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나간 그릇을 쓰다 “복 나가니 빨리 버려라”라는 얘길 들어본 적이 있으실지.
우리는 예부터 이가 나간 그릇을 사용하는 것을 금기시했다. ‘복 나간다’는 반응은 애교다. 재수가 없다느니 별별 말이 따라붙는다. 어찌 보면 복 나간다는 것은 부차적이고, 이 나간 그릇에 음식을 먹다 입술을 다치고 뭐 그런 걸 걱정한 것은 아닐까? 진짜 이유야 어떻든 그런 문화(?)에 익숙해서인지 어쩌다 식당에서 이 나간 그릇에 서빙이 되는 음식을 보노라면 음식을 먹고 싶은 맘이 깨끗이 사라질 정도다.
이 나간 그릇을 무조건 버리는 것은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행해지는 일상은 아니다. 빈티지 그릇을 모으는 분은 알겠지만 서양에서는 이 나간 그릇을 ‘칩이 있다’고 표현한다. 칩이 있는 그릇은 하자가 있는 만큼 가격이 싸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버리지는 않는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아예 수리해서 쓴다.
특히 일본에서는 ‘금으로 잇다’ 라는 의미를 지닌 ‘킨츠기(金継ぎ)’라는 도자기 수리법이 엄청 발전했다. 그냥 수리해서 쓰는 정도가 아니다. 수리함으로써 더욱 아름다워지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그릇이 탄생한다고 믿는다. 수리해서 한결 근사해진 기물은 이전에 비해 더 비싼 몸값을 자랑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일부터 멀쩡한 도자기를 깬 후 수리해 팔던 도공도 있었다는 전언이다.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일견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다.
‘킨즈기’라는 단어를 난생 처음 들어본 이가 대부분일 테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차를 마시는 이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단어다. 귀한 다구가 깨졌을 때 버리는 대신 킨츠기를 해서 되살려 다시 쓰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킨츠기는 깨진 도자기 조각을 옻칠해서 이어 붙이고 이어 붙인 선을 따라 금가루나 은가루로 장식하는, 일종의 공예다. 말로 하니 간단해 보이지만 보통 신경을 써야 하는 작업이 아니다. 깨진 조각을 일일이 모아 자리를 맞춘 후 옻을 칠하고 오랜 기간 말려야 한다. 건조 시간이 길수록 견고해지는 옻의 특성상 말리는 기간은 최고 한달에서 길게는 수개월까지도 걸린다.
킨츠기는 크게 혼킨츠기(本金継ぎ)와 간이킨츠기(簡易金継ぎ)로 나뉜다. 혼킨츠기는 천연 재료만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방식이다. 간이킨츠기는 그렇게 오랜 시간 기다릴 수 없다며 합성수지인 에폭시를 사용해 작업 시간을 단축시킨 현대적 방식이다. 간이킨츠기는 평균 1~3일 만에 작업을 완성할 수 있다.
좀 복잡해 보이지만 그래도 설명대로 잘 따라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사실 킨츠기는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지난하고 섬세한 작업이다. 또 공예의 일종이니만큼 옻이나 금분·은분의 발라진 모양새와 조화, 이음새의 자연스러움 등 완성도 있게 작업을 마무리하는 게 보통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그릇에 따라 금분이 어울리기도, 은분이 어울리기도, 아예 검은색이나 붉은색 또는 생 옻칠이 어울리기도 한다.
어떤 재료를 사용할 것인가는 그저 문제된 부분을 수리하는 정도가 아닌, 센스와 예술의 영역으로 올라선다. 금분이나 은분이 비싸다고 너무 적게 뿌려도 안되고 예쁘게 잘 만들어 보겠다고 너무 과하게 뿌려서도 안된다. 공예적 기술과 예술적 감각이 모두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제 귀한 그릇은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기 때문에 킨츠기를 잘하는 것으로 정평이 난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얘기하는 게 이해가 되실런지.


여기서 질문. 깨진 조각을 모두 잘 찾으면 다행이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깨진 조각 일부를 찾지 못했다면? 그런 경우는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답은 ‘완전 NO’다. 이럴 때도 깨진 그릇을 살리는 몇가지 방법이 있다.
킨츠기는 보통 자기 조각으로 수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깨진 조각을 모두 찾았다는 의미다. 살짝 이가 나간 부분은 옻으로 메꾸면 된다. 깨진 조각 일부를 소실했을 때 기존 도자기와 비슷한 색과 느낌의 다른 조각을 찾아 끼워 맞추고 킨츠기할 수 있다. 이런 방법을 ‘토모츠기’라 부른다. 비슷한 색과 느낌의 다른 조각조차 찾을 수 없다면? 그럴 경우는 아예 다른 색과 느낌의 조각을 끼워넣기도 한다. 이런 수리법을 ‘요비츠기’라 한다. ‘토모츠기’와 ‘요비츠기’ 모두 일종의 ‘패치워크’ 기법이라고 하면 바로 이해가 되실려나?
이렇게 ‘토모츠기’나 ‘요비츠기’를 통해 탄생한 작품은 기존 도자기와는 아예 다른 새로운 미감의 작품이 된다. 수리가 잘 된 작품은 아예 처음부터 의도하고 만든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근사한 경우도 종종 있다. ‘토모츠기’든 ‘요비츠기’든 비슷하거나 아예 다르거나 어쨌든 조각이 있어야 가능하다. 조각 자체가 하나도 없다면? 이럴 때도 방법이 있다. 비어 있는 공간을 철사를 끼워넣어 뼈대를 만든 후 거기에 면보 같은 천을 붙이고 옻칠을 하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없는 면을 메워낸다. 새로 만들어진 면에 옻칠을 하고 금분이나 은분을 칠하면 된다.

깨진 도자기를 버리지 않고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킨츠기’는 일본의 와비사비 정신을 대표하는 단면이다. ‘와비’는 덜 완벽하고 단순하며 본질적인 것을, ‘사비’는 오래되고 낡은 것을 뜻한다. 두 단어가 합쳐진 ‘와비사비’는 부족하지만 그 내면의 깊이가 충만함을 의미한다.
‘와비사비’는 일본의 다성(茶聖) 센노리큐로부터 확립된 일본의 독특한 미감이다. ‘결점, 불완전함, 비대칭, 불규칙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미감을 찾는다’ 정도로 이해해볼 수 있겠다. 센노리큐 제자들이 센노리큐 철학을 집대성한 책 ‘남방록’에 ‘와비’라는 단어가 처음 나온다.

어쩌면 상처를 회복하고 그 불완전함을 기쁘게 즐기는 ‘킨츠기’ 미감은 퍽퍽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단면이 아닐까. 그뿐인가. 전혀 쓸모없을 것 같던 깨진 파편들이 킨츠기할 때 아주 유용한 조각이 된다. 스스로가 한없이 작게 느껴지고 의기소침해지는 어느날, 햇살 내리쬐는 창가에서 킨츠기한 기물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쓰다듬으며 버둥대곤 했다. “나도 언젠가는 너처럼 아름다워질 수 있겠지” 속삭이며.
오늘의 영화 ‘집으로 가는 길’에서도 그런 ‘킨츠기 미감’을 찾아볼 수 있다.
늦깎이 초등학생 17살 소녀 홍연(전도연)의 21살 총각 선생님 강수하(이병헌) 짝사랑 스토리 ‘내 마음이 풍금’ 영화를 아실런지. ‘집으로 가는 길’은 딱 중국판 ‘내 마음의 풍금’이다.
중국 전도연은 장쯔이다.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장쯔이가 한없이 사랑스럽게 나오는 영화 ‘집으로 가는 길’에서 18세 산골마을 처녀 쟈오 디는 마을 학교에 부임해온 20살 선생님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선생님이 쟈오 디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한 날, 갑자기 선생님이 와서 “도시에 잠시 다녀오게 되어 한동안 못보겠지만 저녁은 꼭 먹으러 오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선생님은 약속을 못 지키고 마을을 떠나게 되고, 쟈오 디는 준비했던 저녁을 보자기에 싸서 선생님이 탄 마차를 헐레벌떡 쫓아가지만 중간에 넘어져 구르고 음식이 담겼던 그릇은 산산조각 난다.
그렇게 짝사랑을 보내고 시름시름 앓는 쟈오 디를 위해 엄마는 산산조각난 그릇을 수리한다. “난 못 값만 받는다”면서도 “새 그릇 사는 게 더 쌀 것”이라고 얘기하는 그릇 수리업자에게 엄마는 “우리 딸 때문에 고치는 것”이라며 “그것 쓰던 사람이 떠났는데 우리 딸이 그 사람을 좋아했다”고 얘기한다.

“물 한방울 새지 않게 고쳐서 따님을 기쁘게 해줄게요.”
여기서 다시 질문. “나는 못 값만 받는다” 옻이 아니고 못? 일본에서 킨츠기를 했다면 중국에서는 ‘거멀못 수리’를 많이 했다. ‘쥐츠(锔瓷)’라는 이름의 수리 방식이다. 스테이플러 심으로 박은 것처럼 ‘ㄷ’ 자 모양 얇은 금속 재질로 깨진 두 조각을 이어붙이는 방법이다. 주로 동이나 은 재질 이음매를 사용한다.
킨츠기든 거멀못 수리든 요즘은 아예 처음부터 킨츠기와 거멀못 수리를 한 듯한 새 제품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만큼 킨츠기와 거멀못 수리 미감에 빠진 작가와 그런 작품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소비자가 많다는 의미일 터다.
도자기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 아트에서도 킨츠기 미감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3월 25일 시작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그룹전. 전시의 중심 공간인 아트리움에 이수경 작가의 ‘번역된 도자기’ 연작 작품이 설치돼 있다. 깨지고 버려진 도자기 파편에 주목한 이 작가는 그 파편을 새롭게 조합하고 이어붙이면서 완전 새로운 예술작품을 만들어냈다. 이수경 작가는 “깨진 것들이 다시 모여 더 강해지고, 파편이 만나면서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는 과정 자체가 예술”이라고 말한다.
농구와 관련된 작품을 시리즈로 선보이고 있는 아티스트 빅터 솔로몬의 ‘킨츠기 코트’도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 마을에 망가진 채 방치돼있던 농구 코트의 빈 틈을 금가루가 묻은 레진을 채워넣어 굳히는 방식으로 바닥을 평탄하게 만들고 ‘킨츠기 코트’라 이름 붙였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