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4.30 20:51:07
서울 강남구 역삼동 ‘조선팰리스 서울 강남’ 호텔 지하 주차장 4층. 30일 오전부터 재계 총수들을 태운 차량들이 하나둘 오가며 마치 ‘007 작전’과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전날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가 이른 아침부터 재계 총수들과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릴레이 일대일 면담을 진행하면서다. 취재진 상당수가 로비 입구와 호텔 객실로 연결되는 지하 1~3층 주차장에 진을 쳤으나, 이들은 지하 4층에서 은밀히 내려 트럼프 주니어와의 면담이 예정된 건물 내 보안 구역으로 신속히 진입했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화그룹 3세인 김동관·김동원·김동선 3형제였다. 이날 오전 8시께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을 필두로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은 면담 장소인 보안 구역에서 약 45분간 트럼프 주니어를 만났다. 이후 김 사장과 김 부사장이 인근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주문해 나가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한화는 미국 조지아주에 연간 8.4GW급 태양광 모듈 일관 생산 단지 ‘솔라 허브’를 조성하고 있다.
미국산 태양광 제품 우선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이 프로젝트는 미국 내 생산 비중을 7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연방정부로부터 인센티브와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것이 주요 과제로 꼽힌다. 재계 관계자는 “김 부회장이 이날 트럼프 주니어와 만나 조선·태양광 사업 등 정책 협력을 의논했을 것”이라고 했다.
롯데그룹 오너 3세인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부사장도 이날 부친인 신동빈 회장을 대신해 트럼프 주니어를 만났다. 앞서 신 부사장은 신 회장을 단장으로 하는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사절단과 동행해 인도네시아를 방문했고, 베트남으로 이어지는 출장길에서 빠져 트럼프 주니어를 만나기 위해 중도 귀국했다.
신 부사장은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을 겸직하며 롯데가 힘을 주고 있는 바이오 위탁개발생산(CDMO) 신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롯데는 2022년 미국 뉴욕의 시러큐스 공장을 인수해 4월 24일 아시아 소재 바이오 기업과 항체·약물접합체(ADC) 임상시험용 후보 물질을 생산하는 내용의 첫 계약을 따내고 가동을 시작한 바 있다. 신 부사장은 트럼프 주니어에게 미국에서의 첫 생산을 강조하면서 바이오 분야에 대한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진 네이버 의장도 트럼프 주니어와의 개별 면담에 참석했다. 그는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주요 현안에 대해 집중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되며 7년 만에 경영 일선으로 복귀한 이 의장은 네이버의 AI 전략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번 만남에서 그는 AI 분야에서의 한미 협력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웹툰 모회사로 미국에 상장한 웹툰엔터테인먼트, 2023년 네이버가 인수한 북미 중고 거래 플랫폼 포시마크 등 네이버의 미국 사업과 관련한 논의도 이뤄진 것으로 관측된다. 네이버 관계자는 “AI와 기술, 글로벌 진출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상호 협력에 대한 긍정적인 대화를나눴다”고 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이날 트럼프 주니어와 회동해 그룹이 추진 중인 대규모 미국 투자와 현지 사업 확대에 대해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CJ그룹은 최근 몇 년간 미국 현지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면서 북미 시장 공략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실제 CJ제일제당은 2019년 미국 식품업체 슈완스를 인수해 현재까지 20개의 식품 생산기지를 미국에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약 7000억원을 투입해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수폴스에 ‘북미 아시안 푸드 신공장’을 착공했다. CJ푸드빌 역시 올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미국 조지아주에 약 700억원을 투자해 9만㎡ 규모 냉동생지와 케이크 생산공장을 짓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CJ의 경우 미국 현지에 공장을 세우고 고용 창출에 앞장서고 있다”며 “이러한 현황을 공유하면서 투자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글로벌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기업 셀트리온을 이끄는 서정진 회장도 이날 면담에 참석해 트럼프 주니어를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에서는 양종희 KB금융그룹 회장이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로는 유일하게 트럼프 주니어와 회동했다. 양 회장은 이날 오전 트럼프 주니어를 30여 분간 만나 국내 금융산업 발전과 투자 방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국내 최대 디벨로퍼(부동산 개발회사) 엠디엠그룹을 이끄는 문주현 회장이 이날 오전 트럼프 주니어를 만나 30분 정도 대화를 나눴다. 엠디엠 측에 따르면 둘은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 등 여러 사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트럼프 주니어는 지난 29일 오후 6시 25분께 김포공항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입국했다. 이후 그의 방한을 주도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자택으로 이동해 오후 9시부터 2시간가량 만찬을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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