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보수주의를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정당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10일 하루 동안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김문수에서 한덕수로, 한덕수에서 다시 김문수로 뒤바뀌는 촌극이 연출됐다.
지도부와 일부 의원들이 국민의힘 당적을 가져본 적 없는 관료 출신을 기획성으로 영입하려던 시도 자체가 무리였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갈라졌고, 선거를 준비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근인(近因)부터 보자. 누가 이런 일을 벌였나. 2021년 검사 윤석열을 당으로 이끈 것은 친구를 자처했던 권성동 의원과 윤석열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게 될 권영세 의원이었다. 대선 승리를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십분 이해해도, 두 사람은 다시 용병을 끌고 오려는 주역이 됐다.
여기에 늘 누군가의 뒤에 줄을 서야 마음이 편한 친윤석열계 의원들이 이심전심 뒤를 따랐다. 당에 뿌리가 없는 사람을 옹립해 대선에 패배할 경우엔 당권이라도 손에 쥐겠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이제 원인(遠因)을 보자.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당의 주요 의사결정을 할 위치에 있는 정치인들이 당원과 국민의 눈치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공천만 받으면 자동으로 당선되는 안온한 지역 기반이 있다. 그렇기에 국민의힘에선 공천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당권이 대권보다 어쩌면 더 중요하다. 계엄 이후 탄핵 표결이 한창일 때 "뭐, 대선에 지면 지는 거지"라고 읊조리던 의원이 잊히지 않는다. 대구를 지역구로 둔 의원이었다.
정당은 자신들의 신념을 지지하는 국민의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담아내야 한다. 국민의힘이 과연 보수주의자들의 이해관계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정치 집단인가. 아니라면 그들의 정치적 지향을 존중하는 정당인가.
오히려 보수 유권자들과 유리된 기득권 세력 아닌가. 그러니 전당대회까지 다 끝낸 뒤 무소속 후보를 옹립할 수 있다는 발상이 가능했을 것이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늦게나마 속내를 마음껏 드러냈다. "너희는 이익집단에 불과하다."
[최희석 정치부 achilleus@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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