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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 정국’ 속 韓 경제…전문가에게 듣는다

  • 명순영,반진욱,조동현
  • 기사입력:2025.04.15 21:00:00
  • 최종수정:2025-04-15 20:5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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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올해 11월 세계 3대 채권지수인 세계국채지수(WGBI·윅비)에 편입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 시기가 내년 4월로 미뤄졌다.

WGBI는 ▲블룸버그-바클레이스 글로벌 국채지수(BBGA) ▲JP모건 신흥국국채지수(GBI-EM)와 함께 전 세계 기관 투자자들이 추종하는 채권지수로 꼽힌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0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 러셀이 한국의 WGBI 편입을 확정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1년가량 유예 기간을 거쳐 내년(2025년) 11월 WGBI에 실제 반영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 시기가 5개월 미뤄졌다고 최근 알린 것이다. 지수 편입이 연기되며 선진국 자금 유입과 자금 조달 비용 절감, 달러화 유입에 따른 고환율 기조 완화 등 기대효과가 당장 이뤄지기는 힘들게 됐다.

기재부는 FTSE 러셀의 연기 결정과 관련해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국채 시장에 원활히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 기간을 확보하려는 차원”이라며 “채권 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일본 투자자들의 투자 환경 개선 요구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WGBI 편입 연기를 두고 뒷말이 많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내외 불확실성이 악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 관세 폭탄에 취약한 한국 경제 구조,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계속되는 정치적 혼란 등에 따른 외국 투자자 불안이 편입 연기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정치권, 2개월 뒤 조기 대선에만 골몰

분초를 다투는 경제 전쟁에 집중해야

탄핵 인용으로 대한민국은 조기 대선 정국으로 접어들었다. 2개월 가까이 혼란이 더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지금 분초를 다투는 ‘경제 전쟁’에서 2개월을 허송세월하기에는 한국 경제 체력이 탄탄하지 못하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을 1.5%로 낮췄지만 0%대까지 추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관세 리스크가 한국 경제를 옥죄는 데다,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까지 가중된다. 해외 투자은행(IB) JP모건이 밝힌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0.7%로 기존 0.9%에서 일주일 만에 하향 조정했다. 예상보다 큰 폭의 미국 관세 인상에 따른 수출 감소, 국내 정책 환경 불안이 전망치 조정의 이유였다.

ADB가 넉 달 만에 0.5%포인트 낮추며 한국의 ‘2025년 성장률 전망치’를 1.5%로 제시했다. 미국·중국과의 수출 경쟁 심화, 무역 불확실성 등 대외적 리스크가 하락 요인이다. 또한 대내적으로는 고금리, 가계부채, 정치적 불확실성 등에 기인한 민간 소비 약화, 건설업 부진 등을 악재로 언급했다.

가장 중요한 수출은 바람 앞의 등불이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경제성장률 2.04% 중 수출 기여도는 1.93%포인트로 최근 5년 내 가장 높다. 그러나 지금 추세면 수출 하락은 불보듯 뻔하다. 설상가상 생산시설 해외 이탈로 고용을 늘리기도 힘겹다. 특히 15~29세 청년층 실업률 증가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탄핵 인용으로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탄핵 정국에서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향후 국민 통합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차기 대선 당선이 유력한 더불어민주당 측은 강력한 기업 규제를 예고하고 나섰고,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폭탄 선언’을 쏟아내며 불확실성을 높인다. 그야말로 내외부 모두 악재가 가득찬 ‘퍼펙트스톰’ 앞에 한국 경제가 놓여 있다.

전문가들은 당장 한덕수 국무총리 대통령 대행을 중심으로 위기를 돌파할 전략을 짜는 데 올인하라고 주문한다. 전례 없는 트럼프 관세 전쟁에 맞서 기업이 헤쳐나가야 할 과제 역시 만만치 않다. 매경이코노미는 전현직 경영학회장과 경제석학들로부터 한국 기업 대응책과 현 대행 체제 정부와 차기 정부의 과제를 짚었다.

탄핵 인용으로 대한민국은 조기 대선 정국으로 접어들었다. (연합뉴스)
탄핵 인용으로 대한민국은 조기 대선 정국으로 접어들었다. (연합뉴스)

전·현직 경영학회장 3인 직언

일단 버텨라…그리고 체질 개선

“내수 위축, 수출 감소, 인구 감소로 인한 성장 잠재력 감소, 트럼프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정책까지 그야말로 위기다. 하지만 가장 큰 위기는 상황을 통제할 지휘부가 아예 없다는 점이다. 국가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한 시점인데, 수장이 자리를 비운 상황에선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기 힘들다. 국가적 위기에 거시적인 판단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악재다.”

김연성 인하대 경영학과 교수(69대 한국경영학회장)의 분석이다. 전·현직 경영학회장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컨트롤타워’ 부재다. ‘벼랑 끝’에 마주한 기업을 도울 마땅한 리더십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차기 대통령을 뽑기 위한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지만, 정국은 쉬이 안정되지 않는 분위기다. 여러 후보가 난립하며 국민 여론은 더 갈라졌다. 치열한 정치 갈등 속 기업 지원책은 이미 후순위로 밀려난 지 오래다.

오히려 기업 규제책이 쏟아진다. 차기 대권을 잡을 것으로 유력한 민주당은 재계가 반발하는 상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등 기업의 고민을 더 키운다. 김재구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68대 한국경영학회장)는 “국내 정치 불안정이 선을 넘었다”며 “사회·정치적 갈등이 지나치면 기업을 중시하고 혁신을 통해 성장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적 기반이 붕괴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나마 대기업은 사정이 낫다. 위기가 지속되더라도 버틸 힘이 있다. 반면 체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현재 생사의 갈림길에 선 상황이다. 국내 고용 대부분을 책임지는 중소기업이 쓰러지면 이는 한국 경제에 큰 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양희동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70대 한국경영학회장)는 “중소기업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내외부 혼란으로 인해 생산 시설 이전, 단가 압박 등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중소기업은 현재 ‘생사의 갈림길’에 선 상태”라고 진단했다.

사진설명

재무 건전성 높이고 비효율 제거

대관 조직 ‘풀가동’…정치 리스크 막아라

전·현직 경영학회장들은 단기와 중장기로 나눠 철저히 생존 전략을 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는 동시에, 미래를 위한 체질 개선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가장 시급한 정책은 ‘기업 체력 확보’다. 거시적인 위기가 덮치면 개별 기업의 힘만으로는 상황을 바꾸기 힘들다. 섣불리 행동하기보다 위기를 버틸 체력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다. 현금흐름이 막히는 상황을 대비해 재무 건전성을 높이고, 구조조정을 통해 그동안 쌓였던 비효율을 제거하는 내실 다지기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석유화학, 건설, 유통 등 업종은 이미 ‘내실 경영’에 돌입한 기업이 상당수다. 불필요한 투자와 지출을 줄이고, 채권 회수, 자산 매각 등을 통해 현금 마련에 힘을 쏟는다.

김연성 교수는 “채권 회수, 지출 줄이기 등을 통해 재무 건전성을 높여야 한다. 위기를 버티면 다음엔 기회가 온다. 기회가 왔을 때 내실을 다지고 정비한 기업은 도약하지만, 관망만 한 곳들은 제대로 기회를 잡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내실을 다진 후엔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 대비에 나서야 한다. 미국이 정책을 수시로 바꾸는 때 이에 대비하는 조직이 없다면 기업이 막대한 손해를 입을 수 있다. 실제 최근 기업들은 산업부 관료 출신들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며 ‘통상 압박’ 대응에 나서고 있다. 또 삼성, 현대차 등 글로벌 기업은 미국 대관팀을 적극 가동, 미 행정부에 맞춰 기민하게 움직인다.

양희동 교수는 “트럼프 정부 압박에 대비해 미국 생산 시설 투자, 추가 관세 예외 품목 사전 증명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에 민감한 인물이다. 트럼프의 정치적 기반인 중서부 주지사, 국회의원, 기업 등과의 민간 외교 노력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국제 대관뿐 아니라 국내 대관 조직을 강화하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조기 대선에 대비해 정치 리스크 대응에 나서는 분위기다. 10대 그룹을 비롯한 재계는 탄핵 이후 정국 향방과 이에 따른 경제 지표 변동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차기 정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정책 방향이 180도 달라진다. 국민의힘 계열이 승리한다면 기존 윤석열정부 기조를 이어갈 확률이 높다. 반면, 민주당 계열이 대권을 차지하는 순간, 현재 정책은 전면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여론을 보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 당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상법 개정안 통과를 비롯해 고강도 규제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대한 대비책을 미리 마련해놔야 한다는 게 경영학회장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인건비 위주 공급망 시대 끝

수출 다변화 못하면 답 없다

단기 대비책은 어디까지나 ‘당장’ 살아남기 위한 방책이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산업 체질 개선에 성공하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는 게 경영학계 진단이다.

기존 자유무역 체제 하에 형성된 현재 공급망은 붕괴 위기에 처했다. 미국이 중국을 노골적으로 배제하기 시작했다. 부품과 중간재를 중국으로 수출해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 공장에서 완성시킨 뒤 미국으로 보내던 과거 모델은 이제 끝이 났다.

4월 9일(현지 시간) 미국 행정부는 전 세계 국가에 90일 동안 상호관세 유예할 뜻을 내비쳤지만, 중국은 예외로 뒀다. 현재 미국이 중국에 예고한 관세율은 104%다. 한국 전체 수출 물량 중 대중·대미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한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첨예해질수록 국내 기업이 압도적인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석학들은 체질 개선을 위한 대책으로 산업 첨단화, 수출 다변화, 상시협의체 설립 등을 제시한다. 산업 첨단화는 인력 중심 생산 공정을 벗어나 무인화·스마트 공정을 도입하는 게 골자다. 국내 산업 구조상 기술보다 노동력에 의존하는 사례가 적잖다. 인건비가 싼 국가를 찾아 생산기지를 옮기는 이유다.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로 인건비가 싼 국가에 무조건 생산기지를 이전할 수는 없다.

김재구 교수는 “저렴한 노동력을 공급하는 국가에 생산기지가 모이던 과거 글로벌 공급망은 이제 붕괴됐다. 첨단 공정을 갖춰 인건 비용이 적게 드는 국가 중심으로 공급망이 재편될 것이다. 국내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스마트 제고 기반 구축이 절실하다. 단순 생산 인력 수요를 최소화하고, 신제품 개발이나 신사업 기획, 제조 혁신 등의 인력 수요로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출 다변화도 필수다. 한국 기업들이 미·중 무역 분쟁에 타격을 크게 받는 이유가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서다. 일부 국가에 편중된 매출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추후 위기에는 더 크게 흔들릴 공산이 크다. 양희동 교수는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고, 공급망 및 원산지 관리가 필요하다”며 “기업 스스로 ‘글로벌 사우스’를 비롯한 신흥 시장 진출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자체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기업, 정부뿐 아니라 학계 포함 민간 등 전 분야가 합쳐 ‘원코리아’로 움직여야 한다. 이미 일본을 비롯한 국가들은 산·학·연이 뭉쳐 산업 재편을 준비 중이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던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듣는 상시협의체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 자체 노력만으로는 생존에 한계가 있다. 정부·산업·학계를 연결하는 주요 기업 CEO 출신 자문위원단을 만들어보는 것도 방안이다.” (김연성 교수)

사진설명

韓 경제 재건 정부 3대 숙제

내수 진작·규제 혁신·정부 주도

탄핵 정국이 남긴 가장 뼈아픈 상처는 내수 시장 침체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내수 불황이 한층 짙어졌다”고 분석했다. 석학들은 신속한 추가경정예산안(추경) 집행과 적극적인 재정·통화 정책으로 내수 경기를 회복하는 데 전력을 쏟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부터 추경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정치권이 정쟁에 빠져 대응을 놓쳤다는 지적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탄핵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소상공인을 포함한 내수 시장”이라며 “정부가 빠르게 추경을 집행해 소비 진작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원 방식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사람이 죽어가는데 항생제 브랜드를 놓고 다툴 땐가”라고 질타했다.

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내수 경기 활성화를 통한 경제성장률 회복이 가장 시급하다”며 “확장 재정을 통해 내수를 회복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성장률과 일자리를 동시에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 출산율 제고, 고령층 재취업 등 인구 구조 변화에 대한 대책을 병행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도 했다. 황윤재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는 “단기적으로는 내수 경기 활성화를 위한 정교한 재정·통화 정책의 조합이, 장기적으로는 인구 구조적 변화에 대한 잠재성장률 제고 정책이 조속히 시행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현재 한국 경제를 둘러싼 경제 변수로 단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이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 80여개국을 대상으로 고율 상호관세를 발효하며, 한국에는 2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안동현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철저한 장사꾼으로 관세 인상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며 “외교부가 미국이 요구하는 카드를 정확히 파악해 협상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세 폭탄에 관한 해법으로는 ‘산업별 맞춤 전략’이 제시된다. 김흥종 특임교수는 “반도체 산업은 경쟁국이 적으니 관세를 맞더라도 국내 생산을 유지해야 하고, 자동차처럼 경쟁이 치열한 산업은 미국으로 일부 생산기지를 옮기는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제언했다.

단, 석학들은 트럼프 행정부 관세 정책이 지속될지에 관해선 신중론을 펼친다. 미국 경제 역시 흔들리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9일(현지 시간) 국가별 상호관세가 시작된 지 13시간여 만에 중국에 대한 관세는 125%로 올리면서, 중국을 뺀 다른 국가에는 국가별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고 10%의 기본관세만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금과 함께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 미국 국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게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유예로 급선회한 배경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황윤재 교수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은 세계 경제 전체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어 미국 경제 입장에서도 장기적으로 지속하기 힘들다고 생각된다”며 “그럼에도 세계 경제의 자국 우선주의 강화 기조는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어 한국 정부는 적극적인 통상 외교를 통해 양자·다자 간 협상력을 강화하고, 공급망 다변화로 리스크를 분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韓 경제, 넘어야 할 산은

규제 혁신, 재정·세제 개편 필수

석학들은 한국 경제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으로 규제 혁신과 재정·세제 개편을 꼽는다. 김 특임교수는 “규제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늘어나기 마련이므로 끊임없는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노동 시장 유연화’는 성장 잠재력 회복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황 교수는 “생산성 향상 없이는 경제 체질 개선이 어렵다”며 “노동 시장 유연화를 통해 경제 활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 역시 “규제 완화와 기업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며 “기업을 경영하기 좋은 환경이 마련되지 않으면, 우리나라 창업 생태계 역시 다시 살아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세제 개편 논의도 시급하다. 한국은 세수 결손에 나라 살림 적자가 심각한 상태다. ‘2024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실질적인 나라 살림 수준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지난해 104조8000억원에 달한다. 정부가 총지출을 계획보다 18조원 넘게 줄였지만, 30조원이 넘는 ‘세수 펑크’가 발목을 잡았다. 결국 지난해 목표로 삼았던 ‘건전 재정’을 달성하지 못했다.

김 특임교수는 세제 개편 방향에 대해 “세출을 억제하는 수비적 자세를 지양하고 대규모 경기 부양을 통해 세수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초고소득자 증세와 상속·증여세의 합리적 조정, 부동산에 대한 증세, 자본 시장 활성화를 위한 상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부가 이미 실패한 건전 재정 기조보다는 중장기 균형 재정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새겨들을 만하다. 황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경기 부양과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확장 재정이 필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균형 재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정 건전성 훼손을 방지하면서도 단기 위기 대응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차기 정부 과제는 ‘원톱 리더십’

필요하다면 ‘경제기획원’ 신설도

대한민국은 60일 안에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조기 대선을 실시해야 한다. 석학들은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 재건’이라며, 경제 위기의 복합성을 고려할 때 정부가 보다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민간에만 맡겨서는 한국 경제가 직면한 난제를 풀 수 없다는 진단이다.

안 교수는 “전 세계가 정부 주도로 산업을 육성하는데 우리만 민간에 맡기고 있을 순 없다”며 “단순한 정부 개입이 아닌 정부가 산업 육성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 뒤, 시장의 자생력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만의 반도체 제조 업체 TSMC다. TSMC는 대만 정부가 1987년 자본금 48%, 약 2억2000만달러를 출자해 세운 회사다. 이후 증자 과정을 거치며 정부 지분이 6.8%로 떨어졌다. 안 교수는 “대만 TSMC 사례처럼 초기에는 정부가 지분을 갖고 지원하지만, 이후 민간 주도로 전환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정부 조직의 권한과 구조를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안 교수는 “지금처럼 기재부가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구조에서는 산업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기 어렵다”며 “산자부에 더 많은 권한을 주고, 필요하다면 경제기획원 같은 조직을 신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경제기획원은 과거 박정희정부 시절, 한국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주도한 곳이다. 거시 경제는 물론 산업 육성까지 정부가 직접 기획·관리하며 경제 성장의 중추적 역할을 맡았던 전례가 있다.

김 특임교수 역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주문했다. 단순한 기업 지원을 넘어, 한국 자체를 매력적인 산업 생태계로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제언이다. 그는 “과학과 공학 분야의 연구개발(R&D)을 대폭 확충하고, 미국·중국·유럽 등과의 국제 공동 기술 개발·인적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며 “대규모 인프라 투자로 산업·주거단지를 개발해 전 세계의 고학력, 고기술·첨단기술 개발자 유입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정부가 과학 발전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며 “기술적으로 절대적 우위를 확보하는 산업을 육성하지 않으면 세계 경제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국가적 결단이 요구된다는 설명이다. 안 교수는 “민간 혁신이 둔화하고 대기업의 창업자 정신이 쇠퇴한 지금, 정부가 산업 전략의 키를 쥐고 장기 비전을 설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명순영·반진욱·조동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5호 (2025.04.16~2025.04.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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