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외교가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위대하게)라면 중국 외교는 다른 종류의 마가(Make Asia Great Again·아시아를 위대하게)다. 4월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앙주변공작회의에서 주변 운명공동체를 강조했는데,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내세워 중국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성동격서 우회전략이다. 미·중의 핵심 이익이 격렬히 부딪히고 있다.
삼국지에 '공성계'라는 말이 있다. 사마의 10만 대군에 단 2000 병력으로 포위당한 제갈량이 오히려 갇힌 성의 사대문을 활짝 열어버린다. 사마의 군이 입성하면 제갈량을 끝낼 수 있었으나 오히려 철군해버리는데, 알면서도 물러간 것일 수 있다. 왜냐하면 둘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적대적 공생 관계이기 때문이다. 작금의 미·중도 마찬가지다. 미·중은 사활적 국면에 돌입했으나 결판은 차세대에서 날 듯하다. 개인적으로 J D 밴스 미국 부통령 등 1980년대생 바링허우 세대에게 주목한다. 중국의 바링허우 리더십도 시진핑 같은 카리스마를 발휘할지 알 수 없으나 2032년 이후 이들의 비전과 능력이 양국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최근 국제질서의 한 흐름은 글로벌 사우스 같은 유동 국가들의 부상이다. 길게 보면 한 극일 수 있으나 갈 길이 멀다. 현시점에서 국제질서는 천하삼분지계, 미·중·러 글로벌 삼국시대 조짐이다. 현재 러시아는 군사력, 중국은 미국의 3분의 2 종합 국력으로 한 부분씩을 차지한다. 미국은 중·러를 분열시키려 하고, 중국은 촉오동맹처럼 중·러 연합을 유지하려 한다. 중·북 관계만이 아니라 중·러 관계도 순망치한(脣亡齒寒)이다. 중·러가 분열하면 중국은 혼자 미국을 상대하기가 어렵다. 러시아는 중국을 내심 견제하지만 미·중 사이 이익을 취하려 할 뿐, 당장에 중·러 분열 생각은 없다.
치열한 미·중 경쟁은 많은 유동 국가를 진퇴양난에 빠지게 한다. 이들은 국익 차원에서 각자도생이다. 한국은 삼국지에서 위촉오가 노렸던 전략적 요충지 형주에 해당된다. 당시 형주는 비전 없이 현실에 안주하고 내부 분열하다 위촉오에 휘둘린 후 사라졌다. 현재 한국은 주변 4강이 노리는 형주 같다. 지난 정부는 과도한 가치외교로 적과 나를 나눠 고립무원을 자초했고 외교 퇴로를 차단했다. 그럼 신정부 외교 방향은 어떠해야 하나.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불확실성, 불가측성 시대에 가장 유용한 대응책은 강력한 실용외교이다. 비전을 제시하고 블루오션을 선점하는 좌표외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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