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2.18 21:00:00
‘과세이연·복리 마법’ 실종
연금저축계좌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등 절세계좌 내 해외 펀드 배당금 ‘이중과세’ 논란으로 투자자 반발이 거세다. 기존에는 해외펀드 배당수익에서 외국 정부가 배당세를 떼도 한국 정부가 그만큼 환급해 채워줬다. 우리 정부는 사실상 국고에서 배당세를 지원해주는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2021년부터 외국납부세액 공제 방식 변경을 추진해왔다.
3년 유예 기간을 거쳐 올 들어 국세청 선환급을 없애고 배당금이 현지에서 원천징수된 ‘세후 배당’ 방식으로 바뀌자 뜻밖의 대목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연금 등 절세계좌에서 ‘세후 배당’을 받게 되자 기존처럼 ‘과세이연을 활용한 재투자’ 전략이 불가능해진 것. 이런 가운데 해외에서 배당소득세를 낸 뒤 국내에서 연금 수령 시기에 연금소득세를 한 번 더 내야 하는 ‘이중과세’ 논란이 들불처럼 확산했다.
투자자 불만이 거세자 정부는 ISA의 경우 국내 납부 세액 한도 내에서 펀드의 외국납부세액을 폭넓게 인정해 공제해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연금저축계좌와 개인형 퇴직연금(IRP)은 법을 개정해야 해 ISA보다 더 시간이 걸린다. 특히 연금 등 절세계좌를 활용한 과세이연·복리 투자 효과가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는 점에서 ‘반쪽 해법’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올해부터 배당소득 세제 개편
과세이연 효과 사라져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2021년 결정한 펀드 외국납부세액 공제 방식 개편이 3년 유예 기간을 거쳐 지난 1월부터 시행됐다.
개편안의 뼈대는 일반·절세계좌 등 해외 투자펀드(ETF 포함) 분배금(배당금)의 현지 원천징수(미국 배당소득세 15%)에 대한 국세청 환급 절차가 사라진 것. 기존에는 해외펀드가 현지에서 세금(15%)을 떼고 배당금을 받아오면 국세청이 이 세금을 펀드에 먼저 환급(14%)해줬다. 올해부터는 현지에서 원천징수된 세금을 환급해주지 않고 투자자에게 배당금이 지급되는 ‘세후 배당’ 방식으로 바뀌었다. 개정안이 3년이란 비교적 긴 유예 기간을 거쳐 시행돼 그 영향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없던 와중에 올 1월부터 원천징수된 분배금이 들어오자 논란이 확산했단 진단이다.
정부가 이 같은 개편을 추진한 것엔 이유가 있다. 예산 주무부처 기획재정부 입장에선 개인이 미국에 원천징수 당한 세금을 국고로 대신 내주는 구조 자체를 문제 삼았다. 특히 ISA로 해외투자를 할 경우, 국세청은 펀드에 외국납부세액 14%를 선환급해주는데, ISA 투자자는 만기 때 배당소득에 대해 9%만 세금을 내므로, 5%포인트를 국세청이 부담하는 구조다. 연금저축펀드 역시 국세청이 펀드에 외국 원천징수 세액(14%)을 선환급해주고 배당소득은 연금 지급이 시작되는 수십 년 뒤 3~5%가량 원천징수되므로, 국세청이 9~11% 정도를 지원해주는 상황이 빚어진다.
일견 타당해 보이는 개편안이지만 문제는 엉뚱한 데서 불거졌다. 핵심은 일반계좌가 아니라, ‘연금 등 절세계좌에서 과세이연 효과 상실에 따른 이중과세’ 논란이다.
절세계좌 이중과세 논란의 전말은 이렇다. 일반 계좌와 달리, 절세계좌에서 이중과세 후폭풍이 거센 것엔 세금을 미뤄(과세이연) 이를 재투자해 복리 수익을 추구하던 기존 투자 관행이 불가능해진 탓으로 풀이된다.
이해를 위해 풀어보면, 먼저 일반계좌 분배금(배당금)의 경우 해외에서 배당소득세 원천징수(15%) 후 ETF 매도 시 매매차익에 15.4% 배당소득세가 부과된다. 뜯어보면 일반계좌도 분배금을 받을 때 배당소득세를 내고 그 재원을 재투자하다 펀드를 매도하면 매매차익에 대해 또 배당소득세를 낸다. 세금을 두 번 내지만, 이를 두고 ‘이중과세’ 논란이 빚어지진 않는다. 반면, 절세계좌 한 종류인 연금계좌는 사정이 다르다. 기존 연금계좌 분배금은 배당소득세를 돌려받아(국세청 환급) 세금을 미룰 수 있으므로(과세이연) 그만큼 종잣돈을 키운 뒤 훗날 인출 때 저율의 연금소득세(3.3~5.5%)만 내면 됐다.
예컨대, 연금계좌에 넣어둔 해외펀드에서 배당금 100만원을 받으면 기존에는 국세청이 돌려준 세금까지 얹어 원금 그대로 재투자할 수 있었다. 올해부턴 배당금 100만원을 받더라도 15% 세금이 현지에서 원천징수된 85만원만 재투자할 수 있다. 종전처럼 세금을 최대한 미뤄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방식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정리하면, 연금계좌는 과세이연 덕분에 실제 부담 세금은 국내 연금소득세 한 차례뿐이었으나 이번 법 개정으로 국세청 환급 없이 해외 원천징수되자 ‘이중과세(환급 없이 해외 원천징수+국내 연금소득세)’ 논란이 일어났다는 얘기다.
ISA는 이중과세 안 하기로
커버드콜 ETF로 ‘머니무브’도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하자 정부는 해법 마련에 나섰지만 투자자 반응은 냉랭하다.
정부는 부랴부랴 ISA에 대해선 외국에 납부한 세금을 따로 집계했다 만기 때 최종 부과되는 세금에서 빼 이중과세를 하지 않기로 했다. ISA 만기 시점에 투자자가 내야 할 세금(세율 9%)에서 외국에서 납부한 세금을 공제해 국내와 해외에 이중으로 세금을 내는 이중과세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개정안의 뼈대다. 기획재정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개정 세법 시행령을 오는 7월부터 시행한다.
외국에서 납부한 세금을 계산할 때는 일괄 14%의 세율을 적용한다. 이외 손실이 난 펀드도 공제 대상에 포함한다. 요약하면, 종전에는 ISA 만기 시 투자상품 손익을 통산해 비과세 한도(일반형 200만원) 초과분에 대해 9%의 세금을 내면 됐지만, 앞으론 ISA 만기 때 내야 하는 세금에서 외국에 원천징수된 세금 일부를 되돌려 받는다.
그럼에도 연금계좌의 핵심 장점으로 여겨지던 ‘과세이연을 활용한 복리투자’는 사실상 길이 막힌 탓에 투자자 반응은 차갑다. 연금저축계좌와 개인형 퇴직연금(IRP)도 ISA 같은 이중과세 논란이 있지만, 이 상품들은 법 개정이 필요해 이중과세 문제 해소까지 시간이 더 소요될 전망이다.
금융사의 대응 역량 부족을 타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펀드 운용 책임이 있는 자산운용사와 연금 등 절세계좌를 판매하는 증권사·은행·보험사 등은 고객들에게 관련 사항을 충분히 안내하지 않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 ‘TIGER 미국S&P500’ ‘미국나스닥100 ETF’ 등에서 분배금 ‘고의 축소’ 논란이 빚어진 것도 투자자에게 일관된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고 이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 탓이다. 배당적립금은 ETF 순자산가치(NAV)에 실시간 반영되고 분배 시 분배락 처리되므로, 적립금 일부 유보로 투자자들이 실제 피해를 봤다고 보긴 힘들다. 과세 관점에서도 그렇다. 절세계좌 고객이 종전처럼 분배금 전액을 수령했더라도 종국에는 이중과세를 피할 방도가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해당 ETF 투자자 가운데 절세계좌 고객이 많은 상황에서 이중과세 문제 정리 전까지 적립금 분배를 유보한 결정 자체를 나무라긴 힘들다”면서도 “다만, 왜 그렇게 의사결정을 내렸는지 명확한 소통이 필요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7호 (2025.02.19~2025.02.25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