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이 실제로 해보는 행위. 또는 그로부터 얻은 지식이나 기능.’
국어사전에 실린 ‘경험’이라는 단어의 정의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경험의 본질은 직접, 그리고 실제로 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 기술 역사가 진화하면서 경험의 개념이 변해가고 있다. ‘직접 경험’이 사라져가는 모습이다. 대면 소통 대신 카톡 연락이 편해졌고 지도 앱 도움 없이 길을 찾는 건 미련한 일이 됐다. 인간과 대화보다 인공지능(AI)과 소통이 더 빈번해진 시대다. 기술을 매개로 한 경험이 직접 경험보다 더 우선하는 세상이 됐다.
저명한 인류 지성사 연구자인 저자는 직접 경험이 사라진 요즘 세대에 대한 경각심을 드러낸다. 이러한 현상은 날 때부터 디지털 세대였던 요즘 청소년 사이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1년 동안 소셜미디어 사용을 중단할 것인지 아니면 투표권을 포기할 것인지 선택하라는 질문에 10대 사용자 64%가 ‘투표권을 포기하겠다’고 답했다. 전 세계 청소년 53%는 자신이 선호하는 기술을 잃느니 ‘후각을 잃는 편을 선택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저자는 기술 매개 경험이 직접 경험을 추월하는 시대가 왔다고 선언한다. 우리는 더 이상 경험으로부터 현실을 배우지 않는 대신, 가상 체험을 통해서 실제 경험을 모방한다는 것이 저자 생각이다.
저자는 기술로 매개된 경험이 직접 경험을 압도하게 된 원인을 분석하고 인간다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다른 무엇보다 ‘최적화’만을 선호하는 기술 사용자, 그리고 이러한 기술을 설계한 빅테크 기업 이익 추구 행태를 꼬집는다. 혼란과 마찰로 가득한 현실 세계를 외면하는 대신 가상 세계를 선택하는 대가로 우리 세대가 잃어버리고 있는 가치들을 조명한다. 불편함과 동시에 인간의 조건이 되는 현실 속 경험까지 함께 제거해나가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책을 읽지 않고 유튜버 요약본을 감상하는 일은 독서의 종말을, 문서 작성을 AI에 맡기는 건 생각의 종말을, 지시어 입력만으로 그림을 얻는 일은 창작의 종말을 앞당긴다.
경험 멸종의 시대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이에 저항해야 한다는 게 저자 주장이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2호 (2025.06.04~2025.06.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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