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 포켓선수’ 양혜현, 150㎝큐 끝에 희망을 쏘다
작년 구리세계포켓대회서 세계3위 꺾고 생애 첫 32강 진출
왼쪽 귀 안들리는 세계 챔피언 쉐인 반 보닝이 롤모델
“답답한 제 말투 다 받아주는 박은지 언니 고마워요”
MK빌리어드뉴스가 국내랭킹 12위 포켓볼 선수 양혜현(사진)을 만났다. 청각장애를 지닌 양혜현은 "왼쪽귀가 들리지 않음에도 세계 챔피언이 된 미국의 쉐인 반 보닝이 롤 모델"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여기 한국에 ‘제2의 쉐인 반 보닝’을 꿈꾸는 선수가 있다. ‘청각장애 2급’ 여자 포켓볼 선수 양혜현(22‧충남연맹)이다.
양혜현은 중학교 3학년때인 2011년 선수등록 후, 전국대회 8강권에 꾸준히 이름을 올린 기대주다. 지난해 5월 ‘풀투어 1차’ 3위로 전국대회 첫 입상에 성공하더니, 10월 ‘구리세계포켓9볼챔피언십’에선 생애 첫 세계대회 32강 진출을 이루어냈다.
양혜현의 현재 랭킹(한국여자포켓볼)은 12위. 지난 10일, 경기도 성남시 한 당구클럽에서 만난 그는 이를 “아쉬운 순위”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보다 더 큰 선수가 돼 저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회가 없는 기간이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저희 집인 경기도 김포에서 성남, 일산 등 당구클럽으로 출퇴근하며 연습 중이다. 대회가 없는 시기라 가능한 일이다. 시즌 중엔 충남당구연맹 훈련장(충남 서천군 장항읍)이 주 연습장이다. 오전 9~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식사시간을 제외하곤 하루종일 공만 친다. 하하.
▲충남에서 홀로 산지 3년째라고.
=2016년, 충남도청 당구실업팀이 구성된 충남연맹에서 제 가능성을 보고 거둬주셨다. 그 뒤로 쭉 혼자 살고 있다. 2년째 접어들 때까진 외롭고 힘들었지만, 3년 가까이 되니 익숙해지더라. 김웅대 감독님(포켓볼‧국내 6위), 서현민 선배님(3쿠션‧국내 9위), 용이 오빠(황 용‧포켓 4위) 등 쟁쟁한 선배님들이 저희 팀인데, 저 혼자 여자 선수라고 도움을 많이 주신다.
▲부모님이 걱정 많으실 것 같은데.
=지금도 그러신다. 특히 제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딸이니 얼마나 걱정되시겠나. 스무살 때까진 아버지가 저를 대회장에 데려다 주시곤 했다. 하지만 최근엔 제가 많이 변했다. 대회장도 혼자 다닌지 2년 넘었고, 부모님이 걱정하시면 위로해 드리는 딸로 성장했다. 하하.
샷 시범을 보이고 있는 양혜현.=청각장애 2급이다. 어릴 때 만성중이염을 앓은 후 양쪽 귀 청력이 약하다. 평소엔 보청기를 끼면 웬만한 소리는 다 들리지만, 피곤하면 청력이 함께 떨어진다. 장거리 비행 시 기압도 문제가 된다. 외국 대회를 많이 못나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편한 점은 없는지.
=아주 작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걸 제외하면 큰 불편은 없다. 오히려 장점이 될 때도 있다. 주변의 불필요한 소리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고난도의 집중력을 요하고, 미세한 두께를 봐야하는 당구종목 특성 때문이다. 아주 드물지만 잘 안 들린다고 무시당한 경험도 있다. 안 좋은 소리를 면전에서 하거나 일부러 말을 안 거는 등 말이다. 그럴 때마다 더욱 이를 악문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고….
▲그래서 그런지 동료 선수들과의 친분이 제한적이라는 말도 있었다.
=하하. 예전엔 그런 면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특히 동갑내기 혜주(진혜주 선수), 동생 우진이(이우진 선수) 등 세계대회 함께 다닌 선수들과 두루 친하다. 위로는 은지 언니(박은지 선수). 제가 말하는게 답답할텐데, 티 한번 안내고 다 받아주는 정말 고마운 언니다.
▲친해지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
=대전당구연맹 유승우 선배님. 어릴 때부터 존경해온 선수다. 동영상을 찾아보고, 대회장에서 몰래 플레이하는 걸 훔쳐보기도 했다. 제 기준에선 공격과 수비가 완벽하다. 그런데 아직 인사 한번 한적 없다. 하하.
▲지난해 랭킹 12위, 만족할만한 성적인가.
=(단호하게)아니다. 시즌 내내 톱10 유지하다, 12월 ‘강진청자배’ 성적이 부진해 9위에서 순위가 3계단이나 하락했다. 아쉽다. 특히 ‘강진청자배’ 포켓10볼 8강전 윤미 언니(임윤미 선수‧국내 2위)와의 대결이 뇌리에 남는다. 그간 부족했던 수비력이 제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지금 연습장에서 수비를 연마하고 있다.
▲작년 ‘구리세계포켓9볼챔피언십’ 32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13일, 양혜현은 ‘구리세계포켓9볼챔피언십’ 스테이지2(2차 예선) 48강에서 2013 월드게임 금메달리스트 대만의 저우제위(현 세계 3위)를 접전 끝에 세트스코어 7:6으로 꺾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이는 당시 국내 포켓볼 관계자들은 물론 대만, 중국 등 선수들 사이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지금까지 세계대회 스테이지2는 고사하고 스테이지1(1차 예선) 통과도 없었다. 구리 대회는 우리나라에서 열린 세계대회라 마음 편하게 임했던 것 같다. 대신 이후 청력이 떨어지기 시작해 고생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당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쭉 감내해 왔기 때문에 심적으로 힘들진 않다.
양혜현은 인터뷰에서 "청각장애가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남들보다 공이 더 집중할 수 있어 장점이 된다"고 말했다. =중2때 아버지와 함께 당구클럽에 다니다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1년 뒤엔 선수등록도 했다. 그때부터 포켓볼은 최고의 취미이자 직업이 됐다. 가장 큰 희열은 어려운 배치의 볼을 포팅(볼을 포켓에 넣는 것)했을 때. 제가 친 공이 들어가는 걸 보면 가슴 한켠에 쌓인 스트레스가 싹 해소된다.
▲큐를 잡게해 준 부모님께 한마디 한다면.
=몇년전까지 사실 부모님의 관심이 부담이었다. 좋지않은 성적을 내면 크게 실망하실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제가 어디에서 뭘 하던 든든한 응원군이셨다. 이를 깨달은 게 불과 1~2년 전이다. 엄마, 아빠 감사하고 사랑해요.
▲앞으로 어떤 선수가 되고 싶나.
=왼쪽 귀가 들리지 않음에도 세계챔피언이 된 쉐인 반 보닝(미국)이 제 롤모델이다. 그 선수처럼 몸이 조금 불편한 분들에게 희망이 되는 당구선수가 되고 싶다. 지금 성적으론 다소 부족하다. 하지만 급하게 성장하기보단 작은 보폭으로 전진하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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