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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포켓볼 국가대표’ 함원식 “당구미련 버릴 수 없었다”

2006아시안게임 대표…2015년 수원시청팀 해체로 은퇴
두 아이 둔 가장…4년간 엘리베이터 설치 기사 일해
전국체전 출전 계기 경기도체육회·시흥시체육회와 계약
“하고 싶은거 하라” 아내도 찬성…2년내 우승 자신

  • 기사입력:2020.04.25 16:38:03
  • 최종수정:2020.05.02 09:5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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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포켓볼 국가대표 출신, 함원식이 2015년 잠정은퇴 후 약 4년만에 선수로 복귀한다. 함원식은 "다시 한번 국내정상에 올라설 것"이라며 각오를 밝혔다. 23일 오후 바나나포켓클럽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함원식이 공을 들고 인터뷰 기념촬영하고 있다.
[MK빌리어드뉴스 김다빈 기자] “4년만에 선수로 복귀했으니, 다시 국내정상에 올라서겠습니다.”

함원식(44·시흥시체육회)은 과거 한국 포켓볼계를 주름잡던 선수였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당구경기를 보고 선수 꿈을 키웠고, 4년 후 2006년 카타르 도하아시안게임 포켓볼 국가대표로 선발돼 그 꿈을 이뤘다. 또한 포켓볼과 스누커 전국대회서 다수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2015년 소속팀(수원시청팀)이 해체되면서 생계 때문에 당구선수를 그만두게 됐다.

그런 함원식이 4년만에 선수로 돌아왔다. 지난해 말 경기도체육회 및 시흥시체육회와 계약을 맺은 것.

‘2년 안에 전성기 실력을 회복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친 함원식을 지난 23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바나나포켓클럽’서 만났다. 이곳은 전국 몇 안되는 포켓볼 전용구장으로 스누커 테이블 1대와 포켓볼 테이블 12대가 설치돼 있다.

▲4년만의 선수 복귀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지난해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에 경기도 스누커‧잉글리시빌리아드 대표로 출전한 게 계기가 됐다. 당시 1회전서 탈락해 좋은 경험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후 경기도체육회에서 스누커 선수 1명을 구한다며 계약의사를 물어봤다.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후 시흥시체육회도 포켓볼 선수로 영입의사를 건넸다. 단기간에 계약 두 건이 진행되며 4년만에 선수로 복귀할 수 있었다.

▲전국체전은 우연한 기회로 출전하게 됐다는데.

=원래 지난해 경기도체육회 스누커·잉빌 대표선수는 ‘2010 베이징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코치를 역임했던 김영주 선수였다. (김)영주는 친구사이이고 현재 이곳(바나나포켓클럽) 대표이기도 하다. 그런데 영주가 갑자기 개인사정으로 전국체전에 못나가게 됐다. 경기도체육회가 급하게 선수를 구했고 나에게 연락이 와 출전하게 된 것이다. 당시 좋은 성적은 아니었음에도 좋게 봐주셔서 스누커 종목 대표선수로 1년 계약을 맺었다. 이후 시흥시체육회도 포켓볼 남자선수 확충을 위해 계약제의를 해왔다.

▲2015년 12월이 마지막 전국대회 출전이다. 공백이 길어 복귀에 고민이 많았겠다.

=갑작스럽긴 했지만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경기도체육회 제의를 받고 아내와 상의했다. 지금하는 일을 그만두고 선수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아내가 “오빠는 당구칠 때가 가장 멋지다. 지금 하고싶은 걸 해라”며 북돋아줬다. 단 10분 상의하고 계약을 결심했다.

또 2016년부터 전국대회에 나가지 않았지만 매년 경기도 도민체전에는 출전했다. 2017, 2018년에는 금메달을 땄다. 그렇기 때문에 단기간에는 무리이겠지만 (선수 복귀하면)다시 한번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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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함원식은 지난해 열린 전국체전에 우연한 기회로 스누커·잉글리시빌리아드 경기도 대표로 출전하며 선수복귀 길이 열렸다. 지난해 경기도 대표 선수들과 경기도연맹 관계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왼쪽 2번째가 함원식 선수 (사진제공=경기도당구연맹)
▲선수생활하다 잠정 은퇴했던 이유는.

=생계 때문이었다. 2012년 수원시청팀이 창단됐는데, 나는 2009년부터 수원연맹 선수로 활동해왔기에 순조롭게 입단했다. 하지만 2015년 돌연 수원시청 직장운동경기부가 구조조정 명목으로 해체됐다. 나와 강동궁(현 PBA선수) 황철호(서울시청·스누커 국내2위) 모두 수원시청에서 나가게 됐다.

무척 당황스러웠다. 수원시청팀 해체 소식을 알게된 고향 울산당구연맹서 제의가 왔다. 하지만 1년 훈련보조금으로는 다른 일을 하지 않고는 선수에만 집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2008년 결혼했고 당시 아이가 2명이 있었다. 그간 선수생활 했던 게 아쉬웠지만 포켓볼 선수로 가정을 이끌어갈 수 없을 것으로 판단, 은퇴했다.

▲선수 그만두고 어떤 일을 했나.

=2015년 수원시청팀 해체 후 바로 엘리베이터 설치 기사 일을 시작했다. 보수도 나쁘지 않았고 운동신경이 좋아 현장 근무에도 빠르게 적응했다. 그래도 당구선수에 대한 미련이 쉽게 버려지지 않더라. 잊으려고 그 동안 받은 상장과 트로피를 일부러 버리기도 했다.

▲그만큼 굳은 결심을 한 것인데.

=지나가다 당구장을 보면 당구치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아내도 포켓볼 동호인 선수로 활동했다. 그래서 직장 다닐 때 같이 당구장 가서 포켓볼 게임을 하곤했지만 당구선수에 대한 미련이 남을까 1년에 1~2번만 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전국체전에 출전하니 마음 속에 뜨거운 감정이 샘솟았다.

▲당시 상황을 설명해달라.

=당구를 잊고 살려고 노력했기에 이제 마음 속에서 당구선수에 대한 미련이 없어졌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5년 만에 전국체전 나갔더니 잊고 있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승리를 위해 집중하는 선수와 경기장의 치열한 분위기, 그리고 관객을 보니 선수활동 당시 마음이 되살아났다. ‘다시 선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던 것이다. 그런 마음이 들 때 마침 좋은 제의가 들어왔다. 정말 감사하고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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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지난 2002년 선수데뷔한 함원식은 단 4년만에 국가대표로 선발되며 한국 포켓볼계를 주름잡았다. 하지만 생계로 인한 문제 탓에 2015년 잠정 은퇴했다. 포켓볼 테이블서 샷을 준비하고 있는 함원식.
▲2006년 카타르 도하아시안게임에 포켓볼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포켓볼 선수를 하려고 마음먹은 것도 아시안게임서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로 출전하고 싶어서였다. 특히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서 황득희 선수(3쿠션)가 우승하지 않았나. 그걸 보고 태극마크를 단 당구선수가 정말 되고 싶었다.

▲선수가 된 계기가 아시안게임때문이었다는 얘기인가.

=지금은 국내서 캐롬이 포켓볼에 비해 월등히 인기가 많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포켓볼이 굉장히 인기가 좋았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이 끝났을 때는 ‘포켓볼 붐’이 일기도 했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게임서 당구경기를 할 수 있다는 건 나에게 충격이었다. 때마침 고향인 울산에서 포켓볼클럽을 운영하던 김웅대 형(충남연맹·남 포켓 19위) 구장을 방문했다. 당시 포켓볼 국가대표도 하고 있던 웅대 형은 실력이 뛰어났다. 그래서 바로 가르쳐달라고 했고, 이후 자취하며 웅대 형 구장에서 매니저일하며 당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집을 나오면서 까지 당구를 배웠던 것인가.

=당시 당구하면 안좋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 않았나. 그래서 부모님께 차마 ‘당구선수하겠다’는 말씀을 못드리겠더라. 그래서 전동기기 수리 일을 배운다고 부모님을 속여 자취했고 웅대 형 당구장서 포켓볼을 배우며 실력을 쌓았다. 이후 울산당구연맹 소속으로 포켓볼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2002년 선수데뷔했는데 4년만에 국가대표가 됐다.

=매일 12시간씩 연습하니 실력이 빠르게 늘었다. 또 웅대 형이 많은 도움을 줬다. 실력을 쌓고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갔다. 첫 경기선 졌지만 이후 7연승을 거뒀다. 결국 정영화 선수(서울시청·남 포켓11위)와 함께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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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함원식은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포켓볼 국가대표로 선발되며 한국 당구계를 대표했다. 지난 2007년 열린 "인터네셔널 빌리어즈 챌린지" 대회 한국대표로 출전한 국가대표 선수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가영 차유람 함원식, 자넷 리, 김원석 (사진제공=함원식)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가 됐을 때 기분은.

=국가대표 선발이 확정된 후에는 아무 생각도 안 들더라. 주변에서 축하해주고 언론 관심도 받았지만 얼떨떨했다. 내가 국가대표가 된 것인가 실감이 나질 않았다. 하지만 대회를 앞두고 태극마크가 달린 훈련복과 선수단복을 입으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부모님께도 그 동안 일을 배운게 아니라 당구선수 생활했다고 말씀드렸다.

▲부모님 반응이 궁금하다.

=혼날 것을 각오했는데 ‘그 동안 고생했다.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로서 좋은 결과 거두고 오라’며 격려해주셨다. 그러니 마음이 무척 편해졌다. 이제 부모님께 인정받았고 선수로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생기니 더 의욕이 생겼다.

▲이후 꾸준히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그렇다. 비록 2006 아시안게임에서 1회전 탈락했지만 아시안게임 다녀오니 기량이 더욱 발전했다. 그래서 2007년 전국대회 준우승을 시작으로 2009년 첫 전국대회 우승트로피를 들었다. 이후 전국대회서 포켓 5회, 스누커·잉빌 3회 우승했다. 또 2010 베이징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해 아시안게임 2대회 연속 국가대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스스로 국가대표를 그만두었다.

=2008년 초 포켓볼 동호인으로 활동하던 아내를 알게 돼 그해 11월 결혼했다. 이듬해 첫 째 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201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선발돼 대회를 5개월 앞두고 태릉선수촌에 입촌하게 됐다. 그런데 합숙훈련 시작하면서 훈련비를 받았는데 굉장히 금액이 적었다. 아이까지 있어 어느 정도 수입이 필요했는데, 당시 대회도 별로 없어 훈련을 병행하며 돈 벌 방법이 없었다. 결국 태극마크를 반납하고 당구장 매니저 일을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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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함원식은 올해 전국종합대회는 포켓볼 종목 선수로, 그랑프리 대회에는 스누커·잉글리시빌리아드 종목 선수로 출전할 계획이다. 함원식은 이대회서 각각 한 차례씩 우승하는 것을 목표했다. 함원식이 스누커 테이블 앞에서 인터뷰 기념촬영하고 있다.
▲점차 코로나19가 안정화되며 대회 재개 움직임이 있다. 오랜만의 선수복귀인데, 제 실력을 발휘할 자신이 있나.

=물론 단기간에 전성기 실력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감각은 떨어지지 않았다. 현재 스누커에는 허세양 황철호, 포켓에서는 유승우 고태영 등 실력파 젊은 선수들이 많아졌다. 이들과 경쟁해서 전국대회에서 1차례 우승해보는 게 현실적인 목표다. 이들에 비해 경험이 많으니 2년안에 전성기 실력을 되찾아 국내 정상에 다시 올라서겠다.

▲끝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오랜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선뜻 계약해준 경기당구연맹 차동활 회장님과 시흥당구연맹 김종근 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말씀을 드린다. 올해 전국체전서 우승으로 보답하고 싶다. 아울러 전국 종합대회에는 포켓볼 종목으로, 그랑프리 대회에는 스누커·잉빌 종목으로 출전하려고 한다. 이 대회서 각각 1차례 우승하는 게 목표다. 당구팬들도 포켓볼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린다.

[dabinnett@mk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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