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빌리어드뉴스 MK빌리어드뉴스 로고

[매경시평] 새 정부, 조직개편보다 중요한 것

과거 섣부른 경제부처 개편
국가 경제위기 초래하기도
가장 중요한 건 '인재' 중용
쓴소리하는 사람 기용하고
대통령은 열린 귀로 경청을

  • 기사입력:2025.06.01 17:23:43
  • 최종수정:2025-06-01 17:25:00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사진설명
내일이면 새 대통령이 선출된다. 아마도 새 대통령은 당선 첫날은 기쁘겠지만, 당장 그다음 날부터 인수 기간도 없이 직무를 수행해야 되니까 많은 시급한 현안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명분을 앞세운 정부 조직 개편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이미 선거 전부터 각종 개편론이 무성했고 특히 경제 부처 개편에 관한 여러 가지 입장이 있었다.

권한이 집중된 기획재정부 쪼개기, 인공지능(AI) 시대에 대응하는 특별 조직 신설, 기후변화에 대응해 에너지와 기후를 같이 다루는 부처 신설 같은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어느 정부든 초기에 가장 먼저 손대고 싶어 하는 것이 그 정부의 색깔을 담은 조직 개편이지만 국민의 공감을 오래 사고 그 타당성을 유지해 나갔던 적은 별로 없던 것 같다.

최악의 작품은 YS 초기 재정경제원의 출범이다. 경제 기획, 재정, 금융, 세정 등을 한 부처에 몰아넣고 무소불위의 공룡 부처를 만든 것이다. 모든 다른 부처가 재경원의 1중대, 2중대가 됐으며, 논쟁으로 최대공약수를 뽑던 경제기획원, 재무부, 상공부 등 3개 핵심 경제 부처의 에이스 관료들 간 치열한 밤샘 토론은 사라져버렸다.

기아, 한보 등 대기업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은 튼튼하다'는 거시경제 타령은 한국을 IMF로 가게 만들었다.

통상 분야가 외교부로 갔다가 산업부로 다시 오고, 과학기술이 교육부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정보통신이나 에너지 분야로도 왔다 갔다 했다. 문화가 체육에 붙었다 관광에 붙었다 하면서 문화산업 발전은 힘을 받지 못했다. 수산 분야가 농업과 한 식구였다가 이제는 해양 분야와 한 지붕을 쓰고 있다. 식품이 보건 영역이었다가 농수산 영역이 됐다.

정부 조직 개편은 '새 정부의 보여주기식' '개편을 위한 개편'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특히 경제 조직은 더 신중해야 한다.

섣부른 조직 개편으로 인해 지식·경험·인력이 전문화·집적화되지 못하고 국가 경쟁력 향상에 부정적 역할을 한 사례는 많다.

우리 경제는 험난해진 세계 경제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한 극한 투쟁을 벌여야 할 위기의 순간이다. 이는 성장, 투자, 수출 등 경제지표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실물경제 분야는 산소호흡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새 정부 초기 경제 관료들이 노련한 집도의처럼 시간을 다퉈 이런 상황과 부딪혀 나가야 할 때 조직 개편의 와중에서 이들이 몸을 사릴 상황이 결코 아니다.

시급한 행정 수요나 개선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중요한 행정 조직 개편은 장기적 안목에서 숙의를 거치면 좋겠다.

정부 조직 개편보다 지금 더 중요한 것은 '좋은 사람'을 쓰는 일이다. 경제부총리를 위시한 경제 부처 각료들은 위기의 구원투수 역할을 해야 할 때다. 이론과 솜씨를 겸비한 명장들의 시간이다. 캠프에서 공약을 만드는 데 기여한 교수나 정치인들은 다음 인선에서 보상해줘도 늦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의 진념이나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의 윤증현 수준의 레전드급 인물이 등장해 경제난을 뚝심 있게 타개하고 새 대통령에게 바른 소리,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삼고초려해서라도 모셔와야 한다.

좋은 사람을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열린 귀'다. 이전 두 대통령이 회의나 보고 때 툭하면 던지던 '맞죠? 내 말 맞죠?'라든지 '그게 말이 돼요?' 등의 일방적 언어는 소통을 막고 정부 의사결정을 왜곡할 뿐이다. 경제 정책에는 '탈원전' 같은 자해적 이념이 들어갈 여지를 막는 것이 신임 대통령의 책무다.

[조환익 국민대 교수·전 한국전력공사 사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