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6.26 17:57:57
프랑스 파리 시내에서 매년 한국 라이프스타일 전시회인 ‘코리아 엑스포(KOREA EXPO)’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2년 전 제가 매일경제신문의 컨슈머 전문기자로 활동할 때 국내 전시기획사 엑스포럼과 함께 만든 기획입니다. K-푸드, K-뷰티, K-패션 등 한국의 소비재 상품을 K-콘텐츠와 묶어 한국의 라이프스타일을 수출하자는 취지로 만들었습니다.
올해도 제3회 코리아 엑스포가 지난 6월 13~15일 파리의 포르트 드 베르사유 전시장에서 열렸습니다. 한국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 A홀과 B홀을 합친 규모의 공간에 3일간 3만2000명의 관람객이 다녀갔습니다. 이 정도면 행사기간 내내 계속 줄을 서야 입장이 가능한 수준입니다. 참관객 상당수가 10~20대 젊은 여성들이란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특별한 상품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국내 올리브영이나 CU, GS25 편의점에 가면 살 수 있는 상품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파리의 멋진 여성들이 빙그레 ‘메로나’ 아이스크림을 맛보기 위해, 또 구다이글로벌이 운영하는 스킨1004라는 K-뷰티 브랜드를 체험하기 위해 1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상상이 가시나요? 긴 줄 사이에는 유럽 대형 마트의 구매 담당자들도 있었습니다. K-뷰티를 유럽 마트에 유치하기 위해 담당자들이 엑스포 현장을 찾아온 것입니다.
파리에서의 벅찬 감동을 뒤로하고 한국에 돌아와 K-골프산업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코로나19 기간 활황이었던 한국 골프 시장은 본격적인 조정(Correction) 국면을 거쳐 바닥 다지기를 하고 있습니다. 소위 옥석이 가려지는 시기입니다. 한국 기업이 인수한 글로벌 골프 브랜드도 변화의 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아쿠쉬네트를 인수한 휠라는 얼마 전 미스토홀딩스로 사명을 바꾸고 글로벌 시장전략을 새롭게 짜고 있습니다. 아쿠쉬네트는 타이틀리스트, 풋조이, 스카티카메론 등을 주요 브랜드로 둔 기업입니다. 휠라는 이탈리아 브랜드로 1911년 필라 형제가 창립했습니다. 윤윤수 회장의 휠라 코리아가 2007년 휠라 본사를 인수하며 휠라는 한국 기업이 됐습니다. 이어 휠라는 2011년 아쿠쉬네트도 인수합니다. 그동안 미스토홀딩스(구 휠라홀딩스)와 아쿠쉬네트는 독자경영을 해왔는데 휠라 브랜드를 재정비하면서 변화가 있을지 주목됩니다. 윤윤수 회장의 장남인 윤근창 대표는 2020년 미스토홀딩스의 대표를 맡으며 홍콩, 동남아 등 글로벌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이 인수한 또 다른 글로벌 골프 브랜드인 테일러메이드는 매각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테일러메이드의 경영권은 국내 PE 센트로이드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가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계 글로벌 PE들이 테일러메이드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테일러메이드의 우선매수권을 보유한 F&F의 대응도 주목됩니다. F&F는 김창수 회장이 2006년 설립한 한국의 대표적 패션 및 라이프스타일 기업입니다.
미국 메이저리그 협회(MLB)로부터 MLB 의류판권을 획득, 중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F&F는 특히 테일러메이드 중요 사항들에 대한 사전동의권을 갖고 있는데 이를 행사해 테일러메이드 매각에 반대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 김창수 회장은 테일러메이드 인수에 대한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센트로이드는 사전동의권 범위에 ‘매각’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글로벌 뷰티산업의 허브인 파리에서 한국 뷰티업체들은 자랑스럽게 K-뷰티의 이름으로 유럽의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습니다. K-푸드 기업들은 한국 제품임을 알리기 위해 포장지에 일부러 한글을 표기합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K-골프 산업은 아직 이렇다 할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타이틀리스트, 테일러메이드는 캘러웨이와 함께 3대 글로벌 골프 브랜드에 속합니다. 한국 기업들이 이런 글로벌 브랜드를 소유한 것은 다른 업종에선 드문 일입니다. 이들 기업들이 브랜드 위치에 걸맞은 리더십을 발휘해 K-골프의 발전을 위한 역할과 책임을 다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