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호 당구칼럼 ‘큐따라 바람따라’②세계 챔프 이상천 터키월드컵‧파이널대회 석권…브롬달에 10점차 역전 세계무대로 활동하다 2003년 귀국, 당구연맹 회장 출마 ‘100년에 한 명 나올 선수’에 갑자기 찾아온 불행
기사입력:2018.04.02 07:00:05
최종수정:2018.04.02 08:19:53
[편집자주]MK빌리어드뉴스는 한국당구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숱한 곡절과 앞으로의 숙제 등을 짚어보는 ‘박태호 당구칼럼-큐따라 바람따라’를 마련했다.
필자는 당구선수 출신으로 서울시당구연맹 회장과 대한당구연맹 홍보위원장을 거쳐 현재 대한당구연맹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다. 또한 각종 언론 칼럼을 통해 당구의 대중화에도 앞장서 왔다.
이상천은 대한당구연맹 4대 회장 취임 4개월만인 2004년 10월 암투명 끝에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세상을 떠났다.
1994년 1월 벨기에 켄트에서 벌어진 ‘월드컵 3쿠션 파이널대회’ 결승. 이상천(1954-2004)은 훗날 ‘세계4대천왕’이 될 벨기에의 젊은 선수와 만났다. 바로 20대 후반의 프레드릭 쿠드롱이었다.
이상천은 세트스코어 3대1(15점 5선승제)로 쿠드롱을 제압, 승점 90점을 얻으면서 총 220점으로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투어 총상금 6만2천 달러도 움켜쥐었다. 월드컵 3쿠션 당구는 세계당구월드컵(BWA) 주최로 해마다 5~7개국 투어 방식으로 대회가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 당구대회다.
◆ 브롬달에 10점 앞서 ‘3쿠션 세계챔피언’ 등극
당시 월드컵 채점방식은 대회마다 1등 60점, 2등 45점, 3등 30점 순으로 부여되며 가장 중요한 마지막 파이널대회는 50% 가산점이 부여돼 챔피언을 가렸다. 이상천은 93년 2월 터키월드컵에서 1위, 네덜란드 3위, 일본에서 4위, 독일에서 6위를 각각 기록했으며, 이탈리아월드컵에서는 16강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이상천은 그해 터키 네덜란드 이탈리아 3개 대회를 석권한 토브욘 브롬달(스웨덴)이 파이널전 16강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이상천은 브롬달(210점)보다 10점 앞서 ‘1993~1994 세계3쿠션챔피언’이 된 것이다.
‘3쿠션 머신’ ‘꿈의 승부사’ 등 별명을 지닌 이상천의 세계제패는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또한 동네경기로 인식되던 당구를 신문들이 주요기사로 올린 것 자체가 화제거리였다. 해외 언론은 더했다. 2004년 1월 9~10일자 유럽 30여개 신문과 TV는 이상천을 ‘동양의 새 당구황제’로 대문짝만하게 소개했다. 열흘 후(1월19일)에는 미국 뉴욕타임스가 이례적으로 이상천의 우승 기사를 상세히 소개했다.
◆ ‘이상천 우승’ 국내외 언론 주요기사로 보도
기사의 주요 제목은 ‘챔피언, 소리없이 개선하다’ (The Unsung Champ) ‘상리(이상천)가 미국당구 사상 처음으로 유럽을 이겼다’ ‘상리 개선에 왜 축하퍼레이드조차 하지 않는가? 시장은 왜 맨발로 뛰어나오지 않았나?’였다.
이 기사가 나가고 이틀 후 이상천은 줄리아노 뉴욕 시장의 축하 겸 사과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이어 인기 TV토크쇼인 ‘데이비드 레터맨쇼’ 등의 출연요청을 받는 등 미국 내 유명인사로 급부상했다.
이상천이 세계 당구 최고의 선수가 되기까진 밤낮 없이 큐를 놓지않는 노력이 뒷받침됐다. 이상천 표현대로 ‘노랑머리 장대 같은’ 세계 허슬러들 틈에서 “패하면 죽는다”라는 승부세계의 냉홈함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다.
당구를 시작하면서 50대(1954년생)에 이르기까지 이상천의 큐 인생은 ‘꾼’에서 선수로 전환한 모델케이스였다. 과거 ‘진검 승부’로 날을 지새우던 꾼들의 황금시대는 분명히 지나갔다고 이상천은 생각했다.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던 이상천은 2003년 돌연 귀국한다. 당시 한국 당구는 혼란의 연속이었으며 내분으로 우왕좌왕하고 있던 터였다.
선수들은 대회가 없으니 불만투성이였고 이를 지켜본 이상천은 뚜렷한 스폰서도 없이 대회를 만들어 나갔다. 그가 처음 기획한 대회는 ‘당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전국당구대회’란 타이틀로 서울 강남구에 소재한 YMCA에서 개최했다. 이 대회는 당구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이에 힘을 얻은 이상천은 지방투어 대회를 기획해 수차례 대회를 열었다. 대회에 굶주려 있던 선수들의 시선은 이상천에게로 집중됐고, “이상천 선수가 당구연맹 회장에 출마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2003년 귀국한 이상천은 찬반의견 속에 대한당구연맹 4대 회장에 출마, 취임했다. 당시 선수들은 “대회가 없다”며 이상천 출마를 지지한 반면, 당구계 일부에선 세계적인 선수의 경기력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며 반대했다.
◆ “당구연맹 회장 출마하겠습니다”에 찬반 팽팽
이상천은 결국 대한당구연맹 회장에 출마하기로 결심하고 존경하던 박병문 김명석 등 선배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또한 그외 많은 당구인들을 찾아가 도와줄 것을 간곡하게 요청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녹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세계선수들과 대등한 경기력을 갖춘 이상천이 회장이 되면, 경기력에 지장을 주지않겠느냐는 걱정이 강했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연유로 시도연맹 회장 대부분이 출마를 반대했다. 이러한 상황은 시도연맹 지도부와 선수들간 불협화음으로 이어졌다. 결국 많은 선수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등 진통 속에 이상천은 대한당구연맹 제4대 회장에 취임하게 된다.
앞 부분에 기술한 바 있지만 이상천의 사고방식과 태도에 대해서는 찬반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그러한 성향때문에 세계챔피언에 오를 수 있었고, 나아가 한국당구의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다. 1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라는 이상천, 그러나 그에게도 청천벽력같은 불행이 닥쳐왔다. 암이란 몹쓸 병에 걸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병석에서도 당구이야기만 나오면 열변을 토하며 화색이 돌던 이상천의 당구사랑에 경의를 표한다.
이상천은 대한당구연맹 4대 회장 취임 4개월만인 2004년 10월 암투명 끝에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상천은 대한당구연맹 4대 회장 취임 4개월만인 2004년 10월 암투명 끝에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세상을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