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時論] ‘싱어게인’과 무명(無名) 당구선수들

[당구時論] ‘싱어게인’과 무명(無名) 당구선수들

최초입력 2022.05.03 16:04:52
“절망에서 희망찾는” 무명가수들의 간절한 무대
‘꿈을 쫒아 도전에 나선’ 무명 당구선수들
그 동안 흘린 땀과 노력에 ‘세상 밖으로’
새 출발선에 선 그들, 이젠 실력으로 입증해야
항상 간절했던 초심 잊지 않았으면

스타 선수들은 출전만 해도 인정받지만 무명선수들은 항상 최선을 다해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야 한다. 사진은 전국당구대회의 한 장면. (MK빌리어드뉴스 DB 사진)

오랜만에 콘서트를 다녀왔다. 보름전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싱어게인2 톱10콘서트’다. 대개 이런 자리는 톱스타들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김기태 신유미 서기 등 낯선 가수들이 주인공이었다. 그런 만큼 기성 가수들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풋풋함과 절실함까지 더해져 만족스런 무대였다.

이 공연을 보게된 것은 우연이었다. 지난 겨울 TV프로그램을 보고 흠뻑 빠져든게 시작이었다. JTBC ‘싱어게인2-무명가수전’이었다. 생판 모르는 가수들이 나오는데, 노래 한곡한곡을 절실하게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알고보니 무명가수들의 경연장이었다. 70여 팀이 출전해 각 단계마다 당락이 결정되는 피말리는 무대였던 것이다.

이날 공연은 그런과정을 거친 톱10들의 가수로서 첫 출발을 알리는 무대였다

‘싱어게인’을 보며 노래도 노래려니와 이들의 뒷이야기가 가슴에 와닿았다. 마지막 톱3 결정 날에는 실시간 문자투표를 3통이나 날리는 부산을 떨기도 했다. ‘싱어게인’은 평생 이름없는 가수로 살아온 그들이 세상에 자기를 알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이들의 실력을 비전문가 눈으로 가늠하긴 어렵다. 언더그라운드에서 10~20년 실전경험을 쌓은 ‘재야 고수’들이다.

올해 3위에 입상한 윤성은 여성으로선 드물게 ‘전형적인 하드록’ 가수다. 그 동안 크고작은 무대에서 1700여 차례 이상 섰던 실력파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절박함은 두말할 것도 없고.

보름전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싱어게인2 톱10 콘서트’는 무명에서 ‘세상밖’으로 나온 가수들의 첫 번째 무대였다. (MK빌리어드뉴스 DB 사진)

‘싱어게인’에 나온 무명 가수들의 사연은 비장해서 더 기억에 남는다. 지난해 1위 이승윤은 “실패한 가수로 기억되고 싶지 않아서” 나왔다고 했고, 짙은 허스키 목소리의 김기태(올해 1위)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싶다”며 도전장을 냈다. 오랜 무명생활에 이은 자전(自傳)적인 다짐이었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빼어난 실력에도 자신의 진면목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서운함과 반발심도 있었으리라.

뜬금없이 웬 ‘싱어게인’ 이야기냐고 할지 모른다. 당구계에도 가요계 못지않게 실력파 무명(無名)들이 많기 때문이다. 선수로서 첫발을 내디딘 신출내기에서 얼마 남지않은 도전 기회를 붙잡으려는 중년 선수들까지.

지난달 PBA드림투어(2부투어) 5차전 우승자는 50대 초반 김종완이다. ‘지천명’(知天命)이면 당구선수로서 적지않은 나이다. 언제까지 도전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죽어라 연습했다고 한다. 눈뜨면 연습장에 가고, 문닫을 때까지 혼자 당구만 쳤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172명중 1등을 차지, 1시즌만에 다시 1부투어로 돌아왔다.

그의 우승소감은 울림이 있었다.

“간절하게 연습했다. 드림투어로 강등되니 30년 당구인생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딱 1년만 해보고 안되면 당구를 그만두려고 했다.”

‘싱어게인’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했던 무명가수들의 절절한 소감과 결코 다르지 않다.

땀과 노력으로 새로운 출발선에 선 당구선수들. (왼쪽부터) 김종완 손준혁 임성균 김채연. (MK빌리어드뉴스 DB 및 PBA 제공 사진)

PBA왕중왕전(SK렌터카월드챔피언십)과 3쿠션월드컵에서도 ‘싱어게인’과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다. 우승상금 2억원 왕중왕전과 3쿠션월드컵(본선)은 고수들이 합을 겨루는 최고무대다. 왕중왕전은 PBA 선수 800여명(1부~3부)중 단, 32명만 선택받는 좁은 무대다. 이런 무대를 어렵게 통과한 무명선수가 있었으니. 그 중 한 명이 32명 중 맨꼴찌로 왕중왕전에 이름을 올린 임성균이다. 올해 스물다섯인 그는 지난 두 시즌 2부투어(드림투어)에서 뛴 ‘찐 무명’이다. 그러다 PBA투어 5차전 쿠드롱과의 8강전에서 숨은 실력을 발휘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고, 결국 왕중왕전 티켓까지 손에 쥐었다. 불과 1년 전 만해도 머릿 속에서나 그리던 일이 이뤄진 것이다.

3쿠션월드컵 무대에서는 ‘고교생 기대주’가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부천 상동고부설방통고 3학년 손준혁(19)이다. 그는 축구선수였지만 부상으로 그만두고 당구선수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당구입문 3년만에 첫 출전한 3쿠션월드컵에서 사고를 치며 당구계 주목을 받았다. 단번에 최종예선(Q)에 오른 것. 덕분에 든든한 후원사(중견기업 유니트론텍)도 생겨 당구에 더 전념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인천과 서울을 오가며 하루 10시간 넘게 맹연습했다고 한다. 그런 오기와 집념이 있었기에 당구 선수 3년만에 무명에서 ‘무서운 신예’로 성장한 것이다.

여자선수 중에서도 비상을 꿈꾸는 선수가 있다. 올해 양구 국토정중앙배에서 3쿠션 2위에 오른 김채연이다. 전국대회 두 번 출전만에 거둔 성적이다. 그는 고등학교까지 자퇴하며 당구에 승부를 걸었고, 하루 10시간 넘게 땀을 흘려왔다고 했다. 그 동안 남몰래 흘린 땀이 차츰 결과로 입증되고 있다. 아직 앳된 모습의 김채연은 신출내기 티를 벗고 보다 큰 꿈을 향하고 있다.

최근 PBA에선 새로운 1부투어 선수 18명이 탄생했다. 2부와 3부투어에서 올라온 선수들이라 대부분 무명출신이다. 특히 3부투어에선 등록선수 407명 중 단 3명만이 1부투어 선수가 됐다. 무려 135.6대1의 바늘구멍을 뚫은 셈이다. 1년 내내 피말리는 레이스 끝에 거둔 성과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지는 익히 짐작이 간다. 1부투어 티켓은 그런 노력에 대한 보상이다.

‘싱어게인’에서 한 가수는 “스타는 (무대에) 나오는걸로 끝나지만 무명가수는 항상 실력을 입증해야 한다”고 했다. 당구계의 무명선수라고 다르겠는가.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 하고, 삐끗하면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김종완 임성균 손준혁 김채연 등은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그리고 새로운 출발선상에 섰다. 이젠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이들에게 항상 간절했던 초심을 잊지말길 당부하고 싶다. 아울러 묵묵히 실력을 갈고닦는 전국의 수많은 무명당구선수들에게도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황국성 MK빌리어드뉴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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