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당구대회 우승’ 안지훈 “몸떨림증에도 당구 그만둘 수 없었다”
최근 ‘경남 고성군수배’ 3쿠션서 15년만에 전국대회 정상
초클루 형(兄)도 “Congratulation(축하)” 해주대요
‘본태성 진전증’으로 선수 중단…“당구 내려놓기 쉽지않더라”
“女3쿠션 김진아와 대전연맹 선수 동반 男女우승 더 기뻐”
가장 명예로운 3쿠션월드컵서도 우승 한번 해봐야죠
"15년만의 우승보다 당구에 대한 자세가 달라진 걸 느낀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지난 2005년 첫 전국대회 우승 후 15년만의 우승한 안지훈의 말이다. 경남 고성군수배 우승한 안지훈은 대한체육회장배 우승 이후 개인통산 2번째 전국대회 우승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지난 27일 서울 강남 엠블당구클럽에서 안지훈이 인터뷰 기념촬영을 위해 큐를 들고 화이팅 자세를 하고 있다. 최근 열린 ‘2020 경남 고성군수배 전국당구대회’ 남자3쿠션 우승자 안지훈(40‧대전당구연맹·국내 14위)의 말이다. 안지훈은 결승서 김준태(경북·10위)를 50:25(31이닝)로 꺾고 우승했다.
지난 2005년 제1회 대한체육회장배 우승 이후 무려 15년만에 들어올린 전국대회 우승컵이다. 2000년 대전당구연맹 소속으로 선수등록한 안지훈은 데뷔 5년만에 정상에 오르며 ‘차세대 주자’로 주목을 받았다. 앞길 창창한 20대 중반이었다.
하지만 2008년 ‘본태성 진전증’(고정된 상태에 있을 때 몸의 한 부분이 규칙적으로 떨리는 질환)증상이 나타났다. 이에 2009년부터 2011년 2년간 선수생활을 중단했다.
그러나 당구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 없었다. 2012년 선수로 복귀했고 2016년 잔카세이프티배, 2019년 태백산배 전국대회 공동3위에 오르며 다시 비상을 준비했다. 결국 2020년 고성군수배에서 우승하며 15년만의 전국대회 정상에 올랐다.
우승의 감동이 가시기 전인 27일 오후 서울 강남 엠블(MVL)당구클럽에서 안지훈을 만났다.
▲15년만의 전국대회 우승이라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당연히 많은 감정들이 뒤섞이더라. 결승전 중에는 우승이 가까워오자 굉장히 기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 공격이 성공하며 우승했는데 기쁨보다 비교적 무덤덤해지더라.
▲우승에도 무덤덤했다니.
=물론 전국대회 우승은 굉장히 뿌듯한 성적이다. 다만 15년 전 우승 때는 ‘내가 최고로 올라서겠다’는 마음에 가슴이 벅찼지만 이번 대회 우승은 ‘당구를 임하는 나의 자세가 달라졌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안지훈은 2008년 본태성 진전증이란 "몸떨림 증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후 2009년부터 2년간 선수생활을 관뒀지만 그럼에도 당구를 포기할 수 없었단다. 아울러 그 후부터 "좋아하는 당구를 힘들게 하지말자"는 생각에 대회를 즐기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인터뷰 중인 안지훈. =30통 넘는 전화와 많은 문자를 받았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선수들과 지인들이 축하인사를 해줬다. 터키의 무랏 나시 초클루(세계12위)도 SNS로 “Congratulation(축하해)”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초클루와는 같은 후원사(옵티머스빌리어드)소속이어서 평소에도 친하다. 초클루를 ‘형’이라 부르기에 “Thank you, Bro(고마워, 형)”라고 답장해줬다.
▲여자3쿠션 우승자도 대전연맹 소속 김진아(여3쿠션 6위)선수다. 대전연맹 남녀 동반우승이다.
=공교롭게도 대전연맹에서 모두 우승자가 나왔다. 26일 대전연맹 유병립 회장님을 찾아뵙고 감사인사를 드렸다. 유병립 회장님께서 “(대전연맹 선수)남녀 동반우승은 처음이라 굉장히 기쁘다”며 “정말 축하한다”고 해주셨다. (김)진아와는 서로 축하를 건넸고 나중에 유병립 회장님, 진아랑 축하 식사자리를 갖기로 했다.
▲앞서 당구에 대한 자세가 달라졌다고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2008년 ‘본태성 진전증’이란 증상이 나타났다. 병원에서는 자율신경계 이상이 원인이라고 하더라. 지금은 증상이 완화되긴 했지만 완치는 어렵다. 그래서 2009년에는 대전연맹에 선수생활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하지만 당구에 대한 마음을 접기가 쉽지 않더라. 개인사업을 하기도 했지만 도저히 당구를 그만둘 수 없었다. 2012년부터 다시 대회에 출전했다. 또다시 대회에 출전하며 많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떤 생각이 들었나.
=아픈 곳을 생각하면 더 아파지는 느낌이 들지 않나. 그런 것처럼 계속 정상에 서기 위해 승리만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욱 정신적, 신체적으로 힘들게 했다. 그러면서 ‘왜 내가 좋아하는 당구를 치며 힘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당구를 치면 그저 즐기며 감사하고 선수생활하면 되는데 그전까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더라. 2015년부터 그런 마음이 생겼고 그때부터 대회 결과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과 경기하는 것, 그리고 내 공과 당구대에만 집중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이번에 15년만의 우승이긴 하지만 대회에 즐겁게 임했다는 것 그리고 당구에 대해 더 진지해진 마음을 확인할 수 있던 게 더 큰 수확이다.
▲당구에 대해 마음이 진지해졌다면.
=예전부터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세미흐 사이그네(터키·세계11위)다. 뛰어난 선수답게 경기에 임하는 자세가 진지하고 열정적이다. 나도 그 점을 닮고 싶었다. 나 역시 당구에 대한 그러한 자세를 목표로 했고 승부보다는 즐겁게 집중해서 경기하는 것만 생각했다. 그리고 이 대회 우승을 통해 그간 목표했던 성숙해진 자신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다. 또 그런 점에서 이번 대회 8강서 만난 (이)충복(시흥시체육회·국내4위)이 형과의 경기가 정말 재밌었다.
▲당시 이충복에게 50:44(31이닝)로 승리했다.
=결과는 박빙이었지만 17이닝 한때 내가 41:20, 21점 차까지 앞서나갔다. 승리에 단 9점 남겨둔 상황이었다. 그 정도 점수가 벌어지면 선수들은 조금씩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충복이 형은 묵묵히 자기 공을 치더라. 그러면서 29이닝째 하이런 8점을 치며 49:44, 5점차까지 좁혀졌다. 다행히 나머지 1득점을 먼저해 승리할 수 있었다. 충복이 형과 경기 전 주먹을 맞대며 서로 “멋진 경기 한번 하자”고 했다. 그 말답게 재밌고 즐거운 경기를 했다.
안지훈은 이 대회 4강서 24살의 이범열, 결승서 25세 김준태를 차례로 꺾었다. 20대 기수들을 모두 꺾은 것. 안지훈은 20대 젊은선수들의 기량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 돕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21일 밤 대회 우승자 안지훈과 준우승 김준태가 시상식에서 사진촬영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렇게 됐다. 또 (이)범열(24·서울연맹)이는 충복이 형 제자이지 않은가. 하하. 요새 젊은 선수들 실력이 정말 좋다. 준우승한 (김)준태(25)는 요새 최고의 경기력을 뽐내고 있고 범열이 역시 군 전역 후 첫 대회에서 4강까지 올랐다. 범열이는 상대선수 점수를 신경쓰지 않고 묵묵히 자기 공을 치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처럼 뛰어난 실력을 가진 젊은 선수들은 요새 발전한 당구환경으로 더욱 성장해 나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을 위해 15~20년 가량 경력을 갖춘 선배 선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배 선수들의 역할이라면.
=3쿠션은 기량보다 정신력이 더 중요하다. 경기 상황에 따라 어떤 공을 득점해야 할지 또 어떤 식으로 경기를 운영해야 할지에 대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신만의 노하우가 생기겠지만 선배들이 도와준다면 더 빨리 성숙해질 수 있다. 그래서 조언을 원하는 젊은 선수들은 물심양면 도와주려하고 있다. 선배들이 젊은 선수들을 이끌어줘야 한국당구도 함께 발전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 인터뷰가 진행되던 27일 안지훈은 같은 대전서 살고 있는 17세 당구선수 이찬민과 15세 당구 기대주 김민중과 함께 엠블 당구클럽을 방문했다. 더욱 많은 선수들과 교류를 위해 젊은 선수들을 위한 수고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이찬민 안지훈 김민중이 인터뷰 기념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찬민(18) 선수는 지난해 만 17세에 대전연맹 선수가 됐다. 현재 중학교 3학년인 김민중(15)도 함께 왔다. 김민중 선수는 내년에 ‘당구사관학교’ 매탄고등학교에 진학할 예정이다. (이)찬민이와 (김)민중이는 모두 대전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서울에 올라오며 내 차로 같이 왔다. 대전에도 훌륭한 선수와 동호인이 많지만 서울에서 더 많은 선수를 만나 경기할 수 있도록 함께 온 것이다. 어느덧 경력 20년차 선수가 되다보니 발전하려는 젊은 선수를 많이 도와주고 싶다.
▲다시 대회 이야기를 해보자. 김준태와의 결승서 21~31이닝까지 11이닝간 연속 17득점했다. 이뿐 아니라 다른 경기에서도 뛰어난 연속득점 능력을 보여줬다.
=공격력이 좋았다. 그러면서 ‘뛰어난 공격력을 갖춘 선수’ ‘시원시원하게 경기하는 선수’라는 평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원래 내 당구스타일은 지금과는 거리가 멀었다. 말하자면 상대방을 ‘귀찮게 하는 스타일’ 이었다. 신중한 성격으로 인해 인터벌(공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길었다. 하지만 증상을 앓아오며 스타일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공을 바라보고 오래 있으면 증상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석에 들어서며 최대한 빨리 공을 치려하고 그 템포에 맞추다보니 공격적인 선수가 됐다. 어찌보면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하지만 스타일을 바꾸기까지 굉장히 힘들었다.
안지훈이 사용하는 개인장비들. 안지훈은 한밭 마에스트로 팬텀 큐를 사용하고 큐가방과 장갑, 초크 등은 옵티머스 빌리어드 제품을 사용 중이다. =내가 하고싶은 당구를 하지 못해 많이 속상했다. 누가 봐도 멀리 떨어져 있는 적구를 맞추는게 확실한 득점경로이지만 증상으로 인해 불안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우울해하고 있는데 김정규 대한당구연맹 경기력향상위원장님께서 조언을 해주셨다. “힘들어하지마라. 누구든 다 부족한 점을 안고 살아간다”며 “오히려 그점을 이용해서 당구를 쳐봐라. 그러면 그것이 너의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해주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머리가 띵했다. 굉장히 공감했다. 그로 인해 이제는 공격적인 스타일에 익숙해졌고 정말로 나의 무기가 됐다.
▲현재 사용하는 당구용품은.
=큐는 후원사인 한밭 마에스트로 팬텀 큐를 쓰고 있다. 공을 원하는대로 보낼 수 있어 타구 정확도가 높은 게 장점이다. 큐 가방과 초크는 옵티머스 제품을 사용 중이다.
안지훈은 이번대회 결승서 11이닝간 연속득점하며 김준태를 제압했다. 공격적인 선수라는 평이 많은 안지훈이지만 원래 그의 당구스타일은 공격적이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약점을 무기로 만들기 위해 공격적인 경기를 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전화위복이 됐다. 인터뷰 중인 안지훈. =앞서 말했듯 앞으로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대회에 즐겁게 임하려고 한다. 내 경기를 즐겁고 진지하게 쳐 당구팬들에게 ‘항상 진지하게 경기에 임하는 선수’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고 싶다.
현재 코로나19로 열리지 않고 있지만 3쿠션월드컵에는 꾸준히 출전할 것이다. 국제대회 중 가장 명예로운 대회 중 하나인 3쿠션월드컵서도 한번 우승컵을 들어보고 싶다.
아울러 이 대회 우승과 함께 선수생활하는데 도움주신 한밭 권오철 대표님, 옵티머스빌리어드 박지수 대표님, 빌플랜 진근범 대표님, 대전연맹 유병립 회장님, 파이브앤식스 오성규 대표님께 감사말씀을 전하고 싶다. 항상 즐겁게 당구치고 묵묵히 발전해나가는 선수가 될테니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다. [dabinnett@mk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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