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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時論] 한국당구 미래 ‘학생당구’에 더 많은 관심 가질 때다

학생당구 선수 2019년 기점 꾸준히 증가, 올해 128명
김행직 베겔3쿠션월드컵 우승·PBA 출범 계기
한체대·숭실대·남부대 당구특기생 문호도 넓어져
그럼에도 학생선수 및 학교 당구부는 ‘절대 부족’
“진학할 상급학교 없어 당구선수 꿈 접기도”
韓당구 튼튼한 뿌리 위해 당구계 힘 모을 때

  • 기사입력:2021.12.31 12:59:38
  • 최종수정:2022.01.02 16:5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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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지난 12월 11일 전남 영광스포티움에서 열린 ‘2021 전국종별학생당구선수권대회’에서 경기중인 학생선수들.
연말을 맞아 당구 빅이벤트가 잇따라 열려 당구팬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대한당구연맹(KBF)이 주최한 ‘허리우드KBF3쿠션마스터즈’에서는 황봉주가 선수등록 14년만에 첫 개인전 우승을 차지하며 주인공이 됐다. 이번 시즌(21-22) 5번째 PBA투어인 NH농협카드배는 내년 초까지 계속된다. 누가 또 우승 감격을 누릴지 기대된다.

이런 굵직굵직한 대회 속에 의미있는 당구대회가 이달 초순께 전남 영광에서 열렸다. 한국당구 ‘미래’들이 실력을 겨루는 ‘2021년 전국종별학생당구선수권대회’다. 1년에 한번 열리는 대회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학생대회다.

대회장인 영광스포티움 실내보조체육관은 아담했고 대회장에 도착했을 무렵, 선수들은 예선을 마치고 8강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코로나19’로 당연히 무관중이었고, 관중석엔 출전대기 중인 선수와 몇몇 학부모만 띄엄띄엄 눈에 띄었다.

이번 대회에는 초중고등부(남녀) 캐롬과 포켓볼에서 75명이 참가했다. 2019년 78명보다는 약간 줄었다. (지난해는 ‘코로나19’로 미개최)

10개 테이블에서 8강 경기가 시작되자 경기장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조끼와 넥타이 차림 학생선수들은 성인선수못지않은 진지한 모습으로 경기에 임했다. 테이블마다 팽팽한 경기가 이어지면서, 관중석 학부모들은 가슴을 졸여야 했다.

이틀 동안 치러진 대회 결과, 3쿠션 남녀 고등부 우승 김한누리(수성고부설방통고) 박정현(인천여고), 포켓9볼 고등부 우승 김혜림(성암국제무역고) 등 24명의 입상자가 나왔다. 입상한 선수나 최선을 다했지만 입상권에 들지못한 선수 모두에게 격려를 보낸다. 당구선수 여정은 길고길다. 학생선수는 기초를 다지고 실력을 쌓는 과정이지 완성 단계가 아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대한당구연맹에 따르면 전국의 학생당구 선수는 128명이다. 급증은 아니어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학원스포츠 기반이 취약한 당구계 현실에선 적지않은 숫자다. 축구와 야구 등 인기종목과 테니스 탁구 등 다른 개인종목은 대개 학원스포츠로 출발, 성인선수(또는 프로대회)로 꽃을 피운다. 유감스럽게도 당구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재 당구계를 주름잡는 주요선수 대부분(일부를 제외하고)은 학원스포츠가 배출한 인재가 아니다. 스스로 실력을 쌓아 동호인 활동을 거쳐 선수가 된 케이스다.

그나마 학원스포츠가 전무하다시피한 당구계에 수원 매탄고 당구부 탄생은 가뭄에 단비같은 일이었다. 2007년 출범한 매탄고 당구부는 ‘당구 사관학교’라 불릴 정도로 우수한 선수를 많이 배출했다. 김행직 조명우 김준태 선지훈 오태준 김태관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한국선수 중 3쿠션월드컵 최다(3회) 우승의 김행직과 20대 초중반에 이미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조명우는 학생당구 선수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있다. 여자골프에 ‘박세리키즈’가 있듯이, 당구계에도 ‘김행직키즈’ ‘조명우키즈’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포켓볼에서도 현재 성인무대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이우진(국내2위) 서서아(3위)가 대표적인 학생당구 선수 출신이다. 세 살 터울인 두 선수는 나란히 전국학생당구선수권 우승과 세계주니어선수권 준우승을 거쳐, 성인무대 정상에 올랐다.

당구계는 5060세대가 회귀하는 것과는 반대로 젊은층의 신규 유입이 부족하다. 이런 가운데 2019년을 기점으로 학생당구선수가 늘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대목이다. 2019년 95명에서 2020년에 121명으로 26명(27.3%)이나 늘었고, 다시 2021년 7명이 늘어났다. 2019년에는 당구계에 좋은 일이 많았다. 김행직이 자신의 세 번째 3쿠션월드컵(베겔3쿠션월드컵) 정상에 섰고, PBA(프로당구)가 출범한 해다. 아울러 국토정중앙배와 LGU+마스터즈, 3쿠션월드컵, PBA투어에 대한 TV중계 등을 통해 당구의 미디어 노출이 부쩍 증가했다. 이로 인해 과거 당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대폭 개선됐고, 이는 자연스럽게 ‘제2의 김행직’ ‘제2의 조명우’를 꿈꾸는 학생선수 증가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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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2021 전국종별학생당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학생선수들의 부모들이 관중석에서 자녀들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영광 대회장에서 만난 선수와 부모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이형호 군(김해 삼방고등학교 2)은 “(2019년)중학교 3학년때 3쿠션월드컵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PBA가 생기는걸 보고 당구선수 꿈을 키웠다”며 “처음에는 부모님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열심히해서 훌륭한 선수가 되라고 하신다”고 말했다. 이군은 스트록이 부드러운 허정한 선수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이 대회에서 여자 고등부 3쿠션 공동3위에 입상한 최봄이(의정부 상우고2)양 역시 부모님의 전폭적인 응원을 받고 있다. 관중석에서 만나 봄이 양 아빠 최영철 씨는 “저도 27점으로 당구를 좋아한다. 당구장 문화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봄이가 당구선수 한다고 했을 때 흔쾌히 오케이했다”며 “여자선수층이 얇아 열심히 노력하면 가능성 있다고 판단, 적극 서포트해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는 당구로 대학에 들어갈 문호도 넒어졌다. 이 역시 학생당구 선수 증가의 중요한 요인이다. 2021학년 입시에선 한국체육대가 3명(포켓볼 서서아·장빈, 3쿠션 조화우), 숭실대가 1명(3쿠션 이채현)을 당구특기생으로 뽑았다. 내년(2022년)에도 한체대 2명, 숭실대 1명씩 수시전형으로 당구특기생을 뽑는다. 특히 광주광역시 남부대는 대학 최초로 당구부를 창단키로 하고 2022학년도에 스포츠레저학과 신입생 중 6명(캐롬과 포켓볼)을 당구선수로 선발하기로 했다. 가뜩이나 젊은피 수혈이 필요한 당구계로는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조영윤(전주고1)군은 “아버지가 적극 추천해서 당구선수 꿈을 키웠다”며 “현재 30점인데 학생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한체대에 입학하고 싶다”고 말했다.

학생선수들은 구력은 짧지만 실력은 만만치않다. 당구연맹에 따르면 학생선수(고교) 중에는 35~40점대 고수도 적지않다고 한다. 대한당구연맹 문승만 심판위원장(이사)은 “학생선수들은 기초부터 탄탄하게 배워서 실력이 성인선수 못지않다”며 “무엇보다 실력향상 속도가 눈에 띄게 빠르다”고 했다. 실제로 매탄고 등 일부학교 학생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선수들은 개인레슨을 받는다. 27점인 이형호 군 은 내년까지 35~38점으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주말에 김해 집에서 경주 브라보캐롬클럽까지 가서 안진환 경남당구연맹 회장에게 지도를 받는다. 경기도 송탄 태광고 2학년 이수인군(30점)은 평택 페리클럽서 박지송(PBA드림투어) 선수에게, 최봄이 양은 의정부 집에서 경기도 부평을 왔다갔다하며 이홍기 선수(PBA)에게 배우고 있다.

하지만 한국당구 ‘미래’인 학생선수를 둘러싼 환경은 아직 갈길이 멀다. 초-중-고 단계별로 당구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로 인해 상급학교로 진학하면서 당구선수 꿈을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 전국 초등학교 중 유일하게 당구부가 있는 경기도 화성 화원초등학교 양순이 코치도 올해 초 안타까운 일을 겪었다. “6학년 당구부학생 6명이 졸업했는데, 당구부 있는 중학교가 없어서 1명만 당구선수로 활동하고 나머지 5명은 당구선수 꿈을 포기했습니다.” 양 코치에 따르면 지난해 화성당구연맹 중심으로 지역내 중학교에 당구부 설치가 검토되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스톱돼 더더욱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또한 학생선수가 늘었다고 해도 아직 절대적으로 많은 숫자는 아니다. 학생선수와 학부모들이 바라는 소년체전 종목 채택 최소기준(300명)에도 한참 못미친다.

한국은 전세계적인 ‘코로나19’확산에도 주요 국제대회 및 국내대회, PBA투어를 꾸준히 개최하는 나라다. 선수와 클럽, 행정, 미디어 등 당구관련 인프라에선 세계 최고수준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한국당구 ‘미래’들이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한다고 했다. 이럴 때일수록 당구계가 학생당구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싶다. 뿌리가 튼튼하지 않은 꽃은 금방 시든다. 2022년 임인년을 맞으며 든 당구계 단상(斷想)이다.

[황국성 MK빌리어드뉴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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