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체육회장배3쿠션 강동궁-허정한에 이어 3위 입상 ‘재야 1인자’서 40세에 선수 등록…3년만에 월드컵 3위 당구에 전념하기 위해 운영하던 당구클럽도 처분
[양구=MK빌리어드뉴스 이상연 기자]지난 2일 ‘2017 대한체육회장배 전국당구대회’ 시상식. 3쿠션 남성부 우승자 강동궁(동양기계), 준우승 허정한(경남)이 3위 입상자가 호명되자 본인들 입상보다 더 기뻐하며 활짝 웃었다. 시상식에 앞서 그 선수가 보타이를 매는데 어려워하자 두 선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가가 직접 매주었다. 대한당구연맹 여러 관계자들도 그에게 축하인사를 건넸고, 일부 관중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이날 현장의 이목을 사로잡은 3위 입상자는 최재동(강원)이다. 1962년생으로 올해 만으로 55세다. 그는 아마추어 시절, 전국을 호령하던 ‘재야의 고수’였다. 40세인 2002년 선수등록 후 3년만에 3쿠션월드컵 3위까지 오른 바 있다.
최재동은 이날 이날 지난 2013년 4월 ‘용인백옥쌀배 제19회 경기도오픈 3쿠션 전국당구대회’ 3위 이후 3년 4개월만에 시상대에 올랐다. 현장에서 그와 인터뷰를 나눴다.
▲3년 4개월만의 입상이다. 소감은.
=특별한 감동보다는 아직 ‘선수 최재동’이 살아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데 만족한다. 비록 4강에선 동궁이(강동궁)에게 패(27:40)했지만, 64강(대 김인호)에선 대회 최고 하이런(18점)도 기록했다. 이제 제 또래 선수들을 대회장에서 보기란 쉽지 않다. 간혹 출전하더라도 128강 언저리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많은 선수들이 입상을 축하하던데.
=제가 입상하면 동생들이 기뻐하더라. 하하. 동궁이(강동궁) 성원이(최성원) 정한이(허정한) 등 동생들은 2000년대 초중반 함께 국내대회, 세계대회에 출전하면서 각별해진 친구들이다. 다른 후배들도 저를 보고 인사하는데 진표(홍진표) 이후 세대는 얼굴을 잘 모르겠더라.
지난 2일 열린 ‘2017 대한체육회장배 전국당구대회’ 3쿠션 남성부 시상식에 앞서 최재동이 보타이를 매는 데 어려움을 겪자 강동궁(맨 왼쪽), 허정한(가운데)이 그에게 다가가 직접 매주고 있다. 강동궁 허정한은 이날 공동3위 입상자 최재동의 이름이 호명된 순간, 활짝 웃으며 큰 박수를 보냈다.
▲그간 어떻게 지냈나.
=쭉 서울 상계동 등에서 생활하다 2010년 강원도 원주를 거쳐, 2년 후(2012년) 춘천에 정착해 개인 당구장을 차렸다. 그러는 와중에 소속도 서울당구연맹에서 강원당구연맹으로 옮겼다. 애지중지 운영하던 클럽을 대회 직전 처분했다. 고된 클럽 운영에서 손 떼니 마음이 홀가분해진 덕분에 이번 대회 4강에 올랐나보다. 하하.
▲나이(55세)에 비해 선수경력(15년)은 짧은 편이다.
=원래 선수생각은 없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당구선수들의 생계가 보장된 환경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운영하던 클럽에만 집중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마추어 시절부터 알게 된 정규형님(김정규 전 당구국가대표 코치) 등이 “네 실력이면 선수로 정상에 설 수 있다”면서 여러 차례 (선수를)권유했고, 결국 마흔살(2002년)에 서울당구연맹 선수로 등록했다.
▲3쿠션을 제대로 시작한 게, 선수등록 10년 전인 서른쯤이었다고.
=큐를 처음 잡은 건 스무살 때다. 친구들과 당구장에 놀러가 4구를 처음 접했다. 그리곤 1년 만에 700점이 됐다. 세리(4구 경기의 몰아치기)를 익히자 흥미를 잃었고, 그 후로 10년 가까이 당구를 접었다. 그런데 29살인 1991년, 서울 삼풍백화점에서 열린 월드컵 당구대회를 보고 제 당구열정이 되살아났다. 클루망, 브롬달 등 세계 톱클래스 선수들의 플레이가 그렇게 멋져 보이더라. 처음엔 감히 따라할 생각도 못하다, 시간이 지나자 점차 그들의 공을 쫓아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30대 대부분을 당구에 푹 빠져 살았다.
▲선수들이 등록을 권유한 이유는.
=쑥스럽지만, 30대 후반까지 ‘재야의 당구 1번’이란 소리를 듣고 있었다. 재미삼아 공을 쳤는데, 전국 곳곳에 소문이 나 사람들이 “한판 붙자”며 저를 찾아오더라. 물론 이길 때가 많았다.
▲선수등록 후 첫 우승은.
=첫 번째 대회는 1회전 탈락했고, 두 번째 대회인 ‘2002 제1회 뉴코이라배’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상금은 300만원으로 기억한다. 엄청 기쁠 줄 알았지만 의외로 덤덤했다. 수많은 경기를 중 하나라고 생각했고, 또 지금처럼 우승자가 언론에 크게 보도될 때도 아니지 않나. 하하.
30대 시절을 ‘재야의 1인자’로 보낸 최재동은 2002년, 40살이 돼서야 정식 선수가 됐다. 당시를 회상하며 활짝 웃고 있는 최재동.
▲2004년부터 월드컵에 출전하게 된다. 지금과 같은 연맹의 전폭적인 지원이 부족하던 시기라 쉽지 않았을 텐데.
=2004년 초, 전 대한당구연맹 회장인 상천형님(고 이상천)이 “너 해외에 나가보라”고 하더라. 형님이 가끔 후배들을 모아놓고 공을 쳤는데, 그분 눈엔 제가 세계무대에서도 통할 것 같았나 보다. 그래서 군말없이 3월 ‘스페인 세비야 3쿠션월드컵’부터 3년여간 월드컵, 세계선수권, 월드게임 등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또 당시 세계캐롬연맹에서 한국랭킹 1위, 일본랭킹 1위에 시드를 배정해 경비를 지원해줬다. 감사하게도 2005년 9월엔 ‘이집트 후루가다 월드컵’ 3위 입상의 영광도 안았다.
(‘2005 후루가다 월드컵’에 출전한 최재동은 32강 아베이가 루이스(에콰도르), 16강 판 에르프(네덜란드), 8강에선 전년도 세계3쿠션선수권 챔피언 딕 야스퍼스(네덜란드)까지 세트스코어 3:1로 꺾고 4강에 진출했다. 특히 야스퍼스와의 8강 2세트에선 하이런 12점을 올리며 경기를 2이닝만에 15:0으로 끝내는 기염을 토한다. (당시 세계3쿠션대회는 5전 3승 세트제로 진행, 1세트 15점 경기) 이 성적은 고 이상천을 제외하면, 고 김경률의 ‘2010 터키 안탈리아월드컵’ 우승전까지 한국의 당구월드컵 최고성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기세는 4강에서 막혔다. 8강에서 토브욘 브롬달(스웨덴)을 누르고 올라온 롤란드 포톰(벨기에)에게 거짓말처럼 세트스코어 0:3 완패를 당했다. 최재동은 당시 패인을 “이제야 밝히지만, 4강에 오르자 생애 첫 월드컵 입상을 해냈다는 안도감이 들면서 긴장이 풀렸다”고 밝혔다.)
▲세계대회에 출전하며 쌓인 친분이 있다면.
=(단호하게)없다. 영어가 부족해 경기장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과 말 섞기 쉽지 않았다. 후루가다월드컵 시상식 후에도 혼자 멀뚱히 있기 싫어 도망치듯 대회장을 나왔다. 하하. 참, 얼마전 브롬달이 김용철(DS빌리어즈 전무)씨를 통해 제 안부를 물었다고 들었다. 대회장에서 딱 두 번 마주친 사이인데... 아마 동갑이라 기억하나보다. 하하.
▲2006년을 끝으로 세계대회 출전을 멈췄다.
=매 대회마다 비행기 타는 게 힘들더라. 나중엔 잠도 오지 않더라. 잠도 체력이 있어야 잘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또 그해에 서울 역삼동에 당구클럽을 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월드컵 출전을 마치게 됐다.
▲2010년, 돌연 강원도로 적을 옮겼는데.
=20대때 2년간 정선에서 생활했는데, 그때 본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뇌리에 쏙 박혀있었다. 또 사람들도 좋고, 무엇보다 조용히 당구에 몰두할 수 있을 것 같아 클럽(서울 역삼동)을 처분하고 강원도행을 택했다.
▲자문을 구하러 온 선수들이 많다고.
=대부분 단편적인 조언만 해줬다. 그들도 선수들이다 보니 기술적인 부분은 차치하고, 경기 중 멘탈에 대한 노하우를 알려줬다. 간단하다. 앞서 실수를 내 공격전까지, 머리에서 빨리 지우라는 것이다. 또 잡념을 버리고 연습한대로 몸을 움직이는데만 집중하라는 등의 조언을 해줬다. 여러 선수들 중, 진표(홍진표)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원주에서 살 때, 그 먼 대전에서 매주 올라와 저를 찾았다. 일주일간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지금 이렇게 일취월장한 진표가 참 대견하다.
최재동은 선수등록 3년만에 ‘2005 이집트 후루가다 3쿠션월드컵’ 공동3위에 올랐다. 최재동이 직접 MK빌리어드뉴스에 전해준 당시 시상식 사진에 최재동과 함께 대회 입상자들이 보인다. 사진 뒷줄 맨 왼쪽부터 준우승 프레데릭 쿠드롱(벨기에), 우승 롤랜드 포톰(벨기에), 세미 세이기너(터키), 최재동. (최재동 선수 제공)
▲언제까지 선수생활할 생각인가.
=당구가 재미없으면 그만둘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당구가 참 재미있다. 실내 온도, 공의 관리상태, 라사지 상태 등에 의해 같은 샷이라도 10분 단위로 달라질 수 있는 게 당구다. 혹자들은 변수가 많아 힘들다고 하는데, 저는 그것이 당구의 참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대한체육회장배’ 입상을 반가워할 당구팬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저를 안다면 꽤 연배가 있을 것 같은데. 하하. 우승은 7년전(2010년 11월 제3회 강화동주향배 전국오픈당구대회), 국내랭킹은 현재 34위(2일 대회당일 기준)에 불과하지만, 노장 선수도 충분히 우승, 국내랭킹 10위권 진입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겠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