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5.07 13:19:19
최근 한 여성 CEO를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 뜻밖의 말을 들었다. 그녀는 “회사를 접고 싶다”고 말했다. 단순한 좌절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사업 환경과 사람 관리의 고단함 속에서 얻은 결론이었다. 비슷한 시기 회사를 경영하다 투자가로 전직한 지인과 식사를 했다. 새로운 삶에서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더 이상 직원들의 급여 날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라고 했다. 두 사람 모두 ‘리더’라는 이름 아래 짊어졌던 무게를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권한과 명예를 가진 자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리더들조차 버거워하는 이 구조는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잠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기업 안에서 리더를 만나다 보면 표정 속에 감춰진 심리적 피로를 읽게 된다. 성과는 끊임없이 요구되지만, 리더는 매 순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며, 좋은 리더임을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힘들게 몰아붙인다. 물론 세대에 따라 리더십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다. 한 세대는 임원이라는 희소성 있는 자리에 가치를 두지만, 다른 세대는 리더십이 오히려 개인의 삶을 갉아먹는 손해라고 여긴다. ‘리더가 되지 않는 삶’을 꿈꾸는 리더 포비아(leader phobia) 현상이 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리더는 어떻게 자신의 안녕(安寧)을 지킬 수 있을까? 최근 몇 년간 조직들은 리더십 진단을 통해 리더의 자기조절(self-regulation)과 자기관리(self-management)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조직에서 리더의 감정과 내면에 대한 자기관리는 ‘성과’라는 이름 아래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 있다. 리더에게 자기관리란 단순히 스트레스를 관리하거나 당면한 상황에서 자신을 조절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자기인식(self-awareness)에 초점을 둘 때, 비로소 진정한 자기관리가 시작되며, 이는 지속 가능한 리더십의 기반이 된다. 특히 자기인식은 리더가 자기도 모르게 빠질 수 있는 리더십 이탈(derailment)을 막는 첫 번째 방어선이 되기도 한다. 진정한 리더십은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인정받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능력에서 출발한다. 리더 개인의 지속 가능성이 무너진 조직은 오래갈 수는 없기 때문에 리더의 안녕을 묻는 일은 결국 조직의 미래를 묻는 일이 된다. 리더는 항상 성과 압박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특히 평가가 수치로 환산되어 타인과 비교되는 순간, 리더는 더욱 지치고 불안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압박을 지혜롭게 다루지 못하면 리더십은 쉽게 균형을 잃고 흔들릴 수 있다. 다소 어려운 요구처럼 보일 수 있지만, 리더는 외부의 기대를 수용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찾아야만 지속 가능한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자는 다음의 세 가지 실천 전략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자기 친절(Self-Kindness)이다. “내가 겪는 어려움에 대해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말은 무엇일까?”, “비록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더라도, 나의 노력은 소중하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리더는 종종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기 어려워하고, 스스로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여하곤 한다. 그러나 자기 친절은 내면의 지지를 회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이는 결과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과정과 노력을 존중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둘째, 보편적 인간성(Common Humanity)이다. “성과 압박과 스트레스는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인식해 보자.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고립감은 줄어들고 회복탄력성은 높아질 수 있다. 리더로서 겪는 어려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일이다. 다른 리더들 또한 비슷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 자신을 비난하기 보다는 타인과의 공유된 경험에서 연결된 힘을 얻고 연대감을 키우며, 불안을 완화하는 소중한 자원을 만들게 된다.
셋째, 마음챙김(Mindfulness)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압박감과 불안을 있는 그대로” 인식해 보자. 마음챙김은 현재의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알아차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성과 중심의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은 중요하다. 감정과 욕구의 파도에 휘둘리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면, 보다 명확하고 지혜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위에서 제시한 세 가지 실천 전략은 자기자비(self-compassion)를 설명한다. 지난 15년간 자기자비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자기자비가 정서 지능, 회복탄력성, 성장 마인드셋, 타인에 대한 자비 등 리더십에 필수적인 역량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자기자비는 단순한 정서적 위안을 넘어 리더십의 핵심 능력을 강화하는데 유의미한 기능을 한다. UC버클리 심리학자 세레나 첸은 “자기자비와 타인에 대한 자비는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에게 친절한 사람은 타인에게도 더욱 깊은 자비를 베풀 수 있으며, 이런 리더는 팀 내 심리적 안전감을 형성하고, 구성원의 높은 몰입도와 지속 가능한 성과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때론 리더에게 ‘쉼’은 사치처럼 여겨지지만, 자기자비는 리더에게 반드시 필요한 큰 나무 같은 존재가 되어 휴식을 제공한다. 그 그늘 아래에서 리더는 자신을 회복하고, 조직과 구성원을 이끌 힘을 얻기 때문이다. 자기자비는 리더를 더 강하게 만든다. 지금 이 순간, 이 글이 리더 스스로에게 조금 더 친절하고, 작은 안식을 허락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비즈니스임팩트 김민경 교수(경영학 박사)
숙명여자대학교 초빙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