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약 스마트폰과 노캔 이어폰이 없다면 내 삶은 어떻게 될까?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런 식이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찾는다. 그러고는 범죄를 다루는 영상을 켠다. 준비를 마치고 집 밖으로 나가자마자 이어폰을 귀로 집어넣는다. 그리고 각종 영상 속에서 흘러나오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일을 하러 간 카페에서도 노캔 이어폰은 필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말할 것도 없고, 집으로 와서 밥을 먹을 때도, 심지어 자기 전 씻을 때도 영상을 재생하고 거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다.
아무래도 나는 중독된 것 같다. 애매모호한 건 내가 도대체 무엇에 중독되었냐는 것이다. 가장 손쉬운 대답은 스마트폰이겠지만 어쩐지 그건 사태를 좀 뭉뚱그린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면 동영상을 보는 것에 중독되었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다. 나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에 중독되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나 자신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를테면 아침에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나갈 준비를 할 때와 밤에 영상을 틀어놓고 샤워를 할 때. 아침에는 휴대전화를 침대 위에 던져둔 채로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준비를 하기 때문에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을 제대로 들을 수도 없다. 밤에 샤워할 때도 마찬가지다. 물소리 때문에 영상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늘 그렇게 한다.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없이는 나갈 준비를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씻으러 욕실에 들어갈 수 없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없으면 길을 걷는 것도, 집 청소를 하는 것도, 외출을 하는 것도 싫다.
예전에는 산책을 하다가 문득문득 소설 아이디어를 얻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걸을 때마다 이어폰에서 나오는 소리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가끔은 일부러 아무런 소리도 듣지 않고 산책을 시도할 때도 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이 되었다. 이어폰을 끼지 않고 거리로 나선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런 불편한 감정을 참아내고 일단 이어폰 없이 산책을 시작하면 좋은 생각이 떠오를 가능성이, 소설의 새로운 길을 만날 가능성이 생긴다는 걸 뻔히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카페에서 나갈 때 이어폰을 낄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고민한다. 이어폰을 포기하기까지 정말 힘이 많이 든다.
최근에 어떤 방송에서 알코올 중독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져서 도움이 되는데, 진짜 문제는 그 약을 먹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지 않는 자기 자신을 떠올리면 두려워진다고, 그래서 결국은 약을 먹지 않게 되고 중독 치료에 실패한다는 이야기였다.
음, 어쩐지 남 이야기 같지 않다. 어쩌면 중독은 무언가를 너무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 무언가를 하지 않거나 못하게 되었을 때, 맞닥뜨릴 '무위'를 두려워하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텅 비어 있음. 그 모든 손해에도 불구하고 '텅 비어 있음'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진짜로 두려운 건 내가 중독된 행위를 진짜로 좋아하고 원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순간인지도 모른다고.
[손보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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