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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쿠션에 미쳤나봐요, 당신도 그래요?

<하~이런의 시시콜콜 당구>⑨
당구 치려고 일주일 1~3회 왕복 120㎞ 운전
토·일 1박2일 일정으로 15시간 이상 즐기기도
퇴근후 아들 식사 챙겨주고 큐 잡는 워킹맘도

  • 기사입력:2021.04.21 17:05:58
  • 최종수정:2021.04.21 17: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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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2019년 서울시 강서구 콘테이너당구클럽에서 열린 ‘제1회 콘테이너당구클럽&MK빌리어드뉴스배 3C 전국대회’에서 경기 중인 당구 동호인들. (사진=MK빌리어드뉴스 DB)
[MK빌리어드뉴스 진성기 편집위원/당구칼럼니스트] “경기도 양주에서 여기까지 왔다고요?”

올해 초 필자가 속한 3쿠션 당구 동호회에 가입한 A씨. 그와 대화를 나누던 중 의외의 얘길 듣고 깜짝 놀랐다. 양주시에서 서울 강서구까지 줄잡아 60㎞나 되는 먼 길을 차를 몰고 온단다. 그것도 일주일에 최소 한번, 많으면 세번이나.

17점을 놓는 그는 먼 길을 청하는 만큼 한번 구장을 찾으면 끝장을 본다. 오전 11시께 도착해 오후 9~10시까지 구장에서 머무르며 게임을 즐긴다. 이따금 ‘1박2일 당구’도 마다하지 않는다. 토요일 오전에 와서 인근에서 숙박한 뒤 다음 날에도 구장을 찾는다. 주말 이틀을 꼬박 강서구 구장에서 지내는 셈이다.

이쯤 되면 그의 3쿠션 당구 사랑은 ‘중증 중독자’ 수준이다. 동호인들 중엔 일주일에 1~2회, 많으면 4~5회 당구장을 찾아야 성이 차는 마니아들이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왕복 120㎞ 거리에 있는 당구장을 다니고, 1박2일을 투자하는 동호인이 또 있을까.

환갑을 바라보는 50대 후반의 A씨는 어디에서 이런 열정이 생겨나는 걸까.

약사인 그는 4구 200점을 치던 지난해 가을 대대 3쿠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서울 강서구에 있는 40년 지기의 집 근처 당구장을 찾은 이후 3쿠션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그저 평범한 마니아였다. 게임을 즐기고 소수의 지인과 어울리는 정도였다. 중독 증세에 불을 지핀 것은 동호회 가입이었다.

동호회 가입을 계기로 수십 명에 달하는 다양한 회원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재미가 더해졌다. 여기에 결정적 ‘한방’이 터졌다. 지난 3월 열린 동호회 친선대회에서 고점자들을 잇달아 꺾고 공동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것. 이를 계기로 그는 ‘중증 중독자’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얼마 전엔 ‘인생 경기’도 경험했다. 25점 고점자와의 경기에서 15이닝만에 승리를 따내며 애버리지 1.133을 기록한 것. 당분간 깨기 힘들 대기록을 세웠기에 그의 중독증세는 완화될 조짐을 보이지 않을 듯하다.

그는 “약국이라는 좁은 우물 안에 갇혀 지내다 보니 바깥 세상과 단절된 채 지내왔다”며 “요즘은 동호회원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그간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고 했다.

당구장까지 운전하는 1~2시간 동안 그의 머릿속엔 흰공, 노란공, 빨간공이 놓인 당구대가 펼쳐져 있고 입가엔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고 한다. “차가 막혀 늦어질 때 조바심, 멋진 샷을 구사해보겠다는 기대감과 설레임이 버무러져 심장이 두근두근 뜁니다. 무언가를 하면서 이런 감정을 갖는 건 처음입니다.”

여성 중에도 중증 중독자가 제법 있다. 그 중에서도 22점을 놓는 B씨는 남다르다. 그는 직장인이면서 초등학생 아들을 둔 40대 중반 워킹맘이다. 일하랴, 아들 챙기랴 짬 내기가 만만치 않은데도 일주일에 평균 2~3회 당구장을 찾아 8~10게임을 즐긴다.

평일에도 퇴근하자마자 아들 저녁식사를 챙겨주고 부리나케 구장으로 달려온다. 남편 눈치는 안봐도 되는 걸까. 다행스럽게도 지방에 소재한 직장에 다니는 남편은 격주에 한번 서울 집에 오기 때문에 당구 치는데 ‘장애물(?)’이 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B씨의 열정적 자세는 경기 중에도 읽힌다. 경기가 안 풀릴 때면 커다란 탄성과 신음을 뱉어낸다. 구장 반대편까지 퍼질 정도로 강렬하다. 무난한 포지션(공 배치)인데 득점에 실패했거나 잘 친 공이 종이 한 장 차이로 빗나간 경우 주변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쉬움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만큼 경기에 몰두한다는 방증일 것이다. 경기가 끝난 뒤엔 득점에 실패했던 포지션을 놓고 복기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B씨에게 당구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인생의 활력소”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짧지만 명쾌하다. 다른 3쿠션 마니아들도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을 듯하다. 그들에게 3쿠션 당구는 언제든지 부르면 달려와 곁에 있어 주고, 지칠 때면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절친’ 같은 존재일 것이다.

A씨는 내년 말쯤엔 25점을 놓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B씨는 매년 1점씩 올리고 싶단다. 담대한 도전장을 내민 두 사람의 앞길에 꽃길이 펼쳐지길 기원한다. 더불어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당구에 아름답게 미친 모습’을 간직하길 기대한다.

[ha-er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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