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이를 참 좋아했다. 깔깔거리는 어린애 웃음으로 영혼을 달래는 것처럼, 언제나 아이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의 순수함은 의심받지 않았다. 적어도 처음엔 그랬다. 하지만 점차 주변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결혼도 하지 않은 중년 남성이 유독 어린 여자아이를 좋아하는 듯 보여서다.
아이들과 즐겁게 지낸 뒤, 그는 집으로 돌아갔다. 어둠이 가득한 공간, 창을 뚫고 들어온 달빛이 벽면 가득한 사진을 비춘다. 전부 어린아이 사진이었다. 게다가 옷을 전혀 입지 않은 ‘전라의 여자아이’. 사람들 수군거림은 살을 더하고 있었다. “양의 탈을 쓴 중년의 사티로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호색 생명체)”라는 말까지 나왔다.
세간 평가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계속해서 아이들과 교류를 이어갔다. 어린 영혼의 마음을 달래줄 책을 쓰는 데 시간을 보냈다. 고리타분한 도덕적 교훈으로 가득한 책이 아니라, 그저 아이들이 한 번이라도 미소 짓기만을 바라는 마음이 가득한 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독신으로 ‘아동성애’ 의심을 받은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의 이야기다.

강압적인 아버지 두려워한 말더듬이 작가
누군가 바꾸려 하지 않는 ‘아이들’을 사랑하다
어린 캐럴은 어른이 무서웠다. 언제나 윽박지르면서 고압적인 태도를 보인 아버지 찰스 도지슨 탓이다. 아버지는 영국 국교 성공회 고위직까지 올랐던 인물이었다(성공회 사제는 결혼이 가능하다). 그는 학문적으로, 종교적으로 자식들이 스스로 생각할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녀의 생각은 아버지 말씀으로 채워져야 했고, 종교적인 견해 역시 아버지의 길에서 한 치도 벗어나선 안 됐다. 독재의 열정으로 가득한 아버지 도지슨, 자유로운 고독의 냉정을 소망한 캐럴. 냉정과 열정이 만나는 곳엔 언제나 안개가 일었고, 어린 캐럴은 그 속에서 길을 헤맸다.
아버지의 복제품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캐럴을 침묵하게 했다. 말을 하라고 다그치면 그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지만, 그마저도 더듬었다. 말더듬증은 입 속에서 똬리를 틀고 도통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종교인으로서 아버지를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양가적 감정이 그의 마음에 심겼다.
캐럴이 가장 사랑한 건 책과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누군가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심이 없었고, 그들은 그저 해맑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으니까. ‘이야기’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가장 순수하게 증명한 존재이기도 했다. 캐럴은 수학에도 꽤나 재능을 보였는데, 수식으로 가득한 책에 빠져듦으로써 삶의 고독과 번뇌를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캐럴은 명문 럭비 스쿨에 입학하며 아버지와 떨어졌다. 그러나 다른 관계에서 불화가 이어졌다. 어린 학생을 노골적으로 괴롭히는 선배들이 있어서다. 캐럴은 후배 아이들이 괴롭힘당할 때면 대신 화를 낼 줄 아는 선배였다. 주먹다짐도 주저하지 않았다. 키가 크며 정의로웠고, 공부도 잘하는, 만화 주인공 같은 청년이 루이스 캐럴이었다. 흠은 말더듬증 하나뿐.
뛰어난 성적으로 그는 옥스퍼드대에 진학한다. 운명적인 인연도 만났다. 옥스퍼드대 학장이던 헨리 리델이다. 그는 혼자 살면서 공부에만 몰두하는 캐럴을 집으로 초대했다. 헨리의 집에서 사랑스러운 어린 세 자매와 그들의 자애로운 어머니가 캐럴을 맞았다. 더없이 행복해 보이던, 캐럴이 어려서부터 꿈꾸던 공간이었다.
이상한 나라 앨리스로 ‘아동문학’ 새 지평
옥스퍼드대 학장 딸 12살 ‘앨리스’에게 구애 의혹도
캐럴은 특히 어린 세 자매와 잘 맞았다. 세 자매는 자신의 이야기를 꼬아 듣지 않았다. 캐럴이 말을 더듬을 때조차, 세 아이는 미소 지으며 귀를 기울였다. 캐럴은 그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오랫동안 구전돼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야깃거리가 떨어졌을 때, 그는 또 새로운 얘기를 떠올린다. 동물들이 말을 하는 희귀한 세계로 떨어진 소녀의 이야기였다. 우리말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알려진 작품이다. 헨리 리델의 어린 세 자녀 중 한 명의 이름 역시 앨리스였다.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해준 헨리 리델 가족과의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한 건 1863년부터다. 정확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지만, 전기를 쓴 작가들은 캐럴이 앨리스에게 구애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32살 아저씨가 고작 12살 앨리스를 신부감으로 여겼다면 분노가 터져나오는 건 당연했을 터. 누구보다 믿고 의지했던 관계였다면 더욱더. 헨리 리델과 루이스 캐럴 사이 왕래가 결국 끊어졌다. 그만큼 지우고 싶은 기억이었을까. 매일같이 일기를 쓰던 캐럴은 그때의 일기장을 찢어버렸다(최근에는 캐럴이 헨리 리델 집안 가정교사 혹은 앨리스의 언니와 연루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관계는 끊어졌지만, 앨리스와의 추억은 아동문학의 새 장을 열었다. 1865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정식 출간됐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고리타분하고 뻔하디뻔한 권선징악으로 아이들에게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적 아동문학의 문법을 따르지 않았다. 어른에 오염되지 않은 아이들만의 환상 속 세계 구현. 그곳에는 아버지의 윽박지름이 없었고, 어른들의 속물근성이 없었다. 동물들이 말을 하고, 세계가 거꾸로 뒤집히는 세계. 그저 즐거운 황홀경으로만 움직이는 세상 속 이야기. 기존 문학에 존재하지 않던 것이다. 아이를 하나의 독립적 개체로 인정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수작이다.

어린 여자아이 누드 사진을 찍었던 캐럴
누구보다 아이들 사랑했지만 ‘아동성애자’ 꼬리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대성공으로 루이스 캐럴은 엄청난 명성을 쌓았다. 빅토리아 여왕의 손주들도 캐럴을 초청할 정도였다. 책은 수백만부가 팔려나갔다. 지금도 영어 단어에는 작품 속 대사들이 관용어처럼 쓰인다. 일이 복잡하거나 미스터리하게 전개될 때 쓰는 ‘Down the rabbit hole(토끼 굴 속으로)’이 대표적이다.
캐럴은 여전히 아이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특히 그는 아이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중에는 여자아이 누드 사진이 특히 많았다. 그에게 ‘아동성애자’라는 의혹이 최근까지도 따라붙는 이유다. 옥스퍼드대에서도 독신으로 살면서 늘 아이들과 함께 있는 그에 대한 색안경을 낀 시선이 분명히 존재했다.
당대 빅토리아 시대에는 어린 여자아이의 나체 사진을 찍는 것이 일종의 관행이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실제로 어린 여자아이 사진 중에는 그들의 부모와 함께 찍은 것도 있었다.
아동문학의 대문호로서 그는 성공이 자신을 잡아먹게 두지 않았다. 그저 살아온 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갔다. 학교에 출근해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밤에는 다시 아이들을 위한 글을 썼다. 아이들에게 들려줄 새로운 얘기를 구상하면서 미소 짓는 것. 그렇게 일관된 삶을 살아가던 1898년, 그는 폐렴으로 죽었다. 전 세계 아이들이 뛰어놀 환상의 세계를 만들고, 그 역시 순수의 세계로 떠나버렸다. 그의 나이 65세. 아이들을 가장 잘 이해하는 존재의 죽음이었다.

[강영운 매일경제신문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9호 (2025.07.23~07.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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