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전북 한 물류센터 관계자는 중국 이커머스 기업 징둥에 물류센터 검토 요청 의견을 보냈다. 징둥이 국내 물류 시장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임차인'을 모시기 위해서다. 이 관계자는 "임차료를 깎아도 기업들이 오지 않는다. 특히 지방은 더욱더 소비가 침체돼 기업들이 투자하려 하지 않는데, 중국 대형 기업이 국내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공실이 해결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이 국내 공략을 가속화하면서 국내 유통·물류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조짐이다. 국내 물류센터가 포화 상태인 만큼 C커머스가 싼값에 국내 물류기지들을 싹쓸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2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물류센터 확보에 나선 중국 기업 징둥을 향해 국내 기업들의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기존 물류센터 건물 내지는 용지를 싼값에 제공해주겠다는 제안이 징둥 측에 빗발치고 있는 것이다.
중국 1위 이커머스 업체 징둥은 이미 국내에 물류센터 2곳을 연 데 이어 추가 물류센터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 이 회사는 고객 위탁을 받아 재고 보관, 주문 처리, 포장, 발송 등 '풀필먼트' 서비스를 해주는 서드파티 물류(제3자 물류) 서비스를 시작했다.
징둥의 구상은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 주요 대도시를 아우르는 창고·유통 네트워크를 구축해 '2~3일 내 배송 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징둥은 "향후 12개월 안에 해외 창고를 확장해 총면적을 100% 늘리겠다면서 "올해 동남아, 일본, 한국 등에 신규 물류센터를 신설하는 데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징둥의 지난해 연 매출은 1조1588억위안(약 220조1720억원)으로 쿠팡의 5배 규모다.

징둥,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이 앞다퉈 국내 물류센터를 확보할 경우 국내 유통 생태계를 이들이 장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국내 물류·배송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온라인 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이 한국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물류망을 넓혀가는 것은 예견된 수순이 아니겠느냐"며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C커머스가 한국 물류망을 대거 장악할 경우 단순히 다량의 중국 제품을 한국에 파는 수준의 영향력을 넘어 국내 유통 생태계에 심각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물류망을 장악하면 중국 기업들이 한국의 브랜드 제조사, 택배업계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다"며 "한국 정부와 기업들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국내 물류센터가 포화 상태여서 C커머스의 물류기지 확보가 어렵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공급 과다로 공실률이 치솟던 국내 물류업계는 거세게 밀고 들어오는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 전문 플랫폼 알스퀘어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 수도권 물류센터의 공실률은 상온센터가 16.0%, 저온센터는 38.5%에 달한다. 이런 가운데 C커머스가 구세주로 떠오른 것이다.
전국 곳곳의 물류센터를 징둥을 비롯한 중국 업체들이 헐값에 사들이면 향후 국내 업체들이 중국 플랫폼에 물류를 위탁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물류센터들이 중국산 제품 위주로 채우면 국산 제품의 배송 경쟁력이 약화되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징둥은 국내에 물류창고 인프라를 어느 정도 완성한 뒤 판매 사이트인 징둥닷컴을 국내에 오픈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미 C커머스 업체의 파급력은 시장에서 확인됐다. 국내 시장에 먼저 진출한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는 초저가 공세를 앞세워 빠르게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이미 알리·테무의 위력은 확인했는데, 이보다 몇 배 더 큰 징둥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영업을 하면 국내 이커머스·제조사들은 생존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우려했다.
업계에서는 쿠팡·네이버 양강 구도가 굳어지는 한국 이커머스 판도에서 중국 플랫폼의 '물량전'까지 더해질 경우 중소 업체들이 버틸 수 있도록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알리·테무 이후 중국 플랫폼의 품질 인증이나 개인정보 침해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징둥 등의 물류 공세까지 합쳐지면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선희 기자 / 박홍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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