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3구·용산 아파트 매매 계약 살펴보니 압구정·반포 등 신고가 주도 과거 직장인 '영끌'과 달리 고소득 기반 거침없는 매수 "대출도 능력" 수십억 척척 LTV 한도 넘게 대출받으려 사업자용 대출 전용 편법도 DSR 강화, 전문직 타격 작아
"요즘 돈 잘 버는 젊은 부부가 많더라고요. 어제 찾아온 의사 부부는 20억원 가까운 대출에도 부담을 전혀 안 느끼는 것 같았어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젊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이렇게 돈이 날까 싶었는데 연봉, 소득이 높으니 대출을 받아서 턱턱 사더라"고 말했다.
최근 의사·변호사·세무사·회계사 등 30대 고소득 전문직의 거액 대출을 통한 강남 아파트 매수세는 약 5년 전 열풍이 불었던 '영끌 매수'와는 성격이 다르다. 당시 30대는 소득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노도강'(노원·도봉·강북) 지역 중저가 아파트를 사들였다. 반면 최근 30대의 서울 아파트 구매는 높은 소득을 기반으로 대출을 크게 일으켜 강남3구와 용산구 등 핵심지에 단번에 진입하는 점이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대출 여력과 능력을 동일시하는 30대의 '친(親)대출' 성향과 수년간 이어진 '똘똘한 한 채' 선호가 맞물린 결과로 분석한다. 이들 계층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들면서 서울 상급지 위주로 아파트 가격이 강세를 띠는 모습이다.
26일 매일경제신문이 올 3월부터 최근까지 강남3구와 용산구에서 체결된 아파트 매매 계약을 정밀 분석한 결과 10억원 이상 대규모 대출을 일으켜 주택을 구매한 사례가 속속 확인됐다.
대표적으로 30대 후반 A씨는 역삼동 한 아파트를 올해 5월 28억6000만원에 사들였다. 이 주택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면 근저당권 설정액은 약 18억원이다. 강남3구와 용산구에 적용되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가 50%인 점을 고려하면 A씨는 집값의 절반까지 최대한 대출을 일으켜 주택 매입에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30대 B씨는 서초구 래미안원베일리를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지정 전인 3월 초 59억원에 사들였다. 이 주택에 설정된 근저당권은 약 27억원이다. B씨는 보험사 두 곳에서 대출을 일으켜 주택 매수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전문직들이 탄탄한 소득을 기반으로 대출을 크게 일으켜 강남 아파트를 매수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만성적 주택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상승 기대와 서울 핵심지 아파트를 '안전자산'으로 간주하는 심리가 결합되며 30대 전문직의 '공격적 베팅'이 잇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강연옥 플팩 대표는 "10억원 이상 대출은 개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며 "전문직 외벌이나 맞벌이가 합산 소득을 기반으로 받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현재 규제 지역에선 무주택자나 1주택자 LTV가 50%다. 여기에 DSR이 40% 한도 이내여야 하는데, DSR은 소득이 높을수록 대출이 더 나와 고연봉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조다.
만기 30년에 금리 4%일 때 연 소득이 2억원이면 DSR 40% 한도 내 최대 대출 가능액은 약 14억원이다. 실제 대출을 받을 때는 스트레스 DSR이 적용되기 때문에 한도는 이보다 줄어든다. 부동산 업계에서 대기업 맞벌이 부부들이 '현장에서' 일으킬 수 있는 대출 한도를 10억원으로 보는 이유다. 그 이상 대출 금액이 올라가면 최소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 외벌이나 맞벌이만 감당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실제로 연 소득이 각각 2억원인 전문직 맞벌이 부부라면 28억원까지 대출 금액이 올라간다. 자기자본이 조금만 있어도 수십억 원을 넘나드는 아파트 매수가 어렵지 않다는 뜻이다.
최근엔 금융권에서 대출 경쟁이 심화되며 다양한 대출 상품이 출시돼 전문직들의 '서울 핵심지 아파트 쇼핑'을 뒷받침한다. 강 대표는 "일부 금융사 상품 중엔 신용도가 높은 전문직을 대상으로 1~2년 거치식으로 이자만 내도록 하는 상품도 있다"며 "이를 활용해 2년 보유 뒤 비과세 혜택을 받고 단기 차익을 얻으려는 투자자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시중은행별로 한도가 최대 3억~4억원에 달하는 전문직 전용 대출 상품도 30대 전문직이 이용할 수 있는 '옵션'이다.
시장이 이처럼 과열 양상을 보이며 사업자 대출을 주택 구매에 전용하는 '편법 대출'까지 등장했다. 시세 50억원 아파트를 매수할 때 1금융권에서 LTV 50%인 25억원까지 대출을 받고, 나머지 자금은 농협·수협·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의 사업자 대출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사업자 대출 용도가 '기업 운전자금'이어서 원칙적으로 주택 매수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잔금 납부와 소유권 이전을 끝내고 최소 3개월 후에 사업자 대출을 받고, 잔금은 대부업체를 활용하는 방식이 암암리에 퍼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대부업체의 단기 이자는 연 12~15%에 달해 현재 4.7~5% 선인 사업자대출 이자보다 훨씬 높지만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며 이자 납부액을 상쇄한다는 기대감이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7월부터 시행되는 스트레스 DSR 3단계는 이미 소득이 탄탄한 전문직군엔 타격이 작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반면 소득이 많지 않은 직장인의 대출 여력은 줄어들어 부동산 시장 양극화를 더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