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이)상천형님한테 다이다이로 한판 치자했죠”
[당구 인터뷰] 김정규(상) “그땐 메달따도 놈팽이소리 들어”
익산 최고수에서 ‘황제’이상천도 인정한 “10년만의 맞수”
98아시안게임 4강敗 “한국당구 희망 망쳤단 생각에 눈물 펑펑”
“황득희 2002아시암게임 금메달 땄는데 바뀌는게 없더라”
1998방콕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일본 시마다와의 대결을 앞두고 있는 김정규(오른쪽). 그는 이 경기에서 시마다에게 패배한 후 "부모님 돌아가셨을때보다 더 울었다"고 회상했다. (김정규 원장 제공)1980~90년대, 고 이상천에 비견되는 선수로 맹위를 떨치던 그는 3쿠션 전국당구대회 최다 우승자(비공인), 1998 방콕아시안게임 동메달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당구대표팀 코치로 활약하며 비디오 분석법, 멘탈관리, 선수관리 등 당시 당구계로선 생소한 코칭법을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한국당구사에 있어서 선수, 지도자로 적잖은 영향을 끼친 김정규 ‘김정규당구스쿨’ 원장을 지난 7일, 그가 운영하는 아카데미(서울 송파구)에서 만났다.
이날 그는 “당구선수가 ‘놈팽이’ 취급받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젠 언론에서 당구를 주목하는 시대가 됐다. (인터뷰를 위해)예정돼 있던 개인일정도 취소했다”며 기자의 방문을 크게 환영했다. 30년 넘는 그의 당구인생과 철학을 상-하로 나눠 소개한다.
◇상경한 전북 익산 당구왕 ‘똘이’…고 이상천 “10년만의 적수다”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김정규 원장은 고향에서 당구 최고수로 통했다. 학창시절은 물론 20대 중반까지 당구에 미쳐 살아온 그였다. 그러던 80년대 초반, 집안 가세가 기울자 그는 테이블 쿠션 수리공이란 직업을 택해 상경했다.
“일때문에 오가던 당구장에서 우연히 한 게임 쳤는데 졌어요. 자존심 상했죠. 고향에선 실력자였는데. 그때부터 놓았던 큐를 다시 잡고 죽도록 연습했어요. 그리곤 서울 클럽들을 돌며 ‘도장깨기’식으로 들이댔죠. 지인들이 큐 한자루 들고 겁 없이 덤비는 모습이 ‘독일병정’ 같다고 했어요. 승률요? 거의 다 이겼을걸요. 하하”
2004년 사망 전까지 한국당구계 `황제`로 불리던 고 이상천. 김정규 원장은 이런 대 선배를 상대로 당돌하게 핸디 없는 승부를 펼쳐 승리했다. 이는 당시 당구인들 사이에서 큰 화제거리가 됐다. 고 이상천 선수(가운데)와 한때를 보내고 있는 김정규 원장(김정규 원장 제공)특별한 전국대회가 없던 당시, 대한당구회 월례대회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 대회 꼭대기엔 대부분 김정규란 이름이 걸렸다. 이 시기에 유명한 일화가 있다. 김정규가 ‘당구황제’ 고 이상천을 꺾는 사건이다.
이상천이 누구인가. 한국당구사의 입지전적인 인물 아닌가. 그렇다보니 후배들이 그에게 감히 도전할 엄두를 못냈다. 상대에게 핸디를 주고 겨우 대결하더라도 승리는 항상 그의 차지였다. 그러던 그에게 김정규가 포착됐다. 전과 같이 핸디를 제의한 이상천에게 김정규 원장은 전라도 사투리로 “그냥 다이다이(핸디없이)로 쳐유”라고 겁 없이 도전한다.
“상천 형님에게 그렇게 덤빈 후배는 없을거에요. 결과요? 제가 이겼어요. 하하”
전북에서 올라온 젊은 선수가 ‘황제’를 꺾었다. 이상천은 “10년만에 적수를 만났다”며 놀라워했다. 그때부터 이상천은 후배 김정규를 맞수로 인정했다. 그리곤 그를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똘이장군”. 전북 익산에서 불리던 ‘똘똘이’란 별명에 ‘장군’을 붙인 애칭이었다.
1998방콕아시안게임 3쿠션 남자 동메달 수상자인 김정규가 시상대에 올라 대회 관계자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김정규 원장 제공)“90년대 당구선수들, 많이 배고팠어요. 투잡은 예사였죠. 언제 전국대회 열리나 오매불망 기다리며 한해 보내기를 수차례였습니다.”
김정규 원장이 기억하는 90년대 한국당구계의 현실이었다. 여기에 ‘당구는 불량하다’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함께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의 사정도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였다.
“90년대 초반까지 책팔이, 에어컨 팔이 등 별 일 다 했었죠. 그러다 1992년, 평생 잊지못할 은인이 나타났어요. 일하던 당구장 사장님이 직접 운영해보라고 후원해 주셨어요. 거기에 제 돈을 탈탈 털어 경기 광명시에 당구장을 열었어요. 겨우 큐를 들 수 있었죠.”
다행히 선수생활을 이어가던 김 원장은 1992 당구선수권, 1994 SBS당구최강전 3차, 1995 삼정카페트배, 1996 TBC당구선수권 등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국내 정상급 당구선수로 올라섰다. 이어 1998년엔 선배 김무순(61)와 함께 ‘방콕아시안게임’ 3쿠션 국가대표로 선발돼는 영광을 얻는다. 그런데 당시를 회상하는 그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국가대표가 되자 주변에선 축하인사보다 ‘꼭 금메달 따라’는 말만 들렸어요. 당구인들에게 그 대회가 정말 중요했어요. 한국당구가 속된 말로 ‘놈팽이들 놀이’에서 스포츠로 이미지 전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겨졌거든요. 대회 4개월 전엔,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새벽운동, 수영 및 오전연습, 오후 개인훈련 등 스케줄을 소화하며 숨막히는 하루하루를 살았어요.”
1998방콕아시안게임 3쿠션 남자 개인전 한국대표로 출전한 김정규 원장과 김무순 선수(왼쪽). (김정규 원장 제공)“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죠. 평소 다한증 때문에 끼지않던 장갑을 손에 꼈어요. 실수를 최소화하려고요. 그런데 전열을 가다듬은 덕분인지 공들이 제 생각대로 서는 거예요. 연달아 14점을 쳤어요.”
이렇게 레터빈과의 대회 첫 경기가 대역전승(50:45)으로 끝났다. 전화위복일까. 이후 김 원장은 승승장구하며 준결승에 오른다. 상대는 일본의 시마다 아키오. 고바야시 히데아키를 잇는 이어 일본당구 에이스로 꼽히는 선수였다. 김정규는 자신 있었다. 자기 손에 한국당구의 희망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은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시마다에게 패배한 후,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펑펑 울었어요. 공동3위로 동메달을 손에 쥐었지만 기쁜 감정은 1%도 없었어요. ‘한국당구 최초의 아시안게임 메달’이란 사실도 전혀 위로되지 않았죠. 나 때문에 한국당구가 진보할 기회를 놓쳤다는 자책감만이 가득했어요.”
"(황)득희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기뻣고 기대감이 컸죠" MK빌리어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정규 원장은 "한국당구 최초 3쿠션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한국당구 번혁을 가져오지 못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방콕에서 쓴잔을 마신 한국당구계는 ‘2002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또한번 승부를 걸었다. 당시 김정규 원장은 큐를 잠시 놓고 사업에 손을 대던 때였다. 그러다 대표선수로 황득희(50)가 선발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후배에게 달려갔다.
“선수에겐 기술연습만큼 실전감각 유지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제가 득희의 스파링 파트너가 되기로 자청했어요. 틈만 나면 큐를 들고 득희를 찾아간 것 같아요. 4년 전 선배가 못한 일을 후배가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어요.”
그 바람대로 황득희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당구 남자 3쿠션 단식 정상에 오른다. 그것도 ‘당구황제’ 이상천을 누르고 말이다. 그토록 바라던 아시안게임 금메달이었다. 하지만 기대하던 변혁은 일어나지 않았다. “매스컴에 잠깐 득희의 금메달 소식이 알려진 뒤론 예전과 같았어요. 선수들의 어려운 환경도 그대로였고요. 정말 큰 기대했는데….”
이후 김 원장은 잠시 놓았던 큐를 다시 잡았다. 이 시기를 그는 “내 당구인생의 큰 전환점”이라고 설명했다.
“당구를 깊게 연구해보고 싶었어요. 스포츠로서의 당구를요. 그러다보니 멘탈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았죠. 당시 당구선수들에겐 멘탈관리의 중요성은 물론 그 개념조차 생소했거든요. 경기지도자(2급) 자격증도 그 시기에 취득했어요”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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