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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짠물 당구’ 김봉철 “지난해 반짝 성적? 올해 입증할 것”

“작년 연말 강진청자배 우승하니 제주연맹에 난리났죠. 하하”
28살에 조재호 만나 30대 6으로 박살 나…그 길로 당구선수 결심“
최근 빌킹아우라팁과 후원계약 “당구에 제대로 승부 걸겠다”

  • 기사입력:2018.01.27 07:56:10
  • 최종수정:2018.01.27 07:5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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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지난해 생애 첫 전국당구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국내3쿠션 랭킹 6위에 오른 김봉철. 그가 MK빌리어드뉴스에 "지난해 성적이 요행이 아님을 입증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지난해 12월 "강진청자배" 결승전에서 자신의 샷을 주시하고 있는 김봉철.
[MK빌리어드뉴스 이상연 기자] 지난해 한국 남자 3쿠션계엔 ‘제주발 짠물당구’ 주의보가 내려졌다. 그 진원지는 김봉철(38‧제주연맹). ‘인제 오미자배’(5월) ‘양구 국토정중앙배’(6월)에서 연이어 공동3위에 오르더니 12월엔 ‘강진청자배’에서 생애 처음으로 전국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의 현재 국내랭킹(한국남자3쿠션)은 6위. 강진청자배에 이은 ‘제6회 부산광역시장배’에서 조기 탈락하기 전까진 4위 랭크. 매해 20위권을 오르내리던 선수가 한국 남자 3쿠션 강자 반열에 오른 것이다. 만약 부산광역시장배에서 8강 이상 성적을 거뒀다면, 랭킹순위 2위로 ‘2018 세계팀3쿠션선수권’ 출전도 넘볼수 있었다.

최근 서울 마포구 한 당구클럽에서 만난 김봉철은 “팀컵(세계팀3쿠션선수권) 진출기회가 날아가 무척 아쉽다”고 운을 뗐다. 이어 1시간 넘게 10년차 당구선수로서의 각오를 밝히며 “지난해 성적이 요행이 아님을 올해 꼭 증명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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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전국대회 우승후요? 제주연맹 난리났죠" 전국대회 우승직후 수많은 축하를 받았다는 김봉철은 그 관심과 성원이 감사하다고 했다.
▲지난해가 당구인생 ‘최고의 해’…“전국대회 우승후, 제주연맹 난리나”

지난해는 김봉철의 당구인생 중 최고의 시즌이었다. 전국대회 공동3위 두 차례 입상에 연말엔 우승까지. 그 가운데 10월 전국체전에선 1쿠션 은메달을 따내며, 소속 제주당구연맹에 전국체전 첫 캐롬종목 메달을 선물하기도 했다.

“축하요? 정말 많이 받았죠. 강진청자배 우승직후엔 통화 한번 하고나면 부재 중 전화가 6통 넘게 찍혀있을 정도였어요. 이창보 회장님을 비롯, 제주연맹 관계자 분들은 난리도 아니었어요. 마치 제가 3쿠션월드컵 우승한 것처럼. 하하.”

사실 그간 김봉철은 큰 주목을 받던 선수가 아니었다. 그가 나고자란 제주도에선 20대부터 ‘재야의 1번’ 소리듣던 강자였지만, 2008년 선수데뷔 후 전국대회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국내랭킹 20위권을 오르내렸죠. 지난해를 제외하고 영광의 순간이라면, 2013년 ‘제4회 부산광역시장배’ 준우승입니다.”

2013년 7월, 당시 김봉철은 제4회 부산광역시장배 ‘돌풍의 핵’이었다. 8강에서 ‘월드컵 챔피언’ 고 김경률, 4강에서 ‘한국당구간판’ 최성원마저 차례로 꺾으며 무서운 기세로 결승에 진출했다. 비록 허정한과의 결승에선 18:40으로 패했지만, 당구계에 그의 이름 석자를 강하게 각인시켰다.

“그 대회 전까지 4년 동안 별 성적이 없어 ‘선수의 길을 포기할까’도 많이 생각했어요. 생계 때문에 이일저일 하면서 ‘투잡’(겹벌이) 뛰던 시기였으니까요.”

▲28살 김봉철, ‘당국 국가대표’ 조재호를 만나다...“당구선수가 있어?”

2007년, 28살의 김봉철은 큐를 놓은 상태였다. 선수도 아니었고,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해 닥치는대로 일을 할 때였다. 그러다 우연히 걸려온 친구의 전화 한통을 받고, 상경했다. 서울 당구클럽에서 열리는 게임의 선수로 출전해달라는 제안이었다.

김봉철은 자신있었다. 중3때 당구를 시작, 고교때엔 제주지역 ‘당구왕’으로, 20대엔 지역 ‘재야의 당구 1번’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그였다. 1년간 큐를 놓았지만, 그 감각은 여전하리라 생각했다.

“게임 결과요? 처음엔 박살났죠. 오만했어요. 실력들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3쿠션 국제식 테이블도 처음 접했고요. 하지만 곧 감각을 되찾았습니다. 이후 여러 클럽을 돌며 10게임 더했는데 다 이겼어요. 하하. 그러니 저를 게임에 껴주지 않더라고요. 서울 한 클럽에서 일하며 4~5개월 지냈어요.”

김봉철은 이 시기에 만난 친구를 기억했다. 조재호다. 지금처럼 미디어가 당구를 주목하던 시기가 아니라, 김봉철은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제주도에서 중대에서만 경기하다 서울에서 처음 대대(국제식 테이블)를 접했고, 재미삼아 어떤 선수와 경기를 했는데 그게 재호였어요. 30점씩 놓고 겨뤘는데 6점 겨우 뽑고 대패했죠. 하하. 알고보니 당구 국가대표 상비군이더라고요. 재호가 유명하단 사실보단, 당구선수란 직업이 있다는 게 제겐 더 충격적이었요. 바로 제주도로 내려가 지역 연맹 선수로 등록했죠.”

김봉철은 그렇게 2008년, 당구선수가 됐다. 마침 제주당구연맹 창설을 계기로 지역에 국제식 테이블도 많이 보급됐다. 곧 전국대회 성적도 따라올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녹치 않았다. 입상은 고사하고 64강 진출도 힘들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여전히 그를 괴롭혔다.

“당구클럽 일을 하면서, 다른 일도 계속 했어요. 생활하려면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러다 2013년 부산광역시장배에서 준우승이란 성적을 얻었고, 아예 선수들도 많고, 당구 저변도 넓은 서울로 올라가 제2의 당구인생을 펼쳐보자 마음먹었죠. 그게 올해로 3년 넘어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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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샷 시범을 보이고 있는 김봉철.
▲지난해가 반짝성적? 올해 ‘제주 짠물당구’ 실력 입증할 것

서울 생활 3년 넘어선 김봉철은 “최근 제주도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올라왔다”고 했다. 그의 가족들이다. 4개월 전부터 아내, 자녀들과 함께 서울생활 중이다. 김봉철은 “지난해 좋은 성적은 아내의 ‘강한 응원’ 덕분인지도 모른다”며 웃었다.

“올해 들어서자 아내가 성적을 내라고 압박했어요. 하하. 특히 12월 중 ‘대한체육회장배’ ‘강진청자배’ ‘부산광역시장배’ 3개 대회가 몰려있을 시기에 그 중 한 대회에서 꼭 우승컵을 들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적은 처음이라 당황했지만, 정신을 다잡은 계기가 됐어요.”

그리고 김봉철은 아내의 바람대로 지난해 말 전국대회 첫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이어 지난 13일엔 빌킹코리아(대표 서영배)와 아우라팁 후원협약도 체결했다. 개인적인 후원을 제외하곤, 그의 당구인생 중 첫 업체의 후원이었다.

“힘들었던 과거에 비하면 최근 제 인생은 풀리고 있다고 봐요. 하지만 저는 아직 스타가 아닙니다. 그래서 올해가 중요해요. 승부를 걸어야죠. 일각에선 ‘반짝 성적’ 우려도 있는데, 올해 꼭 그 의견을 뒤집어 보이고 싶어요. 가족에게 전국대회 우승컵 몇 개 더 들어야죠. 앞으로 ‘제주 짠물당구’ 김봉철의 행보를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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