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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훈의 아그리젠토] 농업강국 호주에서 경험한 애그테크

농축산물 수출 대국인 호주
전통농업 탈피에 국가 올인
"기후변화 충격, ICT로 막자"
AI로 병해충 미리 탐지해내고
수직농장·산불 등 다양한 분야
스타트업 창업 생태계도 탄탄
애그테크 창업 상당수 중장년
축적된 경험으로 혁신에 기여

  • 정혁훈
  • 기사입력:2025.06.23 17:54:14
  • 최종수정:2025.06.23 17:5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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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계절이 정반대인 호주는 전통적인 농축산물 수출 대국이다. 쌀과 함께 세계 2대 식량작물인 밀 수출 세계 2위, 소고기 수출도 세계 2위를 달린다. 농지가 워낙 광활하고 온대부터 열대까지 기후대가 다양하다 보니 이런저런 농축산물 생산에 유리하다. 소비국이 몰려 있는 북반구와 계절이 정반대라는 점도 해외 농업 수출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준다. 한마디로 천혜의 농업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 바로 호주다.

이런 호주가 최근 들어 농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의 접목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의 농업으로는 더 이상 기후변화 충격을 이겨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 변화의 주체가 애그테크(agtech) 스타트업이라는 사실을 최근 호주 현지 취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애그테크는 우리나라나 이스라엘처럼 농업 여건이 좋지 못한 나라에서 주로 환영받는 개념이라는 생각은 잘못이었다.

현지 스타트업 기술 중 눈에 띄는 것 가운데 하나는 병해충 사전 탐지 기술이었다. 공기 중에 날아다니는 곰팡이균 포자를 흡착해 이를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뒤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곰팡이성 병해충을 미리 탐지하는 장비다. 지금까지는 작물이 병해충에 감염된 것을 확인한 이후에나 방제가 가능했지만 이제 작물이 감염되기 전에 발생을 예측해 사전 방제하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작물에 병충해를 일으키는 원인은 곰팡이와 박테리아, 바이러스로 나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 중 60% 정도가 곰팡이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전자현미경과 AI 기술을 더 발전시켜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까지 미리 잡아내는 장비의 개발도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시도는 호주가 세계 최초다.

수직농장(vertical farm)도 호주에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시도되고 있다. 미국의 대형 수직농장 업체들이 대부분 파산의 길로 접어든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냉장고 크기만큼 작은 수직농장 모듈을 개발한 것이다. 여기서는 식용 꽃이나 마이크로 그린(초소형 엽채류)과 같은 고급 식당용 채소를 재배해 높은 가격을 받고 있었다. 또한 수직농장을 지게차로 창고 선반에 차곡차곡 쌓는 방식으로 대형화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적은 비용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기후변화 여파로 대형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최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스타트업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산불 예방과 진화에 활용할 자동센서 감시장비나 첨단 드론을 개발한 스타트업들이 꽤 많았다. 센서가 연기를 감지하면 곧바로 드론이 출동해 산불 유무를 확인한 뒤 소방서에 자동으로 알리는 시스템이나 불씨가 될 수 있는 잡목더미를 미리 태워 제거하는 드론이 상용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스타트업의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창업보육시설이 곳곳에 설치되고, 자금을 대주는 투자시장 환경도 부러울 정도로 잘 완비돼 있었다. 좋은 아이디어와 사업에 대한 진정성·열정이 있으면 누구라도 스타트업을 창업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듯 보였다.

무엇보다 애그테크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나이가 많았다는 점에 크게 놀랐다. '스타트업' 하면 습관처럼 청년 창업을 떠올렸지만 호주는 완전히 달랐다. 이번에 만난 창업자들은 절반 이상이 중장년층이었다. 청년을 찾기가 더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미 현역에서 은퇴한 지도 한참 됐을 법한 고령자도 있었다. 이들에게서 청년 창업가와 같은 패기를 찾기는 어려웠지만 업(業)에 대한 이해도와 진정성은 그 이상이었다. 무엇보다 밝은 표정에 자신감이 넘쳤다. 애그테크에 기반한 농업 혁신을 말할 때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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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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