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경률이 월드컵결승 마지막 샷 성공때 소름이…”
[당구인터뷰] 김정규(하)“경률이 많이 대들고 따랐던 후배”
2010광저우AG 국가대표 코치로…영상훈련 도입
“밤새 9시간 영상보며 (강)동궁이 미스샷 바로잡아”
한국선수들 체력훈련 소홀…기본기 더 가다듬어야
MK빌리어드뉴스가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3쿠션 국가대표 코치로 활약한 김정규 "김정규당구스쿨" 원장을 만나 30년 넘는 그의 당구인생을 들었다. 선수로 활동하던 당시의 김정규 원장. (김정규 원장 제공)1980~90년대, 고 이상천에 버금가는 선수로 맹위를 떨치던 그는 3쿠션 전국당구대회 최다 우승자(비공인), 1998 방콕아시안게임 동메달 등 선수로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당구대표팀 코치로 활약하며 비디오 분석법, 멘탈관리, 선수관리 등 당시 당구계로선 생소한 코칭법을 처음 도입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국당구사에 있어서 선수, 지도자로 적잖은 영향을 끼친 김정규 ‘김정규당구스쿨’ 원장을 지난 7일, 그가 운영하는 아카데미(서울 송파구)에서 만났다.
이날 그는 “당구선수가 ‘놈팽이’ 취급받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젠 언론에서 당구를 주목하는 시대가 됐다. (인터뷰를 위해)예정돼 있던 개인일정도 취소했다”며 기자의 방문을 크게 환영했다. 30년 넘는 그의 당구인생과 철학을 상-하로 나눠 소개한다.
→(상)에서 계속
김정규 원장은 고 김경률과의 일화들을 말하며 "가장 잘 따랐고, 동시에 가장 대립이 많았던 선수"라고 기억했다. 김 원장과 고 김경률(왼쪽 두 번째), 조재호(오른쪽 두 번째) 등이 함께 담긴 사진.(김정규 원장 제공) 2009년, 김정규 원장은 당시 김용철 대한당구연맹 전무(현 DS빌리어즈 전무)에게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당구 국가대표 코치직을 제안 받는다. 고민하던 그에게 김용철 전 전무는 “형님 아니면 할 사람이 없잖아요?”라고 반문했다.
“그에 앞서 멘탈관리 등을 공부하며 지도자의 길을 염두하고 있었고, 이를 실전에서 연구해보는 게 좋겠다 싶어 코치직을 받아들었죠.”
김 원장은 당시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선수가 있다. 고 김경률이다. 함께 대표팀에 있던 최성원, 강동궁보다 그를 무척 따랐단다. 반면 가장 의견대립이 많았던 선수도 김경률이다.
“(김경률은)전지훈련 가는걸 그렇게 싫어했어요. 며칠만 연습을 못해도 불안한 선수였으니, 비행기 타는 시간, 시차 적응에 걸리는 그 시간조차 아까운 거예요. (2010년)‘터키 안탈리아 월드컵’ 가기 전에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반강제로 독일 클럽을 잡아 훈련하게 하고, 터키로 넘어갔죠.”
전지훈련의 성과는? ‘한국인 최초 세계3쿠션월드컵 우승’을 낳았다. 당시 현장에서 이를 지켜본 김 원장은 고 김경률의 우승 당시 기분을 상세히 기억한다.
“경률이의 마지막 앞돌려치기가 적중한 순간, ‘세계챔피언 후배를 만들라’던 선배들의 격려가 머릿속에 스쳐지나갔어요. 동시에 손이 덜덜 떨리고, 등 뒤에 소름이 끼쳤죠. 머리카락도 쭈뼛 섰고. 이윽고 걷잡을 수 없는 감동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2010 터키 안탈리아 세계3쿠션월드컵 우승직후 트로피를 들고 있는 고 김경률. 김정규 원장은 이 대회 직전 전지훈련을 끔찍이 싫어하던 김경률을 설득해 독일에서 훈련을 실시한 후 터키로 날아가도록 했다. 이는 한국인 최초의 세계3쿠션월드컵 챔피언 탄생이라는 큰 성과를 낳았다. (박태호 대한당구연맹 수석부회장 제공)강동궁은 당구대표팀 선수들이 ‘코치 김정규’와 선수들간의 유대관계를 깊게 해준 선수다. 김정규는 코치직을 맡으며 비디오카메라를 구입했다. 선수들의 경기 분석용이었다. 어느날 강동궁의 영상을 보던 그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동궁이가 대회전 샷을 치는데,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하더라고요. 밤새 9시간 돌려본 끝에 선수 본인은 그 사실을 자각 못하고 있음을 알았죠. 바로 동궁이를 불러 당점 등을 코칭해주니 샷이 적중했어요. 그때부터 선수들이 저를 더 따랐어요. 특히 동궁이는 틈만 나면 제게 달려들더라고요. 하하”
이를 통해 김 원장도 깨달은 바가 있다.
"당구도 인생과 마찬가지.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아요" 김정규 원장은 "(강)동궁이는 1년 넘게 새로운 스타일 적응에 애를 먹던 인고의 시간을 극복하고 `2013 구리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강동궁은 이후 극심한 슬럼프에 시달린다. 바뀐 샷에 적응하는 기간이 1년 넘게 이어졌다.
“샷 스타일에 적응하려면 인고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동궁이도 그랬죠. 그 탓에 국가대표 떨어지고, 한동안 연락도 안했어요. 하하. 그런데 어느날 느닷없이 연락이 와 ‘장군님 요즘 저 애버리지 3점대에요’라고 자랑하더라고요. 이후 제게 와 3개월 정도 연습하는 과정에 ‘2013 구리월드컵’이 열렸죠. 그리고 동궁이가 한국의 세 번째 월드컵 챔피언이 됐죠.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단 법이에요”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한국당구대표 선수단. 이 대회에서 한국 당구대표팀은 은메달 1개(김가영 포켓볼), 동메달 1개(정영화 포켓볼) 등 성적을 거뒀다. 한 가운데 장영철 전 대한당구연맹 제9대 회장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정영화(장영철 회장부터 왼쪽 두 번째), 김용철 현 DS빌리어즈 전무(왼쪽 다섯번째), 차유람(왼쪽 네 번째), 고 김경률(왼쪽 두 번째), 김봉수 현 대한당구연맹 대회위원장(맨 왼쪽), 황철호(장영철 회장 오른쪽 바로 옆), 김가영(가운데서 두 번째), 허정한(가운데서 세 번째), 김정규 원장(오른쪽 네 번째), 임윤미(오른쪽 세 국내 톱 클래스 선수들의 샷 성공률은 어떻게 될까. 김정규 원장은 대표팀 코치시절 이를 수치화 시켰다.
“선수들의 모든 경기를 비디오카메라에 담아 성공률을 내봤어요. 그 결과 선수별로 가장 정확도 높은 샷의 평균 성공률은 82~83%에 달했죠. 여기서 1% 올리기가 정말 힘들어요. 경률이는 초구 연습하면서 바깥 돌리기를 지독하게 파더니 성공률을 84.7%까지 올렸습니다.”
이 같은 분석법은 당시로선 생소한 분야였다. 이는 그가 강조하는 체계적인 코칭법에 따른 것이다. 그는 항상 “당구도 다른 스포츠 종목처럼 기술훈련과 함께 경기력 분석, 체력훈련, 멘탈관리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송파구 `김정규당구스쿨`에서 회원들을 지도하는 김정규 원장. 그는 "1992년 네덜란드에서 경험한 기본기의 중요성을 많은 이들에게 전파하고 싶어 학원을 개설했다"고 밝혔다. “모든 훈련이 중요하지만, 한국 당구선수들에겐 체력훈련의 중요성이 조금 결여된 것 같아요. 특히 신체 균형을 잡아주는 대퇴부 운동은 필수에요. 흔들림 없는 샷의 원동력이거든요. 다행히 최근엔 후원사에서 등산을 가는 등 체력훈련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와 함께 김 원장은 “당구는 기술습득 이전에 기본기의 확립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제가 1992년에 월드컵 참가자 방문한 네덜라드 당구클럽에 가보고 크게 느낀 바가 있어요. 그 클럽 문하생들과 연습게임을 하는데, 분명 실력은 저보다 떨어지는데도, 신기하게 점수는 별 차이가 없는거에요. 이유는 간단했어요. 기본기가 잘 잡혀있어 4~5점 연속득점이 많았던 것이죠”
이 경험은 오랫동안 그의 가슴깊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2011년 7월, 당시의 정신과 그간 축적한 경험을 토대로 아카데미를 열었다. 당연히 이곳에서 김 원장은 기본기 습득을 강조한다.
“우리 당구는 화려한 기술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잎만 무성할뿐 뿌리는 깊지 않은 나무와 같아요. 저희때의 과오를 지금은 범하면 안되죠.”
이처럼 한국당구사의 한복판에서 30년 넘게 자리해온 김 원장. 그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물었다.
“체계적인 커리큘럼이 담긴 지도서를 만들어야 해요. 자라나는 선수를 키우는 지침 말이죠. 저를 비롯한 일선 당구인들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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