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장악한 모바일 운영체제(OS) 시장에서 안드로이드를 지우고 자체 OS로 작동하는 스마트폰을 출시한 것. 한국 언론은 이를 화제 삼아 거론했지만,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삼성과 알리바바도 이루지 못한 성취"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과거 삼성은 타이젠 OS, 알리바바는 원 OS를 개발했지만 시장 진출에 실패했다. 소비자가 구글과 애플 우위의 OS 환경에 익숙해졌기 때문. 새로운 OS에 탑재된 생소한 앱 서비스 환경이 반가울 리 없다. 업계는 이런 높은 진입장벽 때문에 OS 신규 사업자가 구글과 애플의 틈새에서 시장점유율 '16%' 이상을 얻어야 연구개발 투자 대비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파악한다.
선도 기업의 실패에도 화웨이는 자신감이 넘쳤다. 자사가 보유한 고숙련 개발자들과 공격적 투자로 충분히 이뤄낼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여기에 스마트폰 제조 사업과 시너지, 애국 소비 움직임 등 전략적 판단이 더해졌다. OS 독립선언 이후 시장조사 업체들은 화웨이가 충분히 역내 두 자릿수 점유율을 달성할 것으로 관측한다.
지난해 모바일 OS 독립선언에 이어 화웨이는 19일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PC 시장에서도 미국의 '윈도' OS를 극복한 자체 OS 기반의 노트북을 출시한 것. 화웨이는 이 프로젝트에 5년 이상의 시간과 1만명의 엔지니어를 투입했다고 밝혔다.
화웨이는 20만명의 임직원 중 절반이 엔지니어다. 10만명의 인재를 향해 작년 매출의 20.8%인 35조원(약 1800억위안)을 연구개발비로 투입했다.
충격적인 사실은 한국의 삼성전자가 작년 화웨이와 같은 35조원을 연구개발비로 썼다는 점이다.
같은 돈을 쓰고 한 기업은 연달아 혁신의 이정표를, 다른 기업은 지속가능 성장에 물음표를 키운다. 최소한 어느 한 곳은 잘못된 투자 방향을 설정했거나, 개발자 생산성이 비교 열위이거나, 개발비 순환 과정에 누수가 있다는 뜻이다.
한 집 건너 삼성 주식을 가진 우리는 언제부턴가 삼성의 거대 연구개발비에 '허리띠를 졸라매도 연구비는 아끼지 않네'라고 안도해 왔다. 그런데 화웨이의 35조원은 이런 인지 부조화 심리를 흔들어 깨운다.
"당신의 35조원에는 우리에게 없는 비효율이 많은 것 같다"고.
[이재철 글로벌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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