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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필현의 컬러오브머니]‘응답하라 1994 포켓볼 전성시대’ 하늘 찔렀던 포켓볼 인기

①90년대 압구정동 중심으로 포켓볼 열기 확산
세계적 스타 ‘자넷리’ 등장도 인기에 한몫
포켓볼은 3쿠션-스누커와 형제 당구종목
3쿠션 열풍에 포켓볼 더하면 당구 미래 밝아
“선수와 지도자 포켓볼 중요성 알았으면”

  • 기사입력:2022.02.20 09:38:28
  • 최종수정:2022.08.01 17: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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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우리나라에서 포켓볼은 90년대 중반 전성기를 맞았으나 98년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으며 오래가지 못했다. (사진=영화 ‘컬러오브머니’ 장면 캡처)
[편집자주]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당구강국이다. 그 중에서도 3쿠션은 세계 최대시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수와 동호인층이 두텁고 프로리그도 있다. 그러나 3쿠션을 제외한 다른 당구종목은 존재감이 갈수록 작아져 아쉬움을 주고 있다. 특히 포켓볼은 90년대 중반 반짝 전성기를 맞기도 했지만, 생명력이 오래가지 못했다. 비록 포켓볼 인구는 그닥 많지 않지만 포켓볼은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당구종목이다. 30년 동안 선수와 지도자로 포켓볼과 함께한 대한당구연맹 조필현 이사를 통해 포켓볼에 관한 소소한 얘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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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포켓볼은 90년대 들어 서울 압구정동을 중심으로 젊은층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진=영화 ‘컬러오브머니’ 장면 캡처)
당구는 크게 캐롬빌리어드(3쿠션, 1쿠션) 포켓빌리어드(8볼, 9볼) 스누커(잉글리시빌리어드) 3종목으로 나뉜다. 캐롬은 17~18세기경 유럽내륙을 중심으로 전파됐고, 포켓은 원래 ‘영국식 포켓볼’ 스누커가 미국으로 건너가 풀(Pool)이란 이름으로 변형된 종목이다. 그래서 초창기 포켓볼은 스누커와 흡사한 점이 많다.

여기서 영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가 엿보인다. 영국은 보수적이며 전통적인 스누커를 그대로 계승, 세계적인 프로 스포츠로 발전시켰다. 반면 미국에선 스누커를 당구대 사이즈는 줄이되 공과 포켓 크기는 키우며 포켓볼을 좀더 대중적으로 발전시켰다.

필자가 처음 당구를 접한 시기는 80년대 중후반이다. 톰 크루즈와 폴 뉴먼이 나오는 당구영화 ‘컬러오브머니’(The Color of Money)를 보고 포켓볼에 매료되어 당구장을 찾게됐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 당구의 중심은 4구였고, 당구장에는 대부분 중대만 있었다. 따라서 처음에는 보통 한국 중년 남자들처럼 4구 당구를 시작하게 됐다. 그럼에도 마음 속에는 포켓볼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 일단 4구라도 잘 치고 있으면 언젠가 포켓볼을 치더라도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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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포켓볼은 3쿠션과 스누커의 중간적 위치에 있으며 남녀3쿠션 선수 중에는 포켓볼 선수 출신이 적지 않다. (사진=영화 ‘컬러오브머니’ 장면 캡처)
기대가 현실이 되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5년쯤 지났을까, 서울 압구정동을 시작으로 어마무시하게 포켓볼이 성행했다. 어렸을 때 나의 바람이 이뤄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와 미국의 문화‧경제적 격차가 컸을 때라 미국문화에 대한 동경도 포켓볼 인기에 한몫했다. 거기에 ‘자넷리’ 라는 재미교포 세계적 스타까지 등장하면서 포켓볼 인기는 가히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포켓볼 인기가 한창이던 1994년 필자는 서울 신촌 녹색극장이 운영하는 대형 포켓볼 전용클럽(포켓 테이블 27대) 매니저로 근무하며, 미국 프로투어 진출 꿈을 꾸고 있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나오는 그 시절 신촌을 떠올리면 된다. 당구테이블 27대는 풀가동됐고, 손님이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평생에 볼 연예인을 그때 그 포켓볼클럽에서 다 봤다. 그만큼 포켓볼 인기가 대단했다.

그러나 포켓볼 황금기는 짧았다. 98년에 터진 IMF외환위기 영향이 컸다. 당시 필자는 홍대근처에서 포켓볼클럽을 직접 운영했으나, 경영난을 버티지 못하고 99년에 문을 닫았다. 젊은층의 트렌드문화로 자리잡아가던 포켓볼이 당구대세로 뿌리를 내리기 전에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3쿠션 열풍이 불고 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3쿠션 프로리그가 생겼고, 전국에 대대전용 클럽이 성업하고 있다. 또한 3쿠션월드컵과 세계선수권 등 국제무대에서 우리 선수들의 국위선양이 이어지고 있다.

필자는 20대 초반 3쿠션 선수를 거쳐 약 30년간 포켓 선수와 지도자로 활동했다. 어찌 보면 캐롬과 포켓을 다 경험해본 몇 안되는 당구인이다. 당구발전을 염원하는 당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 3쿠션 열기에 포켓볼까지 더해진다면 우리나라 당구 미래는 훨씬 밝다고 할 수 있다. 중장년층이 주로 찾는 실버스포츠를 넘어 온 국민이 함께하는 국민 레저문화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포켓볼은 캐롬과 스누커의 중간적 위치에 있다고 본다. 현재 국내 남자 스누커 선수 대부분은 포켓 선수에서 전향했고, 여자 3쿠션에서도 포켓 선수 출신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포켓볼로 당구를 시작하면 어느 종목으로든 진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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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국내 여자포켓볼 랭킹3위 서서아(전남당구연맹)선수의 경기 모습. (사진=본사 DB)
‘3쿠션 황제’로 불리는 스웨덴의 토브욘 브롬달도 3쿠션 선수인 아버지에게 처음 당구를 배울 때 3쿠션과 포켓볼을 함께 배웠다고 한다. 브롬달은 세계적인 포켓볼 선수와 포켓볼 경기를 벌여 이긴 적도 있다. 10여년 전에는 서울 잠실 롯데월드에서 국내 포켓볼 최강자 정영화(서울시청)와 이벤트 경기를 해 3쿠션과 포켓9볼, 8볼 3종목을 모두 승리한 바 있다.

최근 군에서 전역한 조명우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조명우는 2017년 대만 유니버시아드 포켓볼 대표 선발전에 출전, 한큐에 9볼 한 박스를 ‘브레이크 런아웃’하기도 했다. 당시 당구연맹 포켓볼팀장이던 필자는 온좋게도 그 경기를 현장에서 직접 지켜봤다. 비록 대표로 선발되지 못했지만, 조명우의 포켓볼 실력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대표는 2명을 뽑았는데, 조명우는 공동2위를 차지했으나 세트득실에서 1세트가 뒤져 선발되지 못했다)

포켓볼과 3쿠션, 스누커는 형제 종목이지만 경기방식 등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하지만 두께와 당점, 공을 다루는 기본 원리 등에선 똑같다. 앞서 브롬달과 조명우의 예도 그렇지만 포켓볼과 3쿠션을 함께 즐기는 필자도 이 부분을 체감한다.

당구지도자 역시 포켓볼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면 자신의 영역을 보다 넓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구종목에 관계없이 선수든, 지도자든 포켓볼의 중요성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필현 대한당구연맹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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