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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수배 3쿠션’ 우승 서창훈, 고교축구 MVP 출신 유망주였다

‘경남고성군수 당구대회’ 결승서 이충복 꺾고 첫 우승
중고교 축구 득점상·최우수선수상…경희대서 선수 활약
부상으로 대학 3학년때 그만둬…군대체복무 중 당구와 인연
2009년 당구선수 등록…작년부터 시흥시체육회 소속
목표는 랭킹1위 아닌 꾸준한 톱5…월드컵 우승도 꿈꿔
“월드그랑프리서 브롬달과 복식팀…돈주고도 못 살 경험”

  • 박상훈
  • 기사입력:2021.09.01 07:00:02
  • 최종수정:2021.09.01 09: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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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당구선수 서창훈이 MK빌리어드뉴스와 인터뷰 후 큐를 들고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창훈(40·국내6위)이 최근 막을 내린 ‘2021 경남고성군수배 전국당구선수권대회’서 같은 시흥시체육회 소속 선배 이충복(2위)을 50:27(27이닝)로 꺾고 전국대회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09년 선수 데뷔 후 12년만이다.

서창훈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이충복은 서창훈에게 다가가 박수를 보냈다. 짧은 세리머니를 마친 서창훈은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

그의 이전 최고 성적은 2012년 ‘대한체육회장배’ 준우승. 이후 2018년 ‘국토정중앙배’, 2020년 ‘국토정중앙배’ 에서 준결승에 올랐으나 정상 문턱서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부산 출신인 서창훈은 축구 유망주였다. 부산동평초 4학년 재학 중 축구부 감독 눈에 띄어 축구를 시작했다. 이후 ‘축구명문’ 부산 중앙중, 부산상고, 경희대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했다.

중학생때는 부산시축구협회 최다득점상과 최우수선수상, 고등학생때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그러나 중학생때부터 시작된 허리 통증과 부상이 겹쳐 경희대 3학년 1학기에 12년 축구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군 대체복무 후 당구장 매니저 일을 하며 당구를 접한 서창훈은 2009년 경기도 선발전을 거쳐 당구선수가 됐다. 지난 25일 후원사인 서울 길동 DS빌리어즈에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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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서창훈은 당구선수 데뷔 12년만에 전국당구대회 정상에 올랐다.
▲첫 우승 축하한다.

=우승 전과 달리 알아보는 분들도 많아지고 어깨가 무거워졌다. 하하. 평소처럼 매일 낮에 당구장 가서 연습하며 지내는데, 동호인과 한 경기를 하더라도 더 집중하게 되더라.

▲가족들도 많이 기뻐했겠다.

=경상도 집안이라 다들 무뚝뚝하다. 저도 집에서는 거의 말이 없는 편이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대회 때도 조용히 갔다가 들어온다. 성격상 칭찬이나 축하받는 게 어색하다. 집에 가서도 메달과 상장 올려놓고 ‘나 잘게’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부모님은 빌리어즈TV로 결승전 생중계를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하더라. 끝나고 문자가 와있었는데 ‘마지막 3점 남았을 때 빨리 끝내지 속 타게 하냐’는 내용이었다. 하하. 방송을 통해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처음 해봤다. 선수생활을 많이 응원해줬는데 고마운 마음은 늘 있지만 표현을 못했다. 이번 우승으로 보답한 것 같아 기쁘다.

▲가족관계는.

=부모님과 형이 두 명 있다. 형들도 당구 동호인이다. 큰형은 주변에 동생 자랑을 많이 한다. 제가 모르는 당구인들도 형을 통해서 저를 알고 있을 정도다. 작은형은 제가 차가 없을 땐 경기장까지 태워주는 등 많이 도와줬다.

▲우승축하 자리는 없었나.

=결승전이 밤늦게 끝나 고성에서 바로 부산 황봉주 선수 집으로 가 둘이 간단하게 소주 한 잔 했다. 봉주는 같은 부산 출신이라 최근 1년 사이에 많이 가까워졌다. 대회 다음날에는 봉주가 일하는 당구장에서 당구도 치면서 시간을 보내고 왔다. 이번 대회 결과 제가 랭킹6위, 봉주가 12위가 됐는데 다음 대회에서 바로 따라잡겠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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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MK빌리어드뉴스와 인터뷰 중인 서창훈.
▲황봉주 선수와는 축구선수 출신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축구선수 생활은 언제까지 했나.

=부산동평초 4학년에 시작해 부산중앙중-부산상고-경희대 3학년 1학기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장에서 살다시피 할 정도로 운동을 좋아했고, 키도 커서 체육은 뭐든 1등이었다. 축구선수에 뜻이 있는 건 아니었는데 축구부 감독님 눈에 띄어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다. 봉주는 저보다 2살 어리지만 비슷한 시기에 부산 덕천초-부산진중-경남공고에서 공을 찼다. 제가 부산에서 축구로 나름 유명했는데 봉주는 끝까지 제 이름을 못들어 봤다고 이제 그만 물어보라고 한다. 하하.

▲축구선수 할 때 부산시축구협회로부터 1996년 최다득점상과 최우수선수상, 1999년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는등 축구유망주였는데, 축구는 왜 그만두게 됐나.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허리디스크,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척추분리증으로 고생했다. 선수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이게 고질병이 됐다. 재활 훈련을 하면 괜찮은데 아무래도 축구가 격한 운동이라 선수생활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선수를 그만뒀을 때가 2002년 한일월드컵으로 전국이 난리였을 때다. 혹시 미련이 남을까 봐 월드컵 경기도 거의 안 봤다. 길을 가다가도 운동장이 보이면 일부러 다른 길로 돌아갈 정도였다. 축구만 하고 살았는데 앞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싶어 방황도 많이 했다. 가족들에게도 1년 동안은 그만뒀다는 말을 못하고 재활 중이라고 했다. 가끔 축구하던 동료를 만났을 때 ‘축구선수로 일이 잘 풀렸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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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부산상고 축구부 시절 서창훈(왼쪽 첫 번째)과 동료 선수들.(사진=서창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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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서창훈이 중고교 축구선수 시절 부산축구협회로부터 받은 상장.(사진=서창훈 제공)
▲당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군 대체복무 중 당구를 접했고 이후 평택에서 당구장 매니저 일을 하며 본격적으로 당구를 쳤다. 당시 동호인들이 당구선수 해볼 생각 없느냐며 경기도 선수선발전에 나가보라고 권유했다. 2008년 선발전에 처음 나갔다가 탈락했고, 2009년 선발전에서 통과했다.

▲축구는 단체종목이고 당구는 개인종목인데, 어떤 종목이 더 적성에 맞나.

=단체종목과 달리 개인종목은 모든 책임을 혼자 지는 거라 오히려 당구가 마음은 편하다. 다른 사람 핑계 댈 것 없이 스스로 반성하면 되고, 더 열심히 연습하면 된다. 또 당구는 상대방과의 경기라기보다는 자신과의 경기라 생각한다.

▲지난해부터 시흥시체육회 소속 선수로 활동 중이다.

=시흥당구연맹 김종근 회장님이 도움을 주셔서 작년부터 시흥시체육회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됐다. 연봉 받으며 선수생활 하다보니 소속감도 강해지고, 경기에 임하는 자세도 달라진다. 대회 때마다 숙박비도 지원해준다.

▲결승전 상대가 같은 시흥시체육회 소속 이충복 선수였는데.

=결승전 자체보다 (이)충복이 형이 주는 부담감이 컸다. 제가 당구를 시작할 때부터 높은 곳에 있던 대선배 아닌가. 또 충복이 형과 경기할 때마다 제가 져서 조금 위축된 것도 있었다. 그 징크스를 깨서 좋았고, 충복이 형이 현장에서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해줘서 기뻤다.

▲결승전때 컨디션이 좋아보였다. 8점, 7점, 11점씩 하이런도 기록하고.

=하이런이 잘 나올 때 오히려 무섭다. 선수들 경기를 유심히 보면 하이런 후에 공타가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이런 기록에 흥분되기도 하고 팔도 떨린다더라. 저도 하이런 점수가 10점을 넘어가면 심장이 떨린다. 가장 좋은 건 7점, 8점 중장타가 자주 나오는 것이다. 기차처럼 ‘칙칙폭폭’(7-8점) 달린다는 의미로 ‘칙칙폭폭’이라고 부르는데. 하하. 이런 ‘칙칙폭폭’ 이 한게임에 두세 번 나오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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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서창훈은 고성군수배에서 생애 첫 우승 후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사진=본사 DB)
▲결승전 끝나고후 눈물을 보였는데.

=경기 끝나고 충복이 형, 심판진들과 인사할 때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런데 의자에 앉는 순간 울컥했다. 천장도 보고 헛기침도 하면서 참으려고 했는데 안되더라. 주변에서 모두 제가 눈물 흘릴 줄 몰랐다고 한마디씩 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었다. 4월 ‘국토정중앙배’에서 (한)춘호 형이 우승 후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고 저도 공감하면서도 ‘난 아무리 그래도 울진 않을 거다’라고 했는데 마음대로 안 되더라. 하하.

▲월드3쿠션그랑프리 참가가 도움이 됐다고.

=그렇다. 지난 7월 원주에서 열린 ‘월드3쿠션그랑프리’ 출전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 ‘코로나19’로 대회도 거의 없고 선수로서 긴장감이 풀려있을 때였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오랜 기간 경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연습도 하고 다시 채찍질하게 됐다. 이게 ‘고성군수배’까지 연결됐다.

▲월드3쿠션그랑프리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기를 많이 해봤는데, 기억에 남는 선수는.

=‘슛아웃’복식을 함께한 토브욘 브롬달(스웨덴·세계3위)이다. 정말 대단한 선수라 실수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심리적으로 위축되기도 했다. 그런데 제가 실수하면 한국어로 ‘동생 괜찮아. 나도 실수해’라며 편하게 대해주더라. 최종 3위로 성적도 좋았다. 대회 끝나고 정말 고맙다고 인사했다. 언제 또 브롬달 선수와 같이 팀을 이뤄 경기해보겠나.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좋은 경험이었다. 이벤트 경기였지만 개인전보다 더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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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서창훈은 지난 7월 막을 내린 `호텔인터불고원주 월드3쿠션그랑프리` 슛아웃 복식 경기서 토브욘 브롬달과 호흡을 맞췄다. 카메라를 발견하고 포즈를 취한 서창훈과 브롬달.(사진=본사 DB)
▲사용하는 당구 큐는.

=후원사인 DS빌리어즈의 ‘명우 큐’다.

▲경기 전 자신만의 루틴이 있다면.

=대회 일주일 전부터 집중훈련을 시작하는데 하루 이틀 전에는 휴식을 취하면서 컨디션을 조절한다. 당구장에서 경기할 때도 감각을 익힐 수 있게 몸 푸는 정도로만 한다. 당일에는 경기 세 시간 전에 가볍게 식사하고 말수도 좀 줄이면서 집중력을 키운다.

▲앞으로 목표는.

=국내 랭킹 1위나 우승으로 반짝하기 보다는 5위 안에 꾸준히 머무르는 것이다. 초청대회나 국제대회에 랭킹 한 단계 차이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 매번 대회에서 기복 없이 중상위권 성적을 내고 싶다. 또 국내대회 우승도 했으니 3쿠션월드컵에서 최고 성적인 8강(2019년 벨기에 블랑켄버그3쿠션월드컵)을 넘어 4강, 결승, 우승까지 하는 것도 목표다.

[박상훈 MK빌리어드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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