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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포럼] 부동산 공약 부실, 집값은 안녕한가

강남은 과열, 지방은 미분양
양극화 심화에도 해법은 실종
'공급 확대' 구호만으론
시장 안정 기대 어렵다

  • 심윤희
  • 기사입력:2025.06.02 17:31:54
  • 최종수정:2025.06.02 17: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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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제20대 대선은 '부동산 대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민심이 악화되자 후보들마다 '미친 집값'을 잡을 소방수를 자처했다. 감세,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그린벨트 해제 등 백가쟁명식 공약이 쏟아졌고, 윤석열·이재명 후보는 각각 250만가구, 311만가구 공급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이번 대선의 부동산 공약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주요 후보들의 공약집을 들여다봐도 특별한 내용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공공주택 확대와 재건축 용적률 상향을,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노선 확충 등을 언급했지만, 디테일한 로드맵이나 실행 계획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존 정책의 재탕, 삼탕이라는 인상마저 준다.

이번 대선에서 부동산이 주요 이슈가 되지 못하는 것은 시장이 겉으로는 안정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영향으로 아파트 가격은 2022년 상반기 고점을 찍은 후 하락세로 전환됐다. 시장이 식은 지금, 굳이 예민한 부동산 문제를 꺼낼 필요가 없다는 정치권의 계산도 깔려 있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의 고요함은 태풍 전야의 정적과 같다. 그 이면에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들이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부동산 시장의 극단적인 양극화다. 서울 강남 3구 등 핵심 지역은 수요가 집중되며 집값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서초구에서는 최근 전용면적 84㎡ 아파트가 70억원에 거래되며 3.3㎡당 2억원을 돌파했고, 신고가 경신도 이어지고 있다. 반면 수도권 외곽과 지방은 침체와 미분양 급증에 시달리고 있다. 전국의 '악성 미분양' 물량은 2만6000가구로, 12년 만에 최다치를 기록했다. 지방 수요 위축이 주요 원인이지만, 양극화를 가속화한 것은 다주택자에 대한 세제 규제가 촉발한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이다. 양극화는 단순한 지역 간 격차를 넘어 계층 간 자산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부동산 자산이 부의 주요 축인 한국 사회에서 이 같은 양극화는 중산층 붕괴와 사회 불안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건설사의 연쇄 도산과 사업 중단은 또 다른 시한폭탄이다. 미분양이 쌓이면서 지난 1~2월 폐업한 건설사만 전국적으로 100곳을 넘어섰다. 건설사 경영 악화와 도산은 향후 공급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 3~4년 후 주택 공급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인 인허가, 착공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는 것은 시장 불안을 키우고 있다. 원자재 가격, 공사비 급등으로 인해 공급이 위축된 상황에서 매수심리에 불이 붙으면 집값 불안은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

대선 후보들은 '공급 확대'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얼마나, 어떻게, 누구에게 공급할 것인지 구체적인 청사진은 빠져 있다. 특히 지방은 공급 과잉이고, 수도권은 공급이 크게 모자라는 상태인 만큼 단순한 공급 확대는 해법이 될 수 없다. 지역별로 정밀하게 설계된 차별화된 처방이 필요하다.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집값이 뛴다"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침체된다"는 식의 정치적 기대심리가 팽배하다. 차기 정부가 장기적이고 일관된 부동산 정책 로드맵 없이 출발한다면, 과거 정권들처럼 시장 흐름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현재 부동산 시장은 작은 시그널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불안정한 상태다. 새 정부의 정책이 신중하고 치밀해야 하며, 중장기적인 균형과 안정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에 대한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정확한 진단과 실효성 있는 처방이다. 부동산 정책은 더 이상 정쟁의 도구가 아니라 국가 미래를 설계하는 핵심 수단이 돼야 한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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