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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런의 시시콜콜 당구] 3쿠션 당구에 오락적 요소 불어넣는 ‘플루크’

⑦다른 스포츠종목에 비해 요행 발생 빈도 월등
결정적 순간 어이없는 샷이 승부를 뒤집기도

  • 기사입력:2021.03.10 16:32:25
  • 최종수정:2022.08.01 17:3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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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첫 회에서 수구와 목적구(적구)는 뜻이 안 통하는 엉터리 일본식 한자어이므로 적절한 우리말로 바꿔쓰자고 제안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이 칼럼에서는 수구 대신 내공, 1목적구 대신 앞공, 2목적구 대신 뒷공으로 표기하겠습니다. 더 좋은 우리말 표현이 있다면 제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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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2016년 구리3쿠션월드컵 16강전에서 강동궁이 플루크로 득점한 뒤 상대방인 최성원에게 군대식 경례로 미안함을 표시하고 있다. (사진=엠비씨스포츠플러스 유튜브 캡처)
[진성기 편집위원 / 당구칼럼니스트]

#장면 1

지난 3월 초에 열린 PBA SK렌터카월드챔피언십 결승전 4세트. 다비드 사파타에 7대8로 뒤지고 있던 강동궁의 공격 차례. 강동궁은 원뱅크 넣어치기 샷을 시도했지만 앞공을 맞은 내공은 뒷공을 맞히지 못하고 지나쳐버렸다. 그런데 웬걸, 내공이 대회전 형태로 크게 도는 동안 나머지 2개의 공이 키스(쫑)가 났고, 결국 테이블을 한 바퀴 돌아온 내공이 코너 쪽에서 뒷공을 맞아 득점이 이뤄졌다. 2점을 얻어 9대8로 역전에 성공한 강동궁은 내리 6점을 더해 15대8로 세트를 따냈다.

#장면 2

2016년 후루가다 3쿠션 월드컵 32강전. 다니엘 산체스와 김재근이 맞붙었다. 산체스가 22대 12로 앞서고 있는 상황. 산체스는 반대편 단축 근처에 모여 있는 2개의 공 가운데 1개를 얇게 맞히는 세워치기를 시도했는데 앞공과 뒷공의 키스에도 불구하고 득점에 성공했다. 이번엔 31대 20 상황. 산체스가 시도한 뒤돌리기는 키스가 났지만 이것도 득점으로 연결됐다. 두 번 키스의 도움을 받은 산체스는 김재근을 꺾고 16강에 진출했다.

두 장면에서 보듯이 3쿠션 당구경기에선 플루크(fluke), 즉 요행이 드물지 않다. 플루크는 샷을 한 사람이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경로로 공이 굴러가 점수를 내는 것을 의미한다. 야구에서 빗맞은 공이 야수들 사이에 떨어져 안타가 만들어지거나, 탁구에서 공이 모서리에 맞아 득점되는 것과 엇비슷하다. 골프에서 언덕을 향해 날아간 공이 나무에 맞고 굴러 내려와 핀 가까이에 멈추는 것도 다르지 않다.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도 플루크는 이따금 등장한다. 하지만 발생 빈도로 따지자면 당구만한 종목이 없을 듯하다. 이는 3쿠션 당구가 여타 스포츠 종목과 크게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3쿠션에서 가장 흔한 플루크는 키스에 의한 득점이다.

키스가 발생하면 공이 종잡을 수 없는 길로 들어서 대개 득점에 실패한다. 이 때문에 선수나 아마추어 고점자들은 샷을 할 때 키스 배제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 키스가 발생하지 않는 경로, 키스를 일으키지 않는 두께를 설정해 샷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종종 키스를 피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공과 앞공, 혹은 앞공과 뒷공이 충돌했는데도 뜻밖의 득점이 만들어지는 행운을 누릴 때가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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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접시(되돌아오기)를 치려다 4뱅크샷으로 득점한 사례.
앞공 두께를 잘못 맞혀도 득점이 이뤄질 때가 있다. 반대편 단축에 붙어 있는 앞공의 3분의 1 두께를 설정하고 대회전을 구사했지만 너무 얇게 맞아 종더블샷으로 득점되는 식이다. 내공이 앞공을 너무 두껍거나 얇게 맞아 예정에 없던 경로로 공이 진행했지만 내공이 테이블 어딘가에서 뒷공을 절묘하게 만나 득점이 되는 것이다.

23점을 놓는 필자는 얼마 전 26점을 놓는 상대방과 접전을 펼치다 마지막 1점을 이런 식으로 득점했다. 경기 중간도 아닌 마지막 23점째 득점을 플루크로 따냈으니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봐 줄만하다. 이보다 훨씬 터무니없는 플루크엔 무안함과 허탈함, 웃음이 교차한다. 대표적인 게 이른바 `빽차(에어볼)`를 했는데 득점이 이뤄질 때다.

이를 테면 이렇다. 얇은 두께로 앞공을 맞히려고 했지만 내공이 허공을 가르며 그냥 지나쳐버린다. 당연히 득점이 될 리가 없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내공이 쿠션을 세번 맞고 나머지 2개의 공을 차례로 맞히는 것이 아닌가. 행운의 여신이 깜짝 등장해 뱅크샷 득점을 만들어 준 것이다. 애당초 이 같은 뱅크샷을 구상했다면 성공 확률이 지극히 떨어졌을텐데, 에어볼이 점수로 연결되니 황당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플루크의 `끝판왕`은 아마도 `삑사리`에 의한 득점이 아닐까. `삑` 하는 소리와 함께 내공이 비실비실 엉뚱한 방향으로 출발했지만 앞공을 먼저 맞거나 쿠션을 세번 맞고 득점이 되는 경우다. 매우 드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삑사리를 냈는데도 뱅크샷 형태로 득점이 되자 샷을 한 선수가 득점을 포기한 사례가 실제로 공식대회에서 있었다고 한다. 황당한 득점을 받아들이기엔 선수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친구 사이 경기에선 플루크가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황당한 플루크로 점수를 얻으면 “그게 무슨 당구냐”며 견제구를 날린다. 그 경기에서 패하면 “플루크로 먹고 사냐. 앞으로 너랑 안친다”며 노골적으로 핀잔을 주기도 한다.

플루크는 비정상적 득점이라는 점에서 선수의 멘탈을 뒤흔든다. ‘심리적 트리거(trigger)’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플루크가 경기 초반 한두 번 나와 1~2점을 움직이는 정도라면 경기 흐름이 바뀌지는 않는다. 플루크를 당하면 속은 상하지만 오히려 상대방의 컨디션이 나쁘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기 중후반 박빙 승부에서 어처구니없는 플루크가 나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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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옆돌리기를 하려다 너무 얇게 맞아 역회전이 걸려 득점한 사례.
행운의 득점을 얻은 사람은 ‘이게 웬 떡이냐’며 심기일전하는 계기가 된다. 점수가 크게 뒤져 낙담하던 차에 집중력이 살아나면서 플루크를 5점 이상 연타로 이어가 판세를 뒤집기도 한다.

반면 플루크를 얻어맞은 상대방은 “어라. 이게 뭐지”라는 생각에 속이 쓰리다. 여기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플루크 상황에 집착하면 평정심을 잃으면서 샷마저 망가지고 만다. 결국 한쪽은 사기충천, 다른 한쪽은 멘탈붕괴로 이어져 승패가 갈리는 것이다.

세간에 전해지는 ‘당구병법’에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항목이 들어있다. ‘가급적 플루크를 쳐서 상대방의 기를 죽인다’ ‘플루크는 필히 장타로 연결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플루크가 다분히 심리를 건드리는 요소임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런 점에서 플루크는 찬반 양론이 충돌하는 지점이 된다.

3쿠션의 묘미를 배가시켜 주는 양념 역할을 한다는 긍정론이 있는 반면 승부를 뒤바꿀 정도로 경기 양상을 좌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부정론도 제기된다. 앞서 강동궁이 플루크를 발판삼아 한꺼번에 8점을 얻어 세트를 가져간 경우가 후자에 해당한다.

선수 간 비공식 경기에서 플루크를 점수로 인정하지 않는 이른바 ‘경로 실명제’를 적용하는 것도 플루크 부정론과 맞닿아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뒤돌리기 배치의 경우 3~5쿠션 모두 득점이 가능한 이른바 ‘양빵’ 상황도 나오는데, 샷을 하기 전에 몇 쿠션으로 맞힐 것인지 밝힌다. 3쿠션이라고 했는데 4쿠션이나 5쿠션으로 맞으면 점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선수들이 정밀한 샷을 훈련한다는 취지로 이같은 방식의 경기를 하는 것이지만 그만큼 플루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야구에서 빗맞은 안타, 탁구에서 모서리 득점이 나올 경우 이를 얻은 쪽은 환호하며 기세를 올린다. 반면 3쿠션 당구에서 플루크로 득점한 선수는 고개를 숙이거나 팔을 들어 미안함을 표시한다. 환호는 있을 수 없다.

플루크를 대하는 시각이 다르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3쿠션 당구에서 플루크는 경기력의 일부인가 아닌가? 요행이 승부를 뒤바꾸는 스포츠종목이 또 있을까? 여러분 생각은 어떤지? [ha-er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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