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쿠션’ 정보라 ‘기쁘고도 슬픈’ 전국대회 준우승
5년만에 선수 복귀 후 ‘포천 전국선수권’서 2위
2년새 잇따라 부모喪 “기뻤지만 알릴 사람 없어 더 슬퍼”
2010~12년 전국대회 5회 우승 후 생계 때문에 큐 놓아
“이대로 무너지지 말자 다짐하며 나온게 이번 대회”
“선수로 재기하고 싶고, 고아원서 봉사&
최근 경기도 포천에서 열린 "2018 대한당구연맹 전국선수권대회" 여자 3쿠션 준우승 정보라를 MK빌리어드뉴스가 만났다. 5년만에 출전한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정보라는 그간 부모님을 잇따라 여의는 등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객관적인 전력상 스롱피아비의 낙승이 예상됐다. 지난해 데뷔 1년만에 ‘전국대회 3승’을 거둔 강자였고, 16강에 앞선 조별예선도 가볍게 2승을 거두며 통과한 그였다. 특히 조별예선 첫 경기에선 남자 선수들도 힘들다는 애버리지 2.00을 기록하기도 했다. 반면 그의 상대선수는 1승1패로 조별예선을 힘겹게 통과한 상황.
그런데 그 경기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그 선수가 스롱피아비를 23:11로 꺾은 것. 그 소식을 접한 대한당구연맹 관계자들과 선수들은 이렇게 말했다. “정보라? 그 선수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입상도 가능할걸요.”
실제로 그랬다. 정보라(부산시체육회‧34)는 8강 임경진(서울연맹), 4강에선 당시 랭킹4위 ‘김민아(서울연맹)를 차례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비록 결승에선 “(남편과 함께 부부가 같은 날 우승해)내 인생 베스트 날”이라는 오수정(서울연맹)에게 승부치기 끝에 우승을 내줬지만, 정보라는 그래도 행복했다. 5년여의 공백기 후 출전한 전국대회에서 값진 성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랜만에 선수로, 또 화려하게 복귀한 그를 지난 22일 MK빌리어드뉴스가 만났다. 현재 당구선수와 직장일을 겸하고 있다는 정보라는 서울 중구에 있는 한 여행사 사무실에서 기자를 반겼다.
지난 포천 "전국당구선수권" 여자 3쿠션 결승에서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는 정보라. =사실 입상을 기대하진 않았다. 오래 큐를 놓았기에 마음 편하게 먹고 출전했다. 덕분에 긴장감은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준우승을 했다. 입상이 기뻤을 것 같은데.
=기쁨반 슬픔반. 좋은 성적을 내 기뻤지만, 이를 알릴 사람이 없어 슬펐다. 2016년 10월 아버님, 지난해 9월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지금껏 살면서 겪은 가장 슬픈 일이었다. 최근 6개월간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다 전국대회가 열린다고 해 “이렇게 무너지긴 싫으니 한번 나가볼까” 하고 나온 게 이번 포천 대회였다. 살아계셨다면 두 분이 참 좋아하셨을 텐데.
▲부모님 떠난 후 언제 가장 힘들었나.
=갑자기 외로움이 찾아올 때, 특히 잠들기 전. 외동딸이라 속마음 털어놓을 형제도 없다. (잠시 뜸들이다)사실 지금도 정신적으로 완전히 회복한 건 아니다. 스스로 “힘내야지” 하고 다짐하는 중이다.
▲5년간의 공백도 가정사와 연관된 것인지.
=정확하게는 생계때문이었다.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왔지만 도저히 공만 치면서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더라. 선수생활 접고 아버지가 하시던 건강식품 사업도 손댔는데 쉽지 않더라. 또 사기도 몇번 당했다. 그 와중에 아버님은 당뇨합병증, 어머님은 폐암 투병까지 하셨다. 도저히 공을 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선수생활 영영 못하는 줄 알았다.
▲그럼에도 선수로 재기할 수 있던 계기는.
=4년여전, 지금 제가 일하는 여행사 사장님을 만났다. 연습하던 당구장에서 우연히 만난 분인데 제 사정을 알고 여러모로 도움을 주셨다. 여자 선수가 고생하는 게 딱했나보다. 2016년 말, 제주도에서 잠깐 여행사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도 그분 덕분이다.
▲인생 전반에 걸쳐 우여곡절이 많은 것 같다. 어릴 때는 힘든 외국생활도 했었다고.
=중3때 큐를 처음 잡고 당구가 금방 늘었다. 어른들이 해보라던 찍어치기도 곧잘 해냈다. 그랬더니 TV에서 저를 취재하더라. 그 가능성을 보고 17살에 김영재 선생님(당시 대한당구연맹 고문)이 1년간 대만으로 포켓볼 유학을 보내주셨다. 그런데 당시 저는 포켓볼 룰도 잘 모르던 선수였다. 클럽에 들어가 공 조금 치고 혼자 지내는 생활을 했다.
▲2006년엔 포켓볼 본고장인 미국으로도 유학을 떠났는데.
=당시 미국에서 활동하던 제 스승님, 박신영 선생님의 권유때문이었다. WPBA(미국프로당구협회)를 목표로 한 결정이었다. 어머니가 겨우 1000만원을 마련해 줘 들고 갔는데, 방 구하고 나니 거의 사라졌다. 어쩔 수 없이 코리아타운 내 식당과 슈퍼마켓 등에서 아르바이트 전전하면서 공을 쳤다. 처음 아르바이트 구하러 갈 때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고 숫기도 없었다. 식당까지 30m 거리를 몇십번 왕복한 줄 모른다. 그렇게 일하며 가끔 WPBA 대회 예선을 통과했지만 생계 때문에 본선경기를 못 치르는 일도 허다했다. 본선은 딱 한번 치러봤다. 그런데 패기만으로 될 일이 아니더라. 그렇게 1년 보내고 귀국에 2009년 경기연맹 선수로 등록했다.
▲이후 귀국해 국내 포켓볼‧3쿠션 톱클래스 선수로 떠오른다. 그럼에도 당구가 썩 즐겁지 않았다고.
(편집자 주=정보라는 2010년대 초반, 포켓볼과 3쿠션 모두 전국대회 정상에 오른 강자였다. ‘2010 대한체육회장배 전국당구대회’ 3쿠션 우승을 비롯, 2011년엔 연속으로 이어진 제92회 전국체전(포켓8볼), 제2회 CJ HELLO 부산시장배 전국당구대회(포켓9볼), 제7회 대한체육회장배 전국당구대회(3쿠션) 등 전국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2012년 한바탕 전주배 전국당구대회 3쿠션 여자부 우승을 끝으로 정보라는 전국대회에서 자취를 감췄다)
=당구를 시작한 계기와 연관되는 부분이다. 사실 당구가 좋아서 시작한 게 아니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 가세가 심하게 기울었다. 그 어린 나이에 빨리 돈을 벌고 싶었고, 그때 택한게 당구였다. 아버님이 당구장을 운영하셔서 자연스럽게 큐를 들었다. 그렇게 당구가 인생으로 들어왔다.
"봉사하는 삶 살고 싶어요" 정보라는 선수로서의 재기와 함께 고아원 등 시설에서 봉사하고 싶다는 포부도 내비쳤다. =이번 포천대회를 통해 용기를 많이 얻었다. “선수로서 재기가 가능할까?”란 스스로의 물음에 “그렇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대신 포켓과 3쿠션을 겸해야 하니 부지런해야 한다. 전국대회는 주로 3쿠션, 전국체전은 부산시체육회 소속 포켓 선수로 나설 예정이다.
이와 함께 해보고 싶은 게 최근 하나 생겼다. 고아원 등에 가 봉사를 하고 싶다. 몇 년 전까지 부모님의 부재를 모르고 살다가 느끼게 되니 정말 쉽지않은 일이더라. 그래서 그런 아이들에게 허전함을 채워주는 존재가 되어보려고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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