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시대를 맞아 산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 이 대통령이 평소 지원과 육성을 강조해온 인공지능(AI), 배터리, 재생에너지 분야는 기대감이 상당하다. 반면 산업에 대한 규제가 예상되는 원전·금융·통신 등 분야는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다.

배터리·AI 강력 지원책 예고

‘기후에너지부’, 재생에너지도 탄력

전방 산업인 전기자동차 시장의 정체, 중국산 저가 배터리 공세로 신음하는 국내 배터리 산업은 숨통이 다소 트일 전망이다. 이재명정부에서 강한 지원 정책을 펼칠 확률이 높아서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선거 운동 기간 배터리 산업을 ‘콕’ 집어 육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그는 “K배터리로 대한민국 경제를 재충전할 것”이라며 배터리를 차기 정부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핵심은 연구개발(R&D) 강화와 세제 지원이다. 현재 배터리 업계 1위 국가인 중국은 ‘꿈의 기술’이라 불리는 나트륨 배터리 연내 상용화를 선언하며 한국과의 격차를 벌리는 중이다. 이 대통령은 산업 지원을 통해 차세대 핵심 기술 ‘전고체 배터리’의 연구와 상용화를 뒷받침할 계획이다.

국내 투자와 생산이 활발히 이뤄지도록 세제 개편도 이뤄진다. 이 대통령은 ‘국내 생산 촉진 세제’ 도입을 예고했다. 그는 “충청권은 배터리 제조, 영남권은 핵심 소재와 미래 수요 대응, 호남권은 핵심 광물과 양극재 거점으로서 중요한 지역이다. 세 곳을 잇는 ‘배터리 삼각 벨트’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지난 정부서 주춤했던 풍력·태양력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표정도 밝다. ‘재생에너지 대전환’이란 표현을 쓸 정도로 이 대통령은 에너지 정책의 무게 중심이 재생에너지에 집중된 덕분이다. 우선 기존 정부 부처에는 없었던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해 기후·에너지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기고,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구체적인 정책 공약에는 산업단지, 일반 건물, 주차장 등에 루프톱 태양광을 확대하고, 수명이 다한 태양광 설비의 업그레이드(리파워링)를 지원하는 방안이 담겼다. 건물 외장재에 태양광 발전 기능을 더한 ‘건물일체형 태양광(BIPV)’을 통해 도심 속 분산 전원을 확대한다는 계획도 포함했다.

차세대 미래 먹거리로 꼽혔지만, 답답한 흐름을 보였던 국내 AI 산업도 반전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대대적인 AI 산업 지원을 예고해왔다. 전 국민에게 AI 접근권을 보장하고, 대규모 ‘국민 펀드’를 조성해 AI 산업에 100조원을 집중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통령실에는 관련 분야를 전담할 AI정책수석도 신설하기로 했다.

원래 잘나갔던 조선·방산 질주

콘텐츠는 한한령 해제 기대감

최근 국내 경제를 이끄는 조선, 방산, 콘텐츠 산업은 이재명 시대에도 변함없이 좋은 흐름을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시장 상황이 좋은 데다 이 대통령도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울트라 사이클’에 접어든 조선업은 이 대통령 체제서도 순항을 이어갈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조선업에 대한 강력한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중점은 선박 제조 시스템 고도화와 미래 선박 시장 선점 2가지다. 이 대통령은 “AI와 로봇으로 자동화율과 생산성을 높이고 작업자 안전을 강화하겠다”며 “첨단 기술 기반 스마트 공장을 조선소 전반으로 확대하고, 연구·설계 전문 인력 등 맞춤형 인력 양성을 뒷받침하겠다”고 공언했다. 조선업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히는 중소 조선사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한다. 주문이 몰려드는 대형 조선사와 달리, 중소 조선사는 은행권의 선수금환급보증(RG)이 제대로 발급되지 않아 수주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RG는 주문한 대로 배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 조선사가 선주가 지급한 선수금을 돌려주기 어렵다면, 은행이 대신 돌려주겠다고 약속하는 보증서다. 이 대통령은 “은행의 RG가 적기에 발급되도록 유도하고, 무역보험공사 RG 특례 보증도 확대해 수주 활동을 지원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러·우 전쟁 이후 전 세계서 활발한 수주 열풍을 이어가는 방산업의 질주도 기대된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 대전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방산 수출 컨트롤타워를 신설하고, 대통령 주재 방산 수출 진흥전략회의를 정례화하겠다”며 “대한민국을 글로벌 방위 산업 4대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대선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웹툰, 게임, 엔터테인먼트 등 콘텐츠 산업은 지원책과 더불어 ‘한한령(한류금지령) 해제’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이 대통령은 ‘K-콘텐츠 지원 강화를 통한 세계 5대 문화 강국 실현’을 핵심 공약으로 내놓았다. 50조원 규모의 문화 수출을 달성하고, 문화 예산을 늘려 ‘K-컬처 시장 300조원 시대’를 열겠다는 게 정책의 골자다. 이를 위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K-컬처 플랫폼을 육성하고, 최첨단 스튜디오와 같은 K-콘텐츠 공공 제작 인프라를 확충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한령 해제 기대감도 높다. 중국에 강한 기조를 내세웠던 윤석열정부와 달리, 이 대통령은 중국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한중 관계 회복을 원하는 중국이 한한령을 해제할 것이란 예측이 강세다.

원전·금융·통신은 긴장

관치 간섭 이겨내고 질주할까

반면 정부 입김이 강한 원전·금융·통신 등 분야는 이 당선인 행보를 예의 주시 중이다.

원전 산업계는 문재인정부 시기 ‘탈원전 악몽’이 재림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이다. 당시 정부의 무리한 원전 배제 정책으로 원전 산업 생태계는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다. 이 대통령은 원전에 대해 명확한 입장은 내놓지 않은 상태다. 지난 20대 대선에는 신규 원전을 짓지 않는 ‘감원전’ 정책을 주장했지만, 21대 대선에선 “현재의 원전 비중을 유지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조금씩 줄여가는 게 큰 방향”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다만, AI 산업 육성을 위해선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필수인 만큼, 이 당선인이 섣불리 원전 비중을 줄이기는 힘들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이 대통령이 개입을 시사해온 금융권은 바싹 긴장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은 가산금리 구조 개편과 채무 탕감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은행 핵심 수익인 대출 이자에 큰 변동이 생길 확률이 높다. 금융계가 주시하는 정책은 가산금리 구조 개편이다. 은행은 대출 금리를 산정할 때 기준금리에 위험 프리미엄, 조달비용, 법적비용, 각종 출연금을 더한다. 이 가운데 이 대통령은 법적비용을 금리 계산서 제외하겠다고 공약을 세웠다. 해당 공약이 추진되면 고위험군 대출은 손실을 감수하고 취급해야 해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다. 채무 탕감 정책 역시 우려가 크다. 이미 연체율이 오름세인 상황에서 대규모 채무 조정이 시행되면 은행의 자산 건전성은 더욱 흔들릴 수 있다. 물론, 규제 예고만 있지는 않다. 코스피 5000 시대를 위한 ‘밸류업’ 정책을 예고한 만큼 증권업은 오히려 기대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또, 은행 업종 밸류업을 위한 지원 확대와 비이자 수익 확대 정책이 더해지면 은행 업계 입장에서 부담은 상당히 줄어든다.

통신 업계는 통신비 인하 압박이 거세질 전망이다. 이번 대선에서 이 대통령과 김문수 후보 양측 모두 가계 통신비 인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대통령은 생활비 절감 대책으로 ‘정보 통신비 인하’를 주창한 바 있다. 데이터 소진 시에도 추가 요금 없이 제한된 속도로 데이터를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이터 안심 요금제’가 핵심이다. 그러나 이동통신사가 AI와 클라우드 등 미래 산업의 핵심 인프라 기업으로 부상하며, 정부의 통신비 인하 압박이 과거보단 약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3호 (2025.06.09~2025.06.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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