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런의 시시콜콜 당구] “진상같은 저 손님과 당구경기 하고 싶지 않아요!”

②점수판 때리기, 심한 자책, 큰소리 등
상대 배려 안하는 꼴불견·비매너 ‘씁쓸’

기사입력:2020.12.30 18:00:43
최종수정:2022.08.01 17:48:16

[편집자주] 칼럼 첫 회에서 수구와 목적구(적구)는 뜻이 안 통하는 엉터리 일본식 한자어이므로 적절한 우리 말로 바꿔 쓰자고 제안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이 칼럼에서는 수구 대신 ‘내공’, 제1목적구 대신 ‘앞공’, 제2목적구 대신 ‘뒷공’으로 표기하겠습니다. 더 좋은 우리말 표현이 있다면 제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가을 어느 토요일 오후. 여느 때처럼 단골 구장으로 달려갔다. 구면이지만 한번도 붙어보지 않은 손님과 대결이 이뤄졌다. 상대방은 필자보다 2점 높은 25점이었다. 승패는 일찍 갈렸다. 필자는 경기 초반부터 공격이 잘 이뤄진 반면 상대방은 무득점이 이어졌다. 그의 안색이 조금씩 굳어졌다. 저점자에게 크게 뒤지고 있으니 그럴 만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득점에 실패한 뒤 대기석으로 돌아온 그가 공격권을 넘겨주면서 디지털 점수판을 강하게 때리는 게 아닌가. 손가락 끝으로 살짝 터치하면 될 것을.

한두 번은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공격을 끝내고 대기석에 앉을 때마다 거의 매번 점수판을 인정사정없이 타격했다. 그럴 때마다 ‘쿵’ 소리가 났다. ‘경기가 안 풀리자 나를 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점수판을 상대로 화풀이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국 이겼지만 경기 내내 불편한 마음을 떨치지 못했다. 보통 두 경기를 하지만 저녁식사를 핑계로 한 경기로 마무리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당구장 운영진에게 슬쩍 얘기했다. “앞으로 매너 없는 저 손님과 매칭해주지 마세요.”

필자는 한 당구장을 꾸준히 이용하고 있다. 그곳에 자주 오는 100명 가까운 단골 고객과 주로 경기를 한다. 경기에 이기면 기분이 좋고 패하면 아쉬운 건 인지상정. 어찌됐든 경기하는 시간은 즐겁기만 하다. 하지만 이따금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점수판을 두들겨 패는 등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행위와 맞닥뜨릴 때다.

이런 일도 있었다. 역시 고점자와 겨뤄 이긴 경기였는데 몇차례 ‘플루크’(fluke‧행운으로 얻는 득점)가 나왔다.

내공이 득점 경로를 벗어났지만 예상치 못한 ‘키스’(쫑)로 득점했다. 또한 앞공과 뒷공이 단축에 붙어있는 상황에서 대회전을 구상했지만 앞공을 너무 얇게 맞히는 바람에 종더블샷 형태로 점수를 얻기도 했다. 황당한 득점이었다.

당연히 상대방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시했다. 그런데 등 뒤로 들릴듯 말듯 중얼거리는 소리가 수 차례 나왔다. 가만히 들어보니 “무슨 당구를 저렇게 치냐”는 투였다.

행운의 점수를 얻은 필자는 죄인이었다. 상대방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궁시렁거림과 불만 가득한 표정을 뒤섞었다. 불편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어찌어찌 경기를 끝냈지만 영 개운치가 않았다.

누구나 ‘행운의 샷’을 경험한다. 연이어 나오기도 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승패를 가르기도 한다. 필자 역시 박빙 승부를 펼치던 상황에서 막판 상대방 ‘행운의 샷’으로 패배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프레드릭 쿠드롱 같은 초일류 선수들도 ‘행운의 샷’을 연타로 이어가지 않는가.

상대방이 ‘행운의 샷’에 힘입어 승리했다면 행운의 여신이 그를 향해 손길을 내민 거다. 아쉬움이 크겠지만 미소를 지어주면 대인배가 되는 거다. 자신이 ‘행운의 샷’으로 득점하면 어여쁘게 봐달라고 하고, 남의 ‘행운의 샷’은 어이 없다며 탓한다면 전형적인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

득점에 실패했을 때 하늘이 무너진 듯 망연자실한 모습을 드러내는 동호인도 있다. 내 공이 종이 한 장 차이로 빗나가거나 득점 직전에 살짝 키스가 발생하는 등 누가 봐도 아까운 경우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애초 앞 공을 너무 두껍게 맞혀 내 공의 경로가 크게 벗어났는데도 고개를 뒤로 젖혀 천장을 바라본다. 얼굴은 흡사 나라를 잃은 듯한 표정이다. 대기석으로 돌아올 생각은 않고 테이블 옆에서 한숨을 내쉰다. 대기석에 와서도 고개를 숙인 채 자책한다.

경기하는 동안 그런 모습을 반복하면 상대방은 편치 않다. 득점을 향한 의욕이 지나치게 강해 그런 행동이 무의식적으로 나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과도한 자책은 자칫 꼴불견이라는 지적을 피하지 못하리라.

그나마 여기까지는 귀엽게 봐줄 지도 모른다. ‘진상’ 소리까지 나온다면?

2018년 어느 전국동호인대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A씨가 샷을 하려고 엎드린 순간 대기석에 있던 B씨가 기침을 하거나 팁 손질을 하며 몸을 움직였다. 그 바람에 A씨는 샷을 멈추고 말았다. 또한 B씨는 상대를 교체하고 줄판으로 소리를 내며 팁을 다듬었다. 급기야 참다 못한 A씨가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동영상으로 이를 본 많은 동호인들은 ‘만행’을 접했다며 혀를 끌끌 찼다. 상대방이 타석에 있는 동안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은 기본이다. 이걸 못 지킨다면 선수로서는 물론 동호인 자격도 없다. 그냥 혼자만의 당구놀이를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그건 그렇고 이렇게 묻는 독자가 있을지 모른다.

“디지털 점수판을 두들겨 팼던 손님과는 지금도 경기를 회피하는가?”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그는 필자가 속한 동호회에 가입했다. 그럼에도 한동안 그를 본체만체했다.

그러다 우연히 합석한 술자리에서 필자가 당시 상황을 끄집어내며 기분이 언짢았음을 털어놨다. 그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아마 본인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이었으리라.

그는 사과했고 우린 오해를 풀었다. 이후 그가 점수판을 때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진성기 편집위원 / 당구칼럼니스트 ha-er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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