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3.12 21:00:00
# 노(老)맨스가 필요할 땐?
‘시니어 놀이터’의 약자를 따서 2023년 3월 창업한 스타트업 ‘시놀’의 슬로건이다. 창업 8개월 만에 회원 수 2만명을 돌파했고 유료화에도 성공, 2024년 초에는 월매출액 1000만원을 넘겼다. 또다시 1년여가 지난 올해 3월 기준 시놀 회원 수는 9만명, 월매출도 600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렇게 뚜렷한 성장세를 보인 이유는 5070 이성 친구 매칭 서비스 ‘시럽’과 취미 모임 동호회 플랫폼 ‘시놀’이 시니어층에서 동시에 유행하면서다. 여기에 더해 최근 내놓은 AI 말벗 서비스 ‘79전화’ 역시 인기다. 언제든지 AI와 친한 친구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서비스다.
김민지 시놀 대표는 “말벗은 ‘김시연’과 ‘에이미(Amy)’ 2명 중 선택할 수 있다. 기존 타 서비스에서 자주 지적됐던 어색한 발음이나 일방적인 대화를 넘어 장기 기억을 보유한 김시연과 에이미가 자녀보다 살가운 말벗이 되어주고 있다”면서 “회원들 이야기를 기억하고 감정을 공감하며 일상의 소소한 대화부터 깊은 고민 상담까지 가능해 큰 인기”라고 자랑했다.
# 이촌역에서 5분 정도 걸었을까. 한 상가 건물 2층 문을 열자 딴 세상이 펼쳐진다. 아늑한 실내 인테리어에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특급 호텔에 들어갔을 때 맡을 수 있는 고급진 향도 느껴진다. 스타트업 지냄이 만든 액티브 시니어 특화 공간 ‘고요웰니스’다. 우선 매니저 안내를 받아 건강 상태부터 알아봤다. 체성분 상태를 알아보는 인바디는 기본. 여기에 더해 거북목·일자목이나 골반 틀어짐, 척추 측만 정도까지 3D 형태로 보여주는 ‘모티피지오’ 기기를 통해 평소 얼마나 등이 굽어 있는지까지 정확한 각도로 알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운동은 어떻게 해야 하고, 뭉친 근육이 있으니 어디를 어떻게 풀어줄지 등 다양한 설명을 듣는다. 운동과 마사지가 끝나면 ‘온열디톡스’룸에서 찜질로 마무리할 수 있다.
지냄 관계자는 “최근 고령층 출입을 거부하는 ‘노실버존(No Silver Zone)’이 헬스장 등 스포츠 시설을 중심으로 급증하고 있는데 오히려 액티브 시니어 특화 운동 공간, 맞춤형 건강관리 솔루션으로 차별화했더니 주중, 주말 예약 잡기가 빠듯할 정도”라며 “중장년층 고객이 건강관리, 운동, 휴식을 한곳에서 다 해결할 수 있게 설계했다는 점을 특히 좋아한다”고 말했다. 고요웰니스는 지난해 반포점, 은평점을 추가로 열었고 올해는 가맹점도 받을 정도로 성업 중이다.
지난해 말 대한민국은 초고령화 사회(노인 인구 20% 돌파)에 진입했다. 더불어 시니어 산업이 더욱 주목을 받는다. 업계 전문가들은 ‘물꼬만 트이면 폭발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시니어 산업 성장세 뚜렷
2030년 168조 시장 성장
급격한 고령화 속도는 시니어 시장에서는 ‘호재’다. 그만큼 수요가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0년 72조원 규모였던 국내 실버 산업 시장은 2030년 168조원으로 두 배 이상 커질 전망(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자료)이다.
새롭게 중장년층에 진입하는 세대의 씀씀이가 커질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학계와 각종 기관이 이들에게 ‘액티브 시니어, W(Wisdom·Wealth·Well-being)세대’ ‘GG(Grand Generation)세대’ 등 다양한 용어를 부여하며 연구하고 있다. 참고로 W세대란 자산과 소비 의욕을 갖춘 이들을, GG세대는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은퇴 후에도 왕성한 경제, 사회, 여가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1950~1971년생 시니어를 지칭한다. 이들은 이전 세대 대비 높은 구매력과 적극적 소비 성향을 보이고 있어 시장 성장을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로 ‘2023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신과 배우자를 위해 재산을 사용하겠다’는 비중은 24.2%로 조사됐다. 2011년 9% 대비 2.7배 높아진 수치로 ‘본인에게 쓰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강해졌음을 알 수 있다.
AI·IoT 등 기술 발전도 이 시장 성장세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이보람 서드에이지 대표는 “초고령 사회 진입으로 디지털과 첨단 기술을 활용한 요양·돌봄 서비스 기업이 급성장 중”이라며 “기술 혁신이 접목된 시니어 산업은 앞으로 한국 경제의 큰 축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떤 기업 뜨나
“유치원이 문을 닫고 노치원(노인+유치원, 데이케어센터)으로 전환되는 사례처럼 기존 산업이 시니어를 주요 소비층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많아질 것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의 진단이다. 일동후디스의 ‘하이뮨’이 누적 매출 3000억원을 넘긴 배경도 이와 맞닿아 있다. 서 교수는 “저출생으로 분유 수요가 줄어들자 타깃을 6070세대로 변경하고 트로트 스타를 모델로 기용해 성공했다”며 “한국 시니어 시장이 이제 개화하기 시작한 단계”라고 평가했다.
이런 식으로 시니어 산업은 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기회로 인식된다.
시니어 산업은 크게 ▲요양·돌봄·시니어 하우징 ▲여가·문화 ▲취업·커뮤니티 ▲케어푸드·에이지테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1. 시니어 하우징
주거·케어 결합으로 급부상
시니어 하우징은 초고령 사회 진입의 최대 수혜 산업으로 평가된다. 실버타운, 고령자 복지주택, 시니어 레지던스 등 고령층 맞춤 주거 공간을 포괄하는 이 시장은 정부의 정책 지원과 민간의 투자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해 7월 정부는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며 연간 3000가구의 고령자 복지주택 공급, 중산층·유주택 고령층을 위한 실버스테이 시범 사업 등을 추진키로 했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 시니어 레지던스 세대 비중은 0.12%로, 일본(2%)과 미국(4.8%)에 비해 턱없이 낮다. 그러나 고령화 속도를 고려하면 향후 10년 내 급성장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업계는 공급과 수요가 동시에 확대되며 2030년까지 연평균 15%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런 성장세를 포착해 기존 대형 건설사와 호텔, 보험사는 물론 최근에는 전문 케어 기업까지 이 시장에 뛰어들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KB손해보험 산하 KB골든라이프케어가 업계 최초로 실버타운 사업에 진출해 지금은 대기자가 넘쳐날 정도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스타트업 역시 이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외국계 자본이 국내 스타트업과 손잡고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인베스코는 ‘케어닥’과 손잡고 대규모 펀드를 조성해 수도권 내 50개 시니어 주택 건설에 나섰다. 미국 TWG그룹도 ‘케어링’과 협력하며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이들 외국인 투자자는 한국 시니어의 높은 구매력과 도심형 고급 주거 수요에 주목한다고 밝혔다.
종전 주택의 리모델링 시장도 덩달아 성장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근육이 약해지는 시니어 특성상 욕실 개조, 주택 리모델링, 실버타운, 세컨하우스 등 거주 공간을 시니어에 맞게 조정하는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 여가·문화
경로당 대신 데이팅 앱
6시간 51분.
노년기 1일 평균 여가 시간(2023년 노인실태조사, 보건복지부)이다. 성인 여가 시간 4시간 47분 대비 훨씬 많다. 통상 이전 세대는 경로당, 복지관에서 여가 시간을 소비해왔다. 최근 시니어층은 다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의 여가 활동 참여율이 매년 1%씩 증가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커뮤니티 활동 참여가 17.2%를 차지한다. 그만큼 IT 서비스에 밝다는 의미다.
취향도 뚜렷하다. ‘2023 노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54.2%의 노인이 친목 단체 활동을, 6.6%가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었다. 특히 동호회 활동은 2011년 3.8%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가 노후에 가장 하고 싶은 활동 1위로 ‘관광(65.8%)’이 꼽혔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이런 통계를 바탕으로 여가 문화 관련 서비스 업체가 속속 등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앞서 소개한 시놀 외에도 여행비서가 동행하고 리무진 버스를 활용한 여행 상품 플랫폼으로 특화한 ‘아너드투어(법인명 포페런츠)’, 미술·와인 클래스 등 취미 커뮤니티로 차별화한 ‘오뉴’, 당근처럼 지역 동호회 문화를 구축하며 시니어의 사회적 교류를 지원하는 ‘오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포페런츠의 아너드투어는 승무원 출신 여행비서가 동행해 고객이 최대한 편리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여행 전반에서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2023년 말 본격 서비스를 선보인 지 2년 만에 2만명이 이용할 정도로 성업 중이다. 이런 성장세에 주목해 MYSC, 더웰스, 스트롱벤처스 등으로부터 25억원(누적 기준)의 투자를 유치했다.
기존 업체들도 이런 시장에 맞는 특화 상품을 내놓고 있다. 여행 업계는 맞춤형 상품 개발에 열을 올린다. 인터파크투어는 ‘베트남 보름살기’, 교원투어는 ‘제천 웰니스 여행’ 등 테마형 상품 등이 대표적인 예다.
3. 취업·커뮤니티
스타트업에 취업 ‘어테일워크’ 각광
여전히 사회적 교류와 일자리에 대한 욕구가 큰 중장년층을 겨냥한 서비스도 각광받는다. 대한상공회의소 보고서에 따르면 GG세대 취업 시장은 양극화 속에서도 매년 10% 이상 성장세가 기대된다.
이런 트렌드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사례가 있다. 시니어와 스타트업을 연결해 실무 경험이 풍부한 시니어들이 스타트업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스타트업 ‘어테일워크’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에프오씨씨’ 역시 비슷한 경우다. 이 플랫폼은 시니어들이 여행 가이드 역할을 하면서 여행과 동시에 소득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해외여행 경험이 풍부한 시니어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이드를 맡을 수 있도록 교육, 연계 시스템을 제공해 높은 만족도를 얻고 있다.
김석집 네모파트너즈POC 대표는 “기업들이 시니어를 위한 파트타임 컨설팅, 멘토링, 강의 등의 직군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만큼 이와 관련한 플랫폼이 나올 가능성도 높다”고 전망했다.
4. 케어푸드·에이지테크 ‘쑥쑥’
주행 보조 로봇 100여대 팔려
에이지테크(AgeTech)?
시니어와 그들을 돌보는 인력을 위해 필요한 기술, 서비스를 뜻한다. AI와 IT가 발달하면서 나온 중장년층 대상 다양한 테크 제품을 가리킨다.
이 중 대중화된 서비스로는 AI 기반 돌봄 로봇이 있다. AI 기술이 적용된 일종의 인형이다. 돌봄 로봇은 노인과 하루 종일 대화하며 건강관리, 치매예방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스페인 MWC에서 주목받은 한국산 AI 케어 로봇 ‘효돌’, 미스터마인드의 ‘초롱’ 등은 전국 지자체와 손잡고 노인 가정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이들 로봇은 도입 가정의 70% 이상이 매일 사용할 정도로 인기다.
중장년층 보행 보조를 위해 입을 수 있는(웨어러블) 로봇 시장도 커지고 있다. 상장사 엔젤로보틱스의 재활 치료용 로봇 ‘M20’은 보행 재활 치료 목적으로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국내 90여개 의료기관에 100대 이상 보급됐다. 돌봄 로봇이 포함된 서비스 로봇 시장 규모는 2021년 362억달러(약 46조원)에서 2026년 1033억달러(약 129조원)로 훌쩍 커질 전망이다.
고령 친화 식품, 메디푸드 시장 역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매일유업 ‘셀렉스’는 단백질 보충이 필요한 중장년층을 겨냥해 2018년 출시된 후 1년 만에 누적 매출 200억원을 돌파하며 시장에 안착했다. CJ프레시웨이는 ‘헬씨누리’ 브랜드를 통해 케어푸드 시장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최근에는 연화식(부드러운 식감의 음식)과 저염식, 고단백 식단을 중심으로 제품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 현대그린푸드는 케어푸드 브랜드 ‘그리팅’을 운영하며 장수마을 식단, 지중해 식단 등을 연구해 시니어 맞춤형 건강식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케어푸드를 주력으로 하는 ‘복지유니온’은 전년 대비 120% 이상의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IT, 에이지테크 분야에서는 캐어유가 발군이다. 주요 상품은 중장년층 전용 키오스크와 디지털 치매 예방용 모바일 게임이다. 주력상품인 ‘엔브레인 키오스크’는 전국 600여 곳에 설치돼 있다. 특히 노인 복지시설과 공공기관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정신건강 테스트’와 ‘엔브레인 게임’ 앱 역시 시니어층에서는 큰 인기를 끌며 4만 건 이상 다운로드를 기록했다.또한 ‘디지털 문해 교육사’와 ‘엔브레인 활용 여가놀이 지도사’ 과정을 통해 300여 명의 강사를 배출, 교육 인프라를 확대했다.
신준영 캐어유 대표는 “시니어 산업 활성화를 위한 에이지테크 플랫폼으로 도약하고자 한다”며 “경기도 지자체와 협력해 사회적 경제 관련 창업 교육도 꾸준히 진행하며 중장기 비전을 실현 중”이라고 소개했다.
시니어 산업 잘 성장하려면
케어 넘어 라이프스타일 세분화해야
국내 시니어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더욱 세밀한 접근과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영란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AI, 로봇, 바이오 등 최첨단 기술 접목이 필수”라며 “정부 각 부처 산하 연구기관과 공공기관에 산재된 R&D 기능을 고령 친화 산업 관점에서 통합 조정하는 컨트롤타워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시니어’란 용어부터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용구 교수는 “해외에서는 실버, 시니어란 표현을 쓴 제품이 나오자마자 외면받았다. 65세를 타깃으로 하려면 10세 어린 55세 정도를 상정하고 제품을 만들어야 승산이 있다. 인지연령(perceived age)과 실제연령(real age) 간 인식 차가 있기 때문에 이를 감안한 제품과 서비스 기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두희 고려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현재 60대는 역대 시니어 중 자산도 가장 많고 교육도 가장 많이 받았으며 무엇보다 신체적으로도 젊고 건강하다. 이들을 케어 대상으로 보기보다 이들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세분화해 공략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정책적으로 노인 연령 기준을 70세로 올리는 것이 시니어 산업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김석집 대표는 “이렇게 되면 66~70세 경제활동 참여 인구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소비, 사회 활동이 활성화돼 관련 산업이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지유진 인턴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0호 (2025.03.06~2025.03.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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