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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런의 시시콜콜 당구] 3쿠션 당구 스코어 ‘21대 0’ 믿기지 않네

⑤애버리지 4.0 등 대기록 ‘인생경기’로 남아
60대가 1.6 치면 ‘에이지슛’ 기념패 어떨까

  • 기사입력:2021.01.30 08:30:02
  • 최종수정:2022.08.01 17:4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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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2019 LGU+컵 3쿠션마스터스에 출전한 딕 야스퍼스
[MK빌리어드뉴스 진성기 편집위원/당구칼럼니스트] “나 챔피언이야!”

지난해 필자가 속한 3쿠션 동호회 월례대회에서 우승한 친구가 크게 외쳤던 한 마디다. 권투선수 홍수환이 1974년 세계 밴텀급 타이틀을 따낸 뒤 했던 말을 흉내냈다. 홍수환 선수는 챔피언에 오른 뒤 모친과의 통화에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외쳐 한 시대를 풍미하는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그 친구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챔피언’이라며 대놓고 자랑한다. 당시 20점을 놓은 그는 서바이벌 방식으로 치른 결승전에서 28점, 27점, 25점 등 강자들을 모두 물리쳤다. 그에겐 기억에 남을 ‘인생경기’가 된 셈이다. 아마추어 골퍼가 홀인원을 했거나 난생 처음 싱글 점수를 기록한 라운딩을 오래 간직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3쿠션 동호인들은 자신만의 ‘인생경기’ 혹은 ‘인생샷’을 갖고 있다. 주변에 물었더니 다양한 기록들이 나왔다. 특히 생애 최고 애버리지를 올린 경기를 기념비적 사건으로 꼽는다는 응답이 많았다.

한 동호인은 지난 2016년 당시 25점을 놓고 애버리지 2.08을 기록한 경기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것도 32점 고점자를 12이닝만에 꺾었다고 했다. 20점대 중반 동호인에게 애버리지 2는 수백번 경기를 해야 한번 나올 만한 대기록이다. 그는 현재 28점으로 올랐지만 4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당시 애버리지를 넘지 못하고 있다.

30점 이상 고점자들의 애버리지 기록은 어느 정도일까. 필자가 속한 동호회 회장(35점)은 깜짝 놀랄 숫자를 들이댔다. 자그마치 4.00. 2018년 32점을 놓고 8이닝만에 상대방(20점)을 제압했다고 한다. 그는 32점을 놓던 2016년 서울당구연맹배 동호인대회 결승전에서 1점 차이의 극적 승부 끝에 우승컵을 차지한 기억도 환상적 순간으로 기억한다.

18점 여성 동호인은 37점을 놓는 선수를 꺾은 경기를 꼽았다. 36대 16 스코어 상황에서 상대방이 득점에 실패한 틈을 타 한꺼번에 2점을 때려 극적 승리를 따낸 것. 이 때 생애 최고 애버리지도 기록해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동호회 교류전에서 40점 선수와 결승전을 치른 기억을 꼽은 동호인(24점)도 있다. 2018년 당시 20점을 놓았던 그는 50명 가까운 관중의 시선을 받으며 극도의 긴장감 속에 경기를 치렀다고 했다. 그는 “상대방이 초구에 11점을 치고 나가 멘붕에 빠지기도 했지만 한점 한점 따라 잡아 각각 1점씩 남겨 놓은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고 회상한다. 비록 28대 13(자기 점수의 70%를 놓고 치는 경기 방식) 1점 차로 패했지만 그 때의 짜릿한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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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필자가 기록한 "21대 0" 점수판
필자도 잊지 못할 순간을 간직하고 있다. 지난 2019년 친구(18점)와 경기를 했는데 믿을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 `21대 0`.

친구는 1점도 내지 못한 채 19이닝만에 경기가 종료됐다. 점수판을 본 지인들은 “친구 사이에 너무 한 것 아니냐. 1점이라도 내도록 기회를 줬어야지”라며 웃었다. 필자는 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21대 0’이 찍힌 점수판을 촬영했다. 이후 종종 사진을 꺼내 친구를 놀려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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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딕 야스퍼스가 2018년 애버리지 10.000을 기록한 뒤 점수판 앞에서 상대 선수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코줌 홈페이지 캡처)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인생경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딕 야스퍼스는 지난 2018년 4이닝만에 40점을 채워 애버리지 세계신기록 10.00을 기록했다. 종전 기록은 에디 먹스의 8.67이었다. 하이런 세계신기록은 레이몽 클루망(1998년), 프레드릭 쿠드롱(2013년) 등이 기록한 28점이다.

인생경기를 얘기하다 보니 아쉬운 게 있다. 골프에서는 인생 후반에 이루는 ‘에이지 슛’(age shoot)을 위대한 업적으로 치켜세우는데 당구에는 그런 게 없다.

‘에이지 슛’은 18홀 라운딩에서 자기 연령 이하의 타수로 끝내는 것을 일컫는다. 50대 타수는 사실상 불가능한 기록이므로 60대 이상 연령층에게 기회가 열려있는 셈이다.

선수 출신 중에는 ‘에이지 슛’ 사례가 종종 있지만 아마추어에겐 매우 진기한 기록이다. 유명 인사 중에는 지난 2019년 별세한 고(故)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2008년 당시 나이와 같은 84타를 기록해 에이지 슈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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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골프의 에이지 슛에 버금가는 3쿠션 당구 위업은 어떤 게 있을지 생각해봤다.

필자가 속한 동호회의 최고 연장자(64세‧25점)에게 물었더니 최고 애버리지가 1.39라고 한다. 정상급 선수들의 평균 애버리지는 1.3~1.5 정도로 알려진다.

드물겠지만 60대 이후 연령층이 선수들을 뛰어넘는 기록을 낸다면? 이는 누가 봐도 어마무시한 노익장을 과시했다고 평가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60대의 6을 가져와 애버리지 1.6 이상을 기록할 경우 ‘3쿠션 에이지 슛’으로 기념해주면 어떨까.

인생 후반부에 들어선 아마추어가 대기록을 세웠으니 함께 기뻐하고 응원하자는 취지다. 혹여 단골 구장에서 60대 이상 ‘큰형님’이 1.6 이상을 친다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고 예쁜 기념패도 선사해주자. 그러면 ‘에이지 슛’을 기록한 큰형님은 골든벨을 울릴 지도 모른다.

[ha-er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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