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포르투3쿠션월드컵’의 주인공은 단연, 우승자인 김행직(25·LG유플러스)이다. 생방송으로 중계된 결승전은 당구팬은 물론 일반 국민들조차 손에 땀을 쥐게했다. 이 대회 우승으로 그는 ‘당구천재’에서 ‘한국당구 에이스’로 화려하게 업그레이드 됐다.
그러나 또 한 명의 주인공이 있다. 바로 최완영(34·충북연맹)이다. 예선부터 시작, 세계적 강호들을 차례로 꺾으며 16강까지 진출, 이 대회 최대 ‘돌풍’을 일으켰다.
그가 이긴 상대는 국내외 강호들이다. 예선 3라운드(PQ)에선 국내 6위 홍진표와 ‘여자 쓰리쿠션 최강’ 세레즈 클롬펜하우어를 꺾었고, 예선 4라운드(Q)에선 롤란드 포톰(세계 33위)을 제압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32강전에서 세계 랭킹 1위 딕 야스퍼스를 40:32로 이긴 것. 국내 언론에 ‘142위 최완영이 세계 1위 야스퍼스 꺾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이어 ‘국내 간판’인 최성원마저 희생양이 됐다. 그의 돌풍은 8강전 김행직에 막혀 멈췄지만, 그의 활약은 이 대회 막판을 달군 최대 이슈였다.
‘돌풍의 주역’ 최완영은 11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들어왔다. 긴 비행에도 불구하고 그는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그와 인천공항 카페에서 1시간 가량 만났다.
편한 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한 최완영 선수.
▲포르투월드컵 ‘돌풍’의 주역이 됐는데.
이만큼 언론의 관심을 받는 게 처음이다.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분 좋다. 외국에 가면 시차적응이나 음식 문제로 고생하는 선수들이 많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포르투갈은 선선해서 잠도 잘 왔고 밥도 맛있어서 컨디션 관리가 잘 됐다. 후원사(몰리나리) 대표님이 직접 현장에 와서 응원을 보내주기도 했고, 큐감도 좋았다. 단지 테이블이 워낙 어려워서 적응하는 데 힘들었다.
▲대회 가기 전 이런 성적을 예상했나.
전혀 예상 못했다. 이 대회 목표는 32강 본선 진출이었다. 그런데 8강까지 올라갔으니 충분한 성과를 낸 것 같다.
▲32강전에서 야스퍼스를 꺾었는데.
나도 그렇지만 야스퍼스도 방어적 플레이를 선호해서 경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했다. 워낙 잘 치는 선수라 15이닝만 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 그 경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 속에서 방어적으로 치렀기 때문에 승리를 가늠할 순간조차 없었다. 40:27로 먼저 승점을 찍고도 야스퍼스가 후구로 13점을 따라올 것 같아 불안했다.
야스퍼스가 유독 한국 선수에게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경기 시작전 전 야스퍼스가 ‘최완영은 어떤 선수냐’고 주변에 물어봤다는 것을 들었다.
부담을 내려놓고, 머리를 비우고 쳐서 그를 이길 수 있었다. 이제까지 월드컵에 5번 출전했는데 매번 일찌감치 떨어져서 본선 진출을 못했다. 이번에 세계 1위 야스퍼스를 이기고서 ‘나도 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연습한 찍어치기도 큰 도움이 됐다.
▲야스퍼스 꺾고 격려전화받은 건 없나
야스퍼스와 경기 끝나고 숙소 돌아와서 가족과 친구들의 전화를 받았다. “잘했다. 축하한다. 더 좋은 성적 기대한다”는 내용이었다. 다음날에는 “국내에서 난리가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142위가 세계 1위 꺾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고 했다. 처음에는 얼떨떨했다. 나중에야 실감했지만….
▲‘여자 야스퍼스’ 세레즈 클롬펜하우어도 꺾었다.
지난 호치민월드컵 예선때도 세레즈 클롬펜하우어를 만났는데 그때는 비겼다. 사실 당시에는 이미 1패를 한 상태여서 거의 포기 상태였다. 이번에는 예선 3라운드(PQ)에서 홍진표를 이기고, 클롬펜하우어를 만났으니 정말로 질 수 없어서 최선을 다해 쳤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어려웠던 상대는?
예선 4라운드(Q)에서 만난 롤랜드 포톰이다. 세계에서 강하다고 소문난 선수와 만난 것은 롤랜드 포톰이 처음인 것 같다. 포톰이 초반에 워낙 잘 쳐서 기세에 조금 눌렸지만 승패에 연연하지 않았더니 이길 수 있었다.
▲8강에서 김행직을 만났는데.
저 스스로 어린 선수들에게 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솔직히 야스퍼스보다 행직이와의 경기가 더 부담됐다. 거기다 카메라 울렁증까지 와서 공이 잘 안 보였다.
▲세계랭킹이 142위에서 76위까지 뛰었는데, 다음 목표 랭킹이 있다면?
세계 50위권에 진입해서 PQ시드를 받는 게 목표다.
▲본인의 당구 스타일은 공격형인가 방어형인가?
방어형에 가깝다. 공 포지션, 특히 후구 배치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그렇지만 득점 상황에 따라 전략을 바꾸기 때문에 마냥 방어적이지는 않다. 공격적으로 플레이 할 때도 있다.
▲포켓볼에서 3쿠션으로 종목을 바꾼 이유는?
포켓볼 선수 생활을 시작한 고등학교 1학년 때 청주오픈 당구대회 포켓볼 부문에서 최연소 우승을 기록했다. 군입대 때문에 큐를 놓게 됐는데 제대하고 다시 잡은 큐가 손에 붙질 않았다. 당시에는 포켓볼의 비전에 회의까지 들었다. 이후에 취미로 3쿠션을 치다가 아마추어 대회에서 종종 입상하니 선수가 되라는 얘기를 많이들었다. 포켓볼은 놓았지만 마음속에 계속 당구가 있던 터라 3쿠션으로 종목을 바꾸게 됐다. 다시 큐를 잡아서 기뻤다. 앞으로도 당구를 칠 수 있는 데까지 칠 생각이다.
인터뷰를 마친 최완영 선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포켓볼 경력 및 경험이 3쿠션에 도움이 되는지?
큰 도움이 된다. 포켓볼을 치면서 쌓은 국제대회 경험 덕에 경기장 분위기에 압도되거나 적응을 못해서 고생하는 일이 없다. 경기 중에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 상대방이 힘을 얻는다는 사실도 뼈저리게 알았다. 그래서 웬만하면 당구 칠 때 감정표현을 자제하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앞으로 목표는
국내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싶다. 그 동안 국내 대회에선 16강이 최고 성적이다. 16강 징크스가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쉽다고 생각한 상대도 16강에서 만나면 어려워 보인다. 이번 주에 정읍(정읍시장배 전국당구대회)에 간다. 국내 대회는 참가하려는 선수가 많아서 랭킹 22위까지는 안정적으로 출전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랭킹이 낮은 선수는 선발전을 거쳐야 한다. 선발전으로 대회 참가가 결정되는 선수는 8명 정도다. 국내 랭킹(현 27위)이 낮아 매번 선발전을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다.
▲앞으로의 각오는.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큐가 내 전부인데 안정적으로 선수생활을 하고 싶다. 올해에 국내 대회에서 우승하고 국내 톱랭커가 되는 것이 목표이고, 앞으로 세계 챔피언이 되겠다는 목표를 품고 살겠다.
편한 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한 최완영 선수. 
편한 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한 최완영 선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