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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U+컵우승]자네티 “난 당구선수, 예술가, 예능인”

“우승, 특별한 경험…상금 8000만원 대부분 자녀 교육비에”
“홍진표 기본기 좋은 선수…4강 쿠드롱 경기가 가장 쉬워”
“내 실력의 비밀은 ‘연습노트’…당구선수도 쇼맨십 있어야”

  • 기사입력:2017.09.10 08:59:01
  • 최종수정:2017.09.10 09: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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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우사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인상과 몸짓. 이탈리아에서 온 ‘당구판의 야수’ 마르코 자네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그가 ‘2017 LG U+컵 3쿠션 마스터스’ 정상에 올랐다. 경기마다 눈에 띄는 행동들을 보였던 그였기에, 결승전 승리 후 화려한 세리머니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큐를 가슴에 품고 관객들을 향해 90도로 꾸벅 인사할 뿐이었다. 우승직후 선수대기실에서 만난 그는 위풍당당한 자세로 기자를 맞이했다. 대신 환한 미소로 “어서 자리에 앉으라”며 배려하는 매너를 보였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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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LGU+컵" 첫 외국인 우승자가 된 마르코 자네티가 우승직후 MK빌리어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9월말 열리는 "청주직지 월드컵"에 대한 각오를 밝히며 특유의 강렬한 인상과 제스쳐를 보이고 있다.
▲축하한다. ‘LGU+컵’ 첫 외국인 우승인데, 소감은.

=정말 날아날 것처럼 기쁜 기분이다. 내 인생에서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이 대회에 초대해 준 관계자들, 대회를 열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

▲상금 8000만원, 당구선수에게 그 의미가 클 것 같다.

=(우승 트로피를 만지며)물론이다. 역대 최고 상금규모의 3쿠션대회 아닌가. 그전엔 2013년까지 6년간 프랑스에서 열렸던 ‘아지피(AGIPI) 토너먼트’가 2만5000유로(약 4000만원)로 역대 최고 상금이었다. 그보다 두 배 더 큰 상금규모 대회를 세계 톱랭커들과 겨뤄 우승했다는 데 만족한다. 이 상금은 자녀 교육비로 대부분 사용될 예정이다. 하하.

▲이탈리아의 당구 인기는 어떤가.

=3쿠션이 플레이하기 어려운 종목이라 솔직히 인기는 좀 없다. 또한 나는 이탈리아의 유일한 당구 홍보대사다. 올해 대통령에게 그간의 업적 등을 기리는 표창도 받았다.

▲결승을 되돌아보겠다. 결승상대 홍진표는 전에도 맞붙은 적 있다고.

=2015년 12월, 후루가다월드컵에서다. 당시 내 세계랭킹은 11위로, 시드권이 나오는 12위 내 순위 유지를 위해선 꼭 그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했다. 그때 16강에서 홍진표를 만났고, 이겼다. 결과론적이지만, 그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후 결승까지 올랐고, 랭킹포인트 54점을 챙겨 세계랭킹 12위권 순위를 지킬 수 있었다.

▲당시 홍진표와 지금 홍진표를 비교한다면.

=개인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홍진표는 다양한 스타일의 기술을 구사하는 선수는 아니다. 대신 그는 기본기가 굉장히 잘 잡혀진 선수다. 그 기본기를 바탕으로 정확하고 힘 있게 샷을 구사하는 선수였다. 이번 결승전에선 이런 그의 장점을 잘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솔직히 그의 다른 경기들은 내 경기에 집중하느라 보지 못해 그를 판단하기엔 무리다. 하하.

▲4강 쿠드롱, 8강 야스퍼스 중 어떤 상대가 더 힘들었나.

=(질문 끝나자마자)딕 야스퍼스. 사실 쿠드롱과의 경기가 가장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초반에 점수를 많이 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쉬운 승리였다.

자네티는 이번 대회 D조 마지막 경기에서 야스퍼스에게 2점차(40:38)로 졌지만, 8강에선 애버리지 2.857을 올리며 승리했다. 쿠드롱과의 4강전은 박빙의 접전이 예상됐지만, 하이런 18점(브롬달과 대회 타이기록)이 폭발하며 40:19로 압승했다.

▲하이런 18점, 대회 총 애버리지 2.736 등 쾌조의 컨디션을 보였다.

=하이런 18점은 알고 있었지만, 애버리지 기록은 몰랐다. 하하. 경기에 집중하다보면 기록을 신경 쓸 시간이 없다.

▲이번 대회 본인의 경기력을 자평한다면.

=대부분의 대회에선 내 능력에 60~70%만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대회는 작은 실수들을 제외하곤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완벽한 모습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내가 관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목표치가 100%라면 이번 대회에선 그 목표를 95% 달성했다. 다른 대회들이 이번처럼 만족스럽지 못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현재보다 항상 높은 수준을 추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당구계 야수’의 연습 스타일이 궁금하다.

=절대 클럽에 가지 않고, 집에 놓은 테이블에서 혼자 연습한다. 컨디션이 좋을 땐 2시간이면 충분한데,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7~8시간까지 공을 친다. (손목을 가리키며)그런데 난 시계를 보지 않는다. 시간을 정해놓고 연습하지 않는다. 양(Quantity)보다 질(Quality)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승을 하더라도 내 경기력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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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기자에게 보여준 "연습노트"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하자 급하게 숨기려고 하는 자네티.
연습 스타일을 설명하던 ‘야수’는 기자에게 “마이 탑 시크릿”이라며 영어가 빼곡히 적힌 종이들을 보여줬다. 연습노트였다. 자네티는 매 연습마다 자신의 샷을 분석하고, 전 경기들을 복기한다고 했다. 평소 당구인들 사이에서 성격 까칠한 선수로 소문났던 그였다. 그러던 자네티가 요청하지도 않은 ‘비밀’을 공개한 것이다. 대한당구연맹 관계자는 “전엔 이런 모습을 본 적 없다”며 “오늘 우승이 크게 기뻤나 보다”고 웃었다 .

▲올해 55세(1962년생), 아직도 톱클래스 선수다.

=연습하다 보면 나만 알 수 있는 ‘새로운 것’(New thing)을 찾아낸다. 이를 다음 대회에 바로 적용해본다. 30년 넘게 해온 일이다. 그래서 내 기량은 아직도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언젠간 그 곡선이 아래로 꺾일 수도 있다. 나이에서 오는 문제들은 전부 눈에서 발생한다. 눈이 좋지 않아 항상 렌즈를 착용하고 경기를 뛰는데, 조명시설이 좋지 않으면 정교한 샷을 날리기 힘들다. 물론 이번 대회에도 렌즈를 착용했고, 다행히 조명시설이 훌륭해 좋은 성적이 나왔다. 하하.

▲‘쇼맨십’이 대단하다. 경기 전후 인사할 때 큐를 가슴에 대는 건 특별한 의미가 있나.

=‘나는 심장(마음)을 담아 플레이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관객들을 존중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자네티는 이번 대회에서 경기마다 다양한 쇼맨십을 펼쳤다. 공이 아슬아슬하게 빗나가면 몸을 꼬아가며 아쉬워했고, 경기에서 승리하면 큐를 하늘로 던지는 등 행동을 보였다. 물론 이는 관객들의 웃음과 환호, 우레와 같은 박수를 이끌어냈다.

▲선수들이 그 ‘쇼맨십’에 힘들어하는 걸 아는지.

=(상기된 말투로)내가 그들을 괴롭혔나. 각자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지 않나. 그것으로 선수를 평가하지 않았으면 한다. 인기 스포츠 종목이 왜 인기가 있겠나. 선수의 감정을 관객들이 공감하는데 그 이유가 있지 않겠나. 당구는 왜 항상 딱딱하게 굳어 있어야 하나. 우리 당구 선수들도 그 감정을 관객들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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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이번 대회 다양한 "쇼맨십"으로 많은 팬들이 생겼다고 하자 흐뭇하게 웃고 있는 자네티.
▲하지만 그 ‘쇼맨십’ 덕분에 한국에 당신 팬이 많이 생겼다.

=(놀라며)그런가. 전혀 몰랐다.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라 매우 기쁘다. 그렇다면 좋은 일이다. 나는 나를 이렇게 설명한다. 당구선수이자, 예술가이며, 예능인. 팬이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반갑다. 내가 잘 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9월말 ‘청주직지 월드컵’이 열린다. 현재 월드컵에서 세 번 우승했는데.

=진지하게 약속하겠다. ‘LGU+컵’ 우승 기운을 청주까지 가져가 네 번째 우승컵을 들 것이다. 하하.

[MK빌리어드뉴스 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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