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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심판 황연주 “LGU컵 홍진표-브롬달戰 가장 떨려”

“경기땐 선수들 노력 눈에 보여, 이승진 선수는 젠틀맨”
“미녀심판이라고요? 천만에요. 관중성원 고맙고 부끄러워”
“심판 첫해에 판정실수, 선수에 미안해 한동안 속앓이”

  • 기사입력:2017.10.25 15:22:07
  • 최종수정:2017.10.26 11:4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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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주부임에도 대한당구연맹 심판으로 활약하고 있는 황연주 심판은 MK빌리어드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부심 갖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포츠에선 ‘잘해야 본전’인 자리가 있다. 바로 심판이다. 경기 중 존재감을 잘 드러내지 않지만, 승부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위치다.

당구심판도 그렇다. 게다가 당구는 미세한 터치에 따라 득점여부, 더 나아가 승부까지도 결정되는 ‘예민한 스포츠’다. 당구심판은 항상 이를 염두에 두고 있다. 또한 지방출장이 잦고, 보수도 생각보다 높지 않은 편이다. 현재 대한당구연맹에 등록된 심판은 173명. 이 가운데 활발히 활동하는 심판은 50여명쯤 된다.

이처럼 쉽지 않은 당구심판의 길을 주부임에도 걸어가고 있는 황연주(40) 심판을 만났다. 경기 성남시 판교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1시간 넘게 이어졌다.

검정색 니트와 바지를 깔끔하게 차려입고 나온 황연주 심판은 여러 대회를 통해 ‘미녀 심판’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이 나이에 무슨…”이라며 손사래 치던 그는 “심판일은 우울증을 극복하게 해준 고마운 직업”이라며 본인 직업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최근 8~9월, 대회가 연달아 이어졌다. 바빴을 텐데.

=한 달 기준으로 20여일을 대회장에서 보냈다. 최근 가장 힘들었던 대회는 ‘구리 세계포켓볼대회’다. 경기도권에서 열리는 대회는 되도록 출퇴근한다. 9살, 7살 자녀가 있는 주부이기 때문에 하루만 집을 비워도 많은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리 대회도 승용차로 왕복했는데, 운전 시간만 4시간 가까이 걸리더라. (한숨을 쉬며)참 힘들었다.

▲구리에서 일본선수들 통역도 하던데.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고 심판되기 전엔 일본어 번역도 했다. 구리에선 일본 선수들을 계속 따라다닌 건 아니고, 선수들이 통역 요청을 하면 도와줬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힘들줄 알았지만, 즐겁게 했다.

▲어떻게 당구심판이 됐나.

=2015년, 당구를 좋아하는 남편을 깜짝 놀라게 하려고 당구아카데미에 등록했다. 그러다보니 당구 재미에 흠뻑 빠졌고, 조금 더 깊게 당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 당구심판을 찾게 됐다. 2015년 3월 생활체육회 당구심판 자격증을 취득해 장애인체육대회 등에서 당구심판으로 활동했고, 이어 그해 10월 대한당구연맹 심판이 됐다.

▲대한당구연맹 심판이 되는 과정이 궁금하다.

=보통 연간 1~2회 정도 연맹 홈페이지에 공지가 올라온다. 양식에 맞춰 서류를 접수하면 이를 토대로 연맹이 심사에 들어간다. 최근 당구인기가 올라간 탓인지, 서류심사 경쟁도 치열하다고 하더라. 서류 심사 통과 인원은 이틀에 걸쳐 기본적인 당구 룰부터 심판의 인성‧자세 등을 배운다. 이론교육 후엔 실전과 같은 실기시험도 본다. 이를 모두 통과해야 대한당구연맹 정식 심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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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LGU+컵" 경기에서 심판을 보고 있는 황연주 심판. (출처=황연주 심판 페이스북)
▲단 이틀 만에 교육내용 숙지가 가능한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심판에게 꼭 필요한 룰 숙지는 쉽지 않다. 캐롬이나 포켓볼은 상대적으로 대중화돼 있어 큰 어려움이 없지만, 스누커는 한국에서 낯선 종목이고, 규칙도 복잡해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서 경기에 투입되면 초반엔 테이블 옆에서 경기기록 등을 주로 맡는 부심으로 배정돼 (주심으로 투입된)선배들을 보고 배운다.

▲한 대회를 기준으로 보통 몇 경기에 나가나.

=대회마다 투입되는 심판의 수가 다르다. 테이블 10대를 기준으로 하면 심판은 15명 정도 배정된다. 2경기 보고 한 타임 쉴 수 있는 인원이다. 하지만 당구경기 시간은 유동적이다. 스누커는 길면 4시간까지도 걸린다. 그러다보면 로테이션이 꼬인다. 저는 연달아 네 경기 심판을 본 적도 있다.

▲연맹 심판들은 모든 당구대회에 나갈 수 있나.

=아니다. 대회별로 차출돼 배정된다고 보면 된다. 심판들만의 ‘밴드’ 모임방이 있는데, 대회가 있을 경우 그곳에 공지가 된다. 그러면 참가 신청을 하고 선발되는 수순이다. 연맹 대회뿐만 아니라 장애인체육대회, ‘코리아당구왕’ 등 대회에도 참가한다.

▲심판 3년차, 아직도 경기에 앞서 긴장되는지.

=지금도 모든 경기가 떨린다. 선수들을 가까이서 보다보니 그들이 참 많이 노력한 후에 대회에 참가한다는 것을 더 잘 알게 됐다. 만약 제가 실수하면 자칫 그 노력이 허사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매 경기 전에 “제발 실수하지 말아야지”라고 되뇐다. 최근 가장 심장조린 경험은 ‘LGU+컵’ 4강전 홍진표와 브롬달 경기다. 큰 대회이고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터라 더 집중해 공을 쫓았던 것 같다.

▲실수한 경험도 있을텐데.

=물론이다. 심판생활 첫 해였다. 미세한 두께로 공이 맞았는데, 안맞았다고 판정했다. 선수에게 미안한 마음, 또 실수에 대한 자책감으로 속상해 한동안 속이 아팠다. 그 후론 절대 그런 일이 없다. 실수는 아니지만, 속상했던 적도 있다. 1쿠션 경기에서 선수와 우연찮게 동선이 계속 겹치자 그 선수가 심하게 짜증을 냈다. 관중과 관련해 당황스러웠던 적도 있다. 지금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지만 3년전에 응원 열기가 격해져 심한 말이 터져나오는 일이 있었다.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 정신을 다잡고 경기를 무사히 끝냈다.

▲심판들의 과도한 액션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서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선수들에게 물어보고, 저희 심판들끼리 논의한 결과 정확한 판정에 대한 액션을 취해주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 많았다. 대신 지금 심판들이 모여 액션, 목소리 등을 통일하기 위한 매뉴얼 작업을 하려고 한다.

▲심판들이 어려워하는 경기는.

=중계방송 촬영되는 경기가 가장 힘들다. 우리 심판들은 테이블 4면을 모두 돌며 볼을 봐야한다. 하지만 방송촬영 경기는 카메라가 있는 쪽을 가리지 말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테이블 4면 중 한 면을 활용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럴 땐 더 정확히 보려고 노력한다. 제가 눈이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대회 때마다 렌즈를 착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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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인터뷰 중 심판으로서의 포부를 밝히고 있는 황연주 심판.
▲힘든 만큼 보람을 느낀적도 있을텐데.

=경기 후 선수들에게 “고생했다” “수고했다” 는 말을 들으면 뿌듯하다. 가장 매너좋은 선수는 이승진 선수다. 그야말로 젠틀맨이다. 경기 전후에 심판들에게 항상 인사를 해준다. 또 경기때마다 선수들에게 당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배운다. 그런 부분이 큰 메리트로 작용해 이 일을 계속 하는 것 같다.

▲주부와 심판, 그 기로에 서는 순간이 많을 것 같다.

=그렇다. 투입되는 경기수가 많이 늘어난 지난해가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다. 자녀들을 돌보는 문제로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은 남편과 시부모님 모두 저를 응원해 주신다. 비슷한 이유로 현재 제 나이또래 심판이 얼마 없다.

▲대회에서 심판을 소개할 때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크다. 당구팬들에게 인기가 꽤 많은거 같은데. 미녀심판이라 불리기도 하고.

=당구기사를 보면 가끔 댓글에 저를 언급한 내용이 있다. 그럴 땐 얼굴이 화끈거린다. 당구팬들이 사랑과 관심을 가져주신건데, 고마우면서도 부끄럽다. 난 미녀심판과는 거리가 멀다. 예쁜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데.

▲언제까지 심판을 할 생각인가.

=제 여건이 되는 한 계속 할 것이다. 주부로서 반복되는 삶에 우울증이 찾아왔을 때, 심판일은 그걸 극복하게 해줬다. 선수들도 프라이드가 있겠지만 저희 심판들도 비록 박수를 받는 위치는 아닐지라도 자부심을 갖고 경기에 임하고 있다. 항상 최선을 다한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MK빌리어드뉴스 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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