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선수 이승진 “제가 행운의 사나이요? 맞습니다.”
‘LGU+컵’ ‘청주직지월드컵’대회 잇따라 대타 출전 ‘행운’
국내 랭킹 4위 ‘대구당구 버팀목’…“노력있어야 행운도 있지요”
“후배들에 ‘좋은선배’ 되고파…월드컵 16강 최고성적 갱신 목표”
지난 9월 LGU+컵 조별예선 경기에 참가한 이승진의 경기 모습.[MK빌리어드뉴스 이상연 기자]올해 가장 운 좋은 당구선수를 꼽는다면. 아마 이승진(대구‧47)이 아닐까. 특히 지난 9월은 그에게 ‘행운의 달’이었다. 우승상금이 8000만 원인 ‘LGU+ 3쿠션 마스터즈’(이하 LGU+컵)는 김재근(인천)의 급작스런 부상으로, ‘청주직지월드컵’은 제레미 뷰리(프랑스)의 불참으로 각각 ‘대타 출전’, 본선 32강까지(청주월드컵) 올랐다.
본인 뜻과 관계없이 ‘당구판 억세게 운좋은 사나이’가 된 그는 현재 국내랭킹 4위의 강호다. 아울러 ‘대구 당구의 버팀목’같은 존재다.
그런 이승진을 최근 ‘2017 강진청자배 전국당구대회’ 현장에서 만났다.
“갑자기 무슨 인터뷰요?”라며 예상못한 기자의 요청에 의아해하던 그는 ‘9월 행운’ 질문을 받자 크게 웃었다. 그러면서 “그런 행운은 노력이 수반됐기에 가능하지 않겠어요?”라고 반문했다. 이어 지난 9월의 솔직한 심정과 뒷이야기, 그의 당구인생 등을 털어놨다.
▲LGU+컵 출전직전 심경이 궁금하다.
=지난해에도 그 대회 대기 1번, 올해 역시 대기 1번 선수였다. LGU+컵은 높은 상금뿐만 아니라 세계 톱클래스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점 등에서 선수들에게 ‘영광의 무대’로 여겨진다. 저 역시 마찬가지라 출전확정 소식에 기뻤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자리는 원래 재근이(김재근 선수) 것이지 않나. 그 친구의 갑작스런 부상 소식에 걱정이 됐다. 그래서 당시 심정은 기쁨반 걱정반이었다..
▲그 LGU+컵에서 조별예선 전패(3패)를 당했다.
=(크게 웃으며)말 그대로 쿠드롱(프레데릭 쿠드롱) 뷰리(제레미 뷰리) 진표(홍진표 선수)에게 차례로 박살났다. 하지만 많이 져봐서 괜찮다.(이승진은 지난 9월 LGU+컵 조별예선 1차전 쿠드롱 전 10:40, 뷰리 전과 홍진표 전은 30:40으로 패했다) 최근 저는 승리보단, 제 평균 경기력 유지에 더 신경쓰고 있다. 그러다보면 승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본다. 그러려면 대회 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데, LGU+컵은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세계4대천왕 쿠드롱은 물론이고, 진표나 뷰리도 저보다 그런 부분에서 앞섰기에 나온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제레미 뷰리의 끈적한 ‘수비당구’가 당시 당구팬들의 도마에 자주 올랐다. 선수로서 뷰리의 당구를 평가한다면.
=(잠시 생각하다)그 선수 경기가 수비위주고, 공격시간 40초를 매번 거의 다 활용하니 사람들이 끈적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규칙에 위배되는 건 아니잖나. 승부의 세계에선 상대를 힘들게 하는 것 또한 테크닉의 일부라고 본다. 게다가 뷰리는 기본기도 탄탄한 세계 톱클래스 선수다. 높은 랭킹(20일 기준 세계 13위)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데 청주월드컵에선 그 뷰리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승진은 지난 9월 28일 열린 청주월드컵 최종예선(Q)에서 1승1패로 조2위에 그치며 각조 2위중 상위 3명(애버리지 순)에게 주어지는 본선 32강 진출 티켓을 노려야 했다. 하지만 그의 애버리지는 1.575로 다음 라운드 진출을 장담하기 어려운 수준. 그때 행운이 찾아왔다. 당시 세계 랭킹 8위로 본선 32강 시드권자인 제레미 뷰리가 불참해 32강 자리가 하나 남게 된 것. 이승진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하하. 당시 MK빌리어드뉴스에 “간당간당하다. 이대로 떨어지면 아쉬울 것 같다”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본선진출 여부를)기다리면서 기대하는 마음 반, 다음 대회를 기약하는 마음 반이었다. 다행히 진출했고,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땡큐! 뷰리”
▲청주월드컵 본선진출을 두고 운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
=그렇다. 저도 제가 ‘럭키가이’란 걸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한편으론 그런 행운을 얻게 된 것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당시 국내랭킹 4위였는데, 그 자리에 오르려면 수많은 대회에 나가 성적을 내야 한다. (그 랭킹을)평생 한 번 밟아보지 못하는 선수들도 수두룩하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얻어진 좋은 결과물로 평가받아야 제 뒤에 랭크된 선수들에게 힘이 되지 않을까.
▲힘들게 진출한 월드컵 본선 32강서 다니엘 산체스에게 40:11로 패했다. 아쉽진 않았는지.
=정말 잘 치고 싶었는데, 산체스의 실력이 대단하더라. 미스 한 번 나면 7~8점씩 쭉쭉 내주는데 평정심 유지하기 힘들더라. 특히 선공 잡고, 초구 성공 후 뒤돌려치기로 2득점째를 노리다 빠졌는데, 그 이후로 산체스가 경기 내내 틈을 보이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어쩔 수 없다. 다음에 또 도전하면 된다. 하하.
‘2017 강진청자배 전국당구대회’가 열린 강진 실내체육관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이승진.▲월드컵 무대, 계속 도전할 생각인가.
=당연하다. 지난해까진 국내 월드컵대회만 출전했지만, 올해 초부터 월드컵 출전을 후원해주는 곳이 생겨 모든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세계대회란 게 참 재미있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지만, 20년 가까운 선수생활을 했음에도 배우는 것이 참 많다.
▲선수생활은 언제 작했나.
=‘1998 방콕 아시안게임’ 당구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하고자, 1997년 말 대구당구연맹 선수로 등록했다. 이후 2년간 전국대회 32강, 많이 올라가면 16강에서 번번이 미끄러져 선수생활을 포기할까 하다가, 2003년 ‘SBS 한국당구 최강자전’ 우승 후 지금까지 당구선수의 길을 걷고 있다.
▲이후 무려 13년 만인 지난해 5월 ‘양구 국토정중앙배’에서 우승했다. 2관왕(1쿠션, 3쿠션)까지 했는데, 당시 심정은.
=이렇게 말해도 되나. 지금 생각해도 정말 운이 좋았다. 경기장 환경부터 제 컨디션까지 모든 것들이 제게 잘 맞았다. 어떻게 보면 선수생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계속 플레이어를 하라는 하늘의 뜻이었을까. 하하.
▲경기 중 흥분하는 경우가 드물다. 원래 성격이 침착한 편인가.
=느긋하고 긍정적인 편이다. 승부의 세계에선 이 때문에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상대를 편하게 한다. 고의적인 비매너가 아니라면 상대를 괴롭힐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걸 잘 못하겠다. 하하.
▲대구지역 당구인들에게 상징적인 선수라고.
=나이가 있으니까. 하하. 아마 2000년, 대구지역 최초의 온라인 당구동호회 ‘대구사랑당구사랑’ 창설을 주도해 동호인들에게 그렇게 불릴지도 모르겠다. (‘대구사랑당구사랑’은 회원수가 4500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네이버 당구 카페다. 이승진은 동료 당구인 8명과 함께 대구지역 당구보급 및 저변확대를 위해 이 동호회 창설을 이끌며 5~6년간 기술고문 등 역할을 맡았다.)
▲앞으로 목표는.
=선수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그 길이 끝날 때까지 제 목표는 딱 하나다. 후배들 보기 부끄럽지 않은 선수가 되는 것. 경기장에서 만나면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그 선배 참 괜찮다”는 말을 듣는다면 더 바랄 것 없다. 그리고 대회는 즐겁게 출전하면서 제 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특히 세계대회(월드컵)는 본선에 올라가면 오프닝 세레머니를 함께 하는데 짜릿하고 뿌듯한 경험이다. 내년엔 그 경험을 한번 더 하고 싶고, 제 개인적인 월드컵 최고성적 16강(2011 수원월드컵)도 갱신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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