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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빠이’이홍기 “나이 50넘어 당구실력 늘더라”

국토정중앙배 준우승·실크로드배 우승 등 ‘상승세’
현재 국내3쿠션 랭킹 12위…“톱 한번 찍어야죠”
94년 한일당구최강전서 ‘日 대부’ 고바야시 꺾어
아내 암투병에 2009년 당구계 떠났다 2014년 복귀

  • 기사입력:2018.07.22 08:00:02
  • 최종수정:2018.07.22 11: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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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당구계 "뽀빠이" 이홍기(서울연맹)의 최근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전국랭킹 12위, 소속인 서울당구연맹 랭킹 2위를 달리고 있다.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런 그와 최근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홍기는 "원영배 선배님을 만나 50대에 당구에 새롭게 눈을 떴고, 국내랭킹 1위에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MK빌리어드뉴스 이상연 기자] 당구계 ‘뽀빠이’ 이홍기(서울연맹‧51)의 최근 기세가 심상치 않다.

이홍기는 올해 6월 ‘양구 국토정중앙배’ 개인전 및 복식전(김무순과 한팀) 준우승, 작년 8월 ‘춘천 대한당구연맹회장배’ 8강 등 성적을 올리며 현재 국내 남자3쿠션 랭킹 12위에 올라 있다. 또한 최근 서울당구연맹이 개최한 ‘제1회 실크로드배’(7월) ‘제7회 하림배’(6월)서도 각각 우승과 준우승을 거두며 서울연맹 랭킹 2위를 기록중이다. 1위는 조재호.

이처럼 상승세인 이홍기는 “최근의 성적이 감사하다”고 했다.

지난 1991년 선수로 데뷔한 이홍기는 94년 한일당구최강전 우승, 95년 SBS 당구최강전 3차 우승, 99년 세계팀3쿠션선수권 국가대표 등으로 활약하며 국내 정상급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지난 2009년, 그는 아내인 권미숙 씨가 암 판정을 받으며 잠시 큐를 내려놓아야 했다. 천만다행으로 아내의 병세는 점차 호전되었고, 이홍기는 당구계를 떠난지 5년여만인 2014년, 복귀했다.

선수복귀후 “당구열정을 새롭게 불태우고 있다”는 이홍기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전국대회와 서울당구연맹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상승세의 이유를 설명한다면.

=원영배(64) 선배님 덕분이다. 그분이 운영하는 클럽(경기도 안산시 훼밀리당구클럽)에서 선배님에게 공을 배우고 있다. 올해로 3년째다. 선배님은 젊었을 때 기차사고로 목발을 짚고 다니시지만, 당구계에선 실력은 물론 당구이론에 관한 지식이 해박하기로 유명한 분이다. 저를 비롯해 강동궁, 스롱 피아비 등 현재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그분에게 많은 조언을 들었다.

▲원영배 씨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지도받았나.

=1991년 선수 데뷔때부터 지금까지 쭉 ‘뽀빠이는 난구는 잘 푸는데, 쉬운 공은 잘 빠뜨린다’란 말을 수없이 들었다. 선배님께 그 부분을 집중강습 받았다. 그 때문에 예전과 같은 난구풀이 감각은 유지된 상태에서 ‘길공’(쉬운 배치의 볼) 실수가 줄어드니 성적이 날 수밖에.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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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13년만에 전국대회 결승에 올랐네요. 그런데 우승을 못해 아쉽습니다" 지난 6월, "양구 국토정중앙배" 결승에 오른 이홍기의 소감이다. 서현민과 대결한 결승전에서 이홍기는 28:40으로 뒤진채 맞이한 마지막 이닝에서 하이런 10점을 뽑았음에도 불구하고, 11점째 득점을 위한 샷이 쉬운 배치임에도 빗나가면서 우승을 다음으로 미루어야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아쉬움이 커 자다가도 생각 날 정도였다"고 말했다. 개인전 결승전 직후 이홍기가 은메달을 목에 걸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달 ‘양구 국토정중앙배’에서 2005년 ‘SBS 한국당구최강자전’ 우승 이후 무려 13년만에 개인전 결승에 올랐다. 하지만 막판 하이런 10점에도 불구, 아쉽게 2점차로 패했다.(38:40 서현민 승) 당시 무척 아쉬워했는데.

=38점 이후 뒤돌려치기 좋은 배치가 떴다. 그걸 놓쳤다. 그날(6월 4일) 오전 11시에 4강 끝나고, 오후 5시에 결승전이 열린 탓인지 몸이 다소 늦게 풀렸다. 저는 선수들 중에서도 승부욕이 강하기로 유명한 편이다. 아쉽게 당한 패배가 자꾸 생각났다. 심지어 집에 가서 자려고 누웠을 때도.

▲최근 상승세에 아내도 크게 기뻐한다고.

=물론이다. 아내도 선수 출신이기에 지금 제 성적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아내가 암 판정을 받아 2009년 말부터 5년여간 당구판을 떠났다. 그 사이에 개인적인 여러 문제들도 생겨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하늘이 도왔는지 아내가 점차 회복세를 보였고, 2014년부턴 통원치료를 받게 됐다. 그 덕분에 선수로 다시 복귀할 수 있었다. 감사하다.

(편집자주=이홍기의 아내 권미숙씨는 한국 여자포켓볼계의 ‘대들보’로 불리던 선수였다. 이홍기-권미숙 부부는 2004년 10월 김영재 전 대한당구연맹 회장의 주례로 백년가약을 맺었다)

▲당구인들에게 ‘뽀빠이 이홍기’를 언급하면 대다수가 1994년 ‘한일당구 최강전’을 이야기한다.

=제 인생경기를 기억하나 보다. 결승전에서 일본의 아라이 타치오를 세트스코어 2:0으로 꺾고 우승했지만, 사람들에겐 아마 4강전 고바야시 노부야끼(일본)와의 경기가 더욱 인상적으로 기억될 것이다.

(당시 한일당구최강전엔 한국과 일본 당구선수 16명씩 32명이 참가했는데, 일본당구의 대부인 고바야시 노부야끼도 출전했다. 고바야시는 ‘당구 전설’ 레이몬드 클루망과 함께 70~80년대 세계선수권(우승 2회, 준우승 3회)을 휩쓴 세계적인 선수였다. 이 선수를 당시 28세 이홍기가 4강에서 세트스코어 2:1로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한일당구 관계자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고바야시와 서로 한 세트를 가져간 상황에서 3세트에 들어서니, 고바야시가 수비를 하더라. 뱅크샷으로만 득점이 가능한 난구를 계속 주더라. 그런데 제 특기가 뱅크샷이다. 수비를 하는 족족 풀어버리니 고바야시가 크게 당황했고, 이는 승리로 이어졌다. 일본당구의 중심같은 선수가 무너지니 결승전(아라이 타치오)은 쉽게 끝났다. 한국인 특유의 역사관 때문인지 일본선수만 만나면 승부욕이 불타더라. 하하.

▲그 외에도 입상이력이 수없이 많은데, ‘강한 승부욕’이 이러한 성적들의 큰 원동력이 됐다고.

(이홍기의 주요 이력=91~92년 서울선수권대회 4~5회 우승, 94년 한일당구최강전 우승, 99 독일 세계팀3쿠션선수권 출전, 99년 재팬컵 5위, 2000년 제1회 서울선수권대회 우승, 2001년 SBS배 한국당구최강전 준우승 및 연말 왕중왕전 5위, 2005년 SBS 한국당구최강전 3차 우승 등)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젊었을 때 승부욕은 정말 대단했다. 마치 전장에 들어가기 전 무사들이 전의를 불태우듯 그런 정신으로 경기에 임했다. 기싸움에도 안지려고 했다. 상대가 수비로 나를 힘들게 하면 똑같이 되갚아주고, 득점으로 승부를 보려하면 저도 맞장구쳐 줬다. 공도 강하게 쳐 선배들이 “장작 팬다”고 했다. 당구는 멘탈게임이라고 하지 않나. 그래서 선수에겐 이런 기싸움과 관련한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승부욕이 많이 줄었고, 나이가 들어 해탈이 된 상태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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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이홍기는 지난 6월 "양구 국토정중앙배" 개인전에 이어 복식전에서도 선배 김무순(서울연맹)과 함께 결승에 오르는 저력을 보였다. 복식전 결승전에서 작전회의 중인 이홍기(오른쪽)와 김무순.
▲‘뽀빠이’란 별명도 승부욕 때문에 생긴 것인가.

=그런건 아니다. 중·고교 시절 아이스하키 선수였는데, 그때 선배들이 ‘힘이 좋다’며 뽀빠이로 불리던게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단순한 이유다. 하하.

▲승부욕이 줄었다고 하지만 선수로서 성적에 대한 갈망은 그대로일 것 같은데.

=당연하다. 3쿠션월드컵 등 세계대회야 여건이 안되니. 한해를 다 투자해도 성적내기 힘든게 그 세계 아닌가. 그래서 국내랭킹 톱에 한번 올라보려고 한다. 나이 50 넘어 기량이 업그레이드된거 같다. 불가능은 없다. 현재 12위인데 자신있다. [sylee@mk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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