  • 기사입력:2025.08.03 17:33:54
  • 최종수정:2025.08.03 17: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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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35 전투기를 만드는 록히드마틴의 주식 시가총액은 1000억달러가 안 된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팰런티어는 3700억달러를 넘는다. 매출은 록히드마틴이 25배 많은데 몸값은 팰런티어가 4배 비싸다. B2 스텔스 폭격기를 생산하는 노스럽그러먼이나 원자력 잠수함을 건조하는 제너럴다이내믹스와 견줘도 마찬가지다. 팰런티어 수장 앨릭스 카프가 큰소리칠 만하다. "항공모함과 전투기는 소프트웨어의 액세서리가 될 것이다."

팰런티어는 숨은 것들을 찾아낸다. 모래알 같은 데이터를 걸러내고 이어 붙여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한다. 9·11 테러를 못 막은 정보기관은 이 회사에 자금을 댔다. 아프가니스탄 반군이 숨겨놓은 급조 폭발물에 엄청난 희생을 치른 군은 팰런티어의 정보 분석에 목말라 했다. 전쟁은 도약의 기회였다. 카프는 러시아 침공 직후 키이우로 날아갔다. 우크라이나 전장은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의 위력을 보여줄 실험장이 됐다.

팰런티어 주가는 한 해 순익의 670배(예상 순익의 277배)까지 치솟았다. 거품이 언제 꺼질지를 놓고 벌이는 월가의 내기는 접어두자. 하나의 현상으로서 팰런티어의 아찔한 부상을 지켜보면 전쟁과 기술, 지정학과 자본시장 흐름을 가늠할 수 있다.

카프는 단언한다. 21세기는 소프트웨어의 세기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이 투하된 지도 80년이 지났다. 핵이 가장 중요한 전쟁 억지력이 되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이제 AI가 그런 억지력이 될 것이다. AI 개발에 총력전을 펴는 중국은 미국을 제칠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맨해튼프로젝트처럼 과학기술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협력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카프는 실리콘밸리의 이단아다.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몽상가이자 진보주의자임을 자처한다. 공동 창업자인 피터 틸 팰런티어 회장은 도널드 트럼프를 밀었다. 그는 조 바이든과 카멀라 해리스를 지지했다. 그런 카프가 트럼프 때 황금기를 만난 것은 왜일까. 때마침 터진 전쟁과 생성형 AI 기술에서 기회를 찾았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는 다른 이들에게도 주어진 기회다. 그만의 무기는 철석같은 애국주의다.

카프의 세계는 미국과 적국으로 나뉜다. 이 위험한 세계에서는 어느 한편에 확실히 서야 한다고 본다. 팰런티어는 중국이나 러시아와는 사업하지 않겠노라고 했다. 그의 일은 숱한 도덕적 딜레마에 부딪힌다. '팰런티어는 이스라엘과 함께한다'는 뉴욕타임스 전면광고는 어떤 눈총도 의식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카프는 잘라 말한다. "전장에서 우리 병사들을 보호하고 적들을 죽이는 게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그는 진보적 자유주의와 세계주의에 젖은 실리콘밸리 엘리트들이 위선적이라고 공박한다. 엉클 샘 덕분에 억만장자가 됐으면서 어떻게 국가 안보에 협력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들은 국가와 인류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온라인 광고와 쇼핑, 소셜미디어, 동영상 공유, 음식 배달 플랫폼 같은 사소한 것들을 개발해 떼돈을 벌려 한다. 팰런티어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미움 받던 기업이었다. 하지만 이제 기술 기업들의 태도는 달라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처럼 군이나 정보기관들과 엮이기를 주저하던 빅테크들도 이 악동 같은 기업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팰런티어라는 이름은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수정구슬에서 따왔다. 이 비밀스러운 기업이 바로 트럼프 시대 분절된 세계의 전쟁과 기술, 자본 흐름의 변화를 보여줄 수정구슬인지 모른다. 미친 듯이 오른 주가보다 이 기업의 부상이 가리키는 냉혹한 현실을 봐야 한다.

[장경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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