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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관세도 결국 세금인데…

  • 정양범
  • 기사입력:2025.02.27 15:58:23
  • 최종수정:2025.02.27 15: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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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전쟁은 세금 문제에서 발단되었다. 1765년 영국은 세수 부족을 메꾸기 위해 식민지 미국에서 생성되는 서류에 인지세를 내도록 법(Stamp Act)을 제정했다. 이에 주민들은 그들의 대표가 영국의회에 나가 찬성을 한 적이 없으므로 그 세금은 부당하다며 저항했다. 그때 나온 슬로건이 “대표 없이는 세금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이다. 이것은 의회의 입법 없이는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조세법률주의’를 나타내는 유명한 말이 되었다. 미국은 건국부터 지금까지 이 조세법률주의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같은 세금이면서도, 관세는 의회의 승인없이 대통령 독단으로 올리고 내릴 수 있게 되었다. 트럼프가 이 점을 십분 활용하여 판을 흔들고 있으니 국제사회가 어수선하다.

관세의 역사는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로 거슬러 올라간다. 관세 Tariff의 어원은 ‘가격표’라는 의미의 라틴어 ‘Tarifa’이다. 관세의 정의는 외국에서 수입되는 상품과 서비스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우리나라도 대외 무역의 역사는 길지만, 조선시대에 와서야 일본과 무역이 일어나는 부산에 세리를 보내서 징세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근대적 의미의 관세는 1882년 체결한 미국과의 통상조약에 처음 등장하였다.

독립 당시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세금에 대해 이런 밑그림을 그렸다. “각 주는 독립국이니 독자적 과세권이 있고, 미 연방은 하나의 큰 자유 무역지대(FTZ; Free Trade Zone)이다. 외국에서 이 FTZ로 수입되는 상품에는 관세를 부과하고, 그 관세율 결정권 및 징수권은 연방에 속한다.”

건국의 아버지 중 3명은 달러 지폐의 모델이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독립선언문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 그리고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이다. 해밀턴은 제조업 중심의 보호무역주의자였다. 그는 1791년 ‘제조업 보고서(Report on the subject of manufacture)’에서 “제조업의 융성이 곧 독립이며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이다.”라고 설파했다. 이에 대조되는 입장을 취한 이는 제퍼슨이다. 그는 농업 중심의 자유무역과 낮은 관세를 주장하였다. 그때부터 미국에는 높은 관세의 보호무역주의와 낮은 관세의 자유무역주의라는 두가지 무역정책이 생겨나 지금까지 대립하고 있다.

제조업 부흥을 통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이룩하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가 가장 아름다운 말이며(the most beautiful word), 나는 관세 맨(Tariff Man)이다.”고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실제로 그는 기존의 협약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관세를 부과하려 준비 중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고, 그 뿌리는 약 250년 전의 해밀턴에 있다. 트럼프 무역정책의 지지자이며 구루(Guru)는 트럼프 1기에 무역대표부(USTR) 수장이었으며, 지금도 무역정책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라이트하이저(Robert Lighthizer)이다. 얼마 전 그는 <자유무역은 없다 No Trade is Free>라는 책을 냈다. 트럼프 정부 무역정책의 뿌리를 알고,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간파하려면 우선 그의 생각을 읽어야 한다. 라이트하이저는 무역정책에 관한한 트럼프와 똑같은 DNA를 가지고 있다고 재차 강조한다.

라이트하이저의 주장은 해밀톤과 맥을 같이한다. 제조업을 부활시키는 것이 국가안보를 위한 것이며, 자유무역은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체제에서 1995년 WTO(세계무역기구) 체제로 넘어 가면서 이미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특히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한 후, 중국 때문에 미국은 철저히 망가졌다고 단언한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해 그와 트럼프는 ‘역사상 최악의 실패작’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그는 NAFTA의 혜택이 조약 당사국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제3국 특히, 중국, 일본, 유럽, 한국 등에게 돌아갔고, 현지부품(Local content) 비율 규정은 그들이 미국으로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도록 뒷문을 열어 준 꼴이 되었다고 비난한다. 그로 말미암아 NAFTA의 최대 희생양은 자동차 등 제조업 근로자들이었다고 주장하며, 미국 동북부 Rust Belt(제조업 쇠퇴 지역)의 근로자들이 MAGA를 받아들이도록 유도하였다. 그 결과는 작년 11월 대선에서 나타났다. 경합 주라고 예상되었던 미시간, 오하이오, 펜실베니아, 위스콘신 등 Rust Belt의 근로자들은 트럼프에게 압승을 선사하였다. NAFTA가 트럼프 1기 때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의 주도로USMCA로 대체되었지만, 그들은 지금도 같은 말을 되풀이 하고 있다. “USMCA에 무임 승차하여 미국에 들어오려는 상품을 차단해야 한다.”

라이트하이저는 2012년 발효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그의 생각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은 자동차와 반도체 등에서 미국의 무역적자를 심화 시키고 있다. 트럼프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고, 불응 시 자유무역협정은 취소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그는 이 말을 덧붙이며 위협한다. “트럼프와 나의 본능적 직감(Instinct)은 항상 옳다.”

트럼프가 기존의 무역협정을 무시하고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많다. 내국세는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관세는 대통령의 재량이다. 1930년대 대공황 때 제정된 상호무역법(Reciprocal Trade Act)은 당시 60%까지 육박한 관세율을 호혜적 협상으로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관세 결정권을 주었다. 그 권한은 지금 트럼프가 조자룡 헌 칼 쓰듯 마구 휘둘러 대는 무서운 전가의 보도로 변질 되었다.

최근 철강과 알루미늄의 수입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근거로 든 것은 무역확장법(Trade Expansion Act of 1962)의 ‘국가안보’이다. ‘국가안보’는 해밀톤에게서 나온 것이다. 또 외국의 불공정하거나 차별적인 무역관행에 대해서는 통상법(Trade Act of 1974) 상의 301조에 따라 보복관세를 때릴 수 있다. 이런 무소불위의 파워를 가진 트럼프이지만, 그의 관세를 통한 보호무역과 제조업 부흥의 논리에 맞서는 학자 또한 아직 많다.

다트머스 대학의 더글라스 어윈(Douglas Erwin) 교수가 그 중의 한명이다. 제퍼슨의 주장은 그를 통해 아직 살아있다. 그는 관세인상을 통한 보호무역은 소비자를 희생하여 생산자를 돕는 정책이고 종국에 그 실익은 하나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분업과 자유무역의 이점을 설명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 연결되기에 많은 경제학자가 동감하고, 트럼프의 정책이 경제를 냉각시킬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중국산 제품의 수입으로 미국에 제조업 일자리가 많이 사라졌다고 주장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실례로 연방준비은행의 통계는 노동인구와 취업자 수는 항상 우상향으로 증가하여 왔음을 보여주고 있고,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자발적 실업을 감안하면 거의 완전고용 상태이다.

미국 남부,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체감하는 트럼프 정책은 아슬아슬하고 답답하다. 북동부의 러스트 벨트이든 남부의 바이블 벨트(Bible Belt)에 인접한 신흥 K자동차 벨트이든 일자리는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인력 부족에 그곳의 공장들은 일년 내내 직원을 모집하고 있다. K 자동차, K 배터리, K 전자를 따라 미국에 진출하여 현지 공장을 운영하는 한국 기업들에게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인력난이다. 값싼 인력만 구하기 때문에 인력난을 겪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역 평균임금 보다 낮게 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마땅한 사람이 없다. 현재 미국에서 제조업 인력난은 그들의 생산성이 낮기 때문에 일어나는 면도 있다. 재빠른 한국인 한 명이 할 일을 미국인 두 세명이 해야 한다.

이는 일찍이 오바마가 지적했듯이, 부실한 미국 공교육에도 그 원인이 있다. 계산기 없이는 간단한 산수도 못하고, 그 응용능력은 거의 제로이다. 예를 들어 한 판의 가로에 8개씩, 세로로 5개씩 제품이 놓여 있고, 한 팔레트 안에 10개의 그런 판이 쌓여 있는 경우, 총 제품의 수는 몇 개인지 파악하라고 작업지시를 하면 미국 근로자는 팔레트 안의 판을 전부 들쳐내고 제품을 하나씩 센다. 그들에게 8x5x10=400이라고 얼른 계산해 내는 능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왜 미국의 Rust Belt에 있던 Big 3 자동차 회사는 NAFTA 바람을 타고 멕시코로 공장을 이전했을까? 생산성을 초과한 급여와 복지 인상 요구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무노조 경영을 지향하는 외국회사들이 들어와 고용을 유지하고 있다.

남북전쟁 이전에 미국은 연방정부 세수의 80%를 관세로 충당한 때도 있었다. 미국의 관세 역사를 보면, 1830년대와 1930년대의 평균 관세율은 거의 60%에 육박하였다. 그러나 2022년 현재, 관세는 연방 세수의 1.8%만을 차지하고, 법인세와 개인소득세가 약 52%를 차지한다. 우리는 트럼프가 ‘관세 맨’이라고 자칭하는 이유가 관세로 연방수입의 80%를 채우던 시절로 회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길 바란다. 관세도 세금인데 의회의 견제없이 대통령 독단으로 올리고 내릴 수 있는 미국의 시스템이 원망스럽다.

한편 이 혼란한 시기를 무사히 넘기기 위해 미국 진출 기업은 여러모로 대비해야 한다. 유능한 인재 확보, 자동화 추진과 무노조 경영 유지, 원자재 파동 사태와 가격 급등 대비 안전재고의 확보 등이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소프트랜더스㈜ 고문/ ㈜삼기 북미법인장/ 前 현대자동차 중남미권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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