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4월 6일, 중국 베이징 중관춘의 한 사무실에서 직원 14명이 창업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특이하게도 전기밥솥을 한가운데 두고 찍었는데, 밥솥 안에는 좁쌀죽이 담겼다. 좁쌀은 중국어로 샤오미(小米), 밥솥 뒤에 서 있는 남성의 이름은 레이쥔. 중국을 대표하는 빅테크인 샤오미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이다.
본사 전시관에 걸려 있는 이 사진은 샤오미의 초고속 성장을 상징한다. 초창기 샤오미는 보조배터리·청소기 등으로 한국에서 이름을 알렸다. '대륙의 실수' '차이슨'이라는 별칭이 붙은 시기도 이맘때다. 그러더니 어느덧 세계 3위 스마트폰 제조사가 됐다.
사물인터넷(IoT) 시장을 주도하고 전기차를 만들어 자율주행 분야에도 진출했다. 지난 3월 중국발전포럼 참석차 방중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곧바로 찾아간 곳도 샤오미다.
성장 비결은 누가 뭐라 해도 가성비다. '싸고 좋게'가 모토인 회사답게 직원들에게도 직원 할인을 해주지 않는다. 이미 충분히 저렴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더 깎아줄 게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샤오미 직원들로 하여금 자부심을 갖게 만든다. 미펀(米粉·샤오미 팬덤)을 더 단단하고 열광하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창업자인 레이쥔 회장은 중국 2030세대의 워너비다. 창업 전 온라인서점 '조요'를 아마존에 매각해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음에도 새 도전에 나서 보란 듯 성공 신화를 써가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 구멍 앞에 서면 돼지도 난다'(적절한 시기에 기회를 잡으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는 뜻)는 그의 명언은 제2, 제3의 량원펑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최근 큰 고난이 찾아왔다. 지난 10일 레이쥔 회장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난 한 달여간 샤오미를 설립한 이후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토로했다. 기분이 좋지 않아 회의와 출장을 취소하고 SNS 활동도 중단했다고 덧붙였다. 구체적인 이유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맥락상 지난 3월 말에 발생한 여대생 차량 사고 때문일 것이다.
지난 3월 안후이성에서는 샤오미의 전기차 SU7을 탄 여대생 3명이 고속도로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뒤 화재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전 차량에 장시간 지능보조주행(NOA)이 켜져 있던 사실이 드러났고, 자율주행 기능에 과하게 의존하다 사고가 났다는 추측이 나왔다. 기술력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샤오미 주가는 폭락했다.
지난달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상하이 모터쇼에도 레이쥔 회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1년 전 베이징 모터쇼 때 수백 명의 취재진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전자제품과 달리 전기차의 안전은 소비자의 생명과 직결되다 보니 샤오미가 이번에 느끼는 무게감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올여름 첫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YU7' 출시가 예정돼 있다. 관건은 안전에 대한 신뢰 회복이다. 대응은 신속해야 하고 과정은 투명해야 한다. 이제는 전 세계가 중국산 전기차의 안전 문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레이쥔 회장이 15년 만에 맞닥뜨린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주목되는 이유다.
[송광섭 베이징 특파원 song.kwangsub@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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