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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A투어 다크호스’ 정경섭 “대리운전하며 당구선수 꿈 키워”

8강전서 필리포스에 접전끝 2:3敗…당구팬에 강렬한 인상
트라이아웃 탈락땐 아내에게 “이제 당구 접겠다” 선언
예비11번으로 기사회생, 128강 64강 거쳐 8강까지
“프로당구는 마지막 기회, 내가 뭘 고민하고 망설여야 하나”

  • 기사입력:2019.06.20 11:21:31
  • 최종수정:2019.06.23 1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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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국내랭킹 209위였던 정경섭(사진)은 PBA투어 첫 대회에서 8강까지 진출하며 대회 최고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8강전에서는 비록 대회 우승자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그리스)에게 패배했지만 5세트까지 가는 끈질긴 승부를 연출하며 당구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는 분위기가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는 정경섭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사진은 인터뷰 후 진행된 사진촬영에서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고 있는 정경섭.


[MK빌리어드뉴스 최대환 기자] 국내랭킹 209위였던 정경섭(40)은 당구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선수였다. 지난 2009년 서울연맹에 등록, 선수로 데뷔한 정경섭은 11년간 꾸준히 대회에 참가했지만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참가했던 PBA트라이아웃에서도 탈락, 그대로 당구선수를 접으려했다. 하지만 예비순위를 통해 PBA 1부투어 명단에 합류하며 가까스로 ‘프로당구선수’ 타이틀을 땄다.

어렵사리 입성한 프로당구에서 정경섭의 당구인생은 극적으로 반전했다. 프로당구 PBA투어 개막전 파나소닉오픈에서 128강, 64강전을 조1위로 통과하며 본선에 진출했다. 이어 내친김에 8강까지 오르며 대회 최고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8강전에서 우승자인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그리스)에게 아쉽게 패했지만 5세트까지 가는 끈질긴 승부를 펼치며 당구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프로당구 선수가 되기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생계를 포기하다시피하며 연습에만 몰두했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덕분에 당구팬들도 이제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아직 이런 분위기가 실감나지 않는다”는 정경섭을 그의 연습구장인 경기도 김포 각구목당구클럽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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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프로당구 PBA투어 개막전 파나소닉오픈 당시 128강전 경기를 치르고 있는 정경섭. 곧 결혼을 앞둔 정경섭은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전기관련 일, 대리운전 등 투잡, 쓰리잡을 뛰며 틈틈이 당구 연습을 했다. 하지만 프로당구 출범 소식을 듣고 지난해 11월부터는 예비신부의 배려로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고 당구 연습에만 몰두했다.


▲무명선수였다가 PBA투어 첫 대회에서 8강에 올랐다. 축하인사도 많이 받았겠다.

=TV에서 봤다며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축하전화와 메시지도 100건 넘게 받았다. 5~10년 전 연락이 끊겼던 사람들에게서 축하한다며 연락이 오기도 했다. 사실 이런 반응이 아직 실감이 잘 안난다.

▲조금 지났지만 PBA투어 개막전을 돌아본다면.

=즐기면서 당구를 치자는 생각을 하고 대회에 임했다. 덕분에 나름 성과도 냈다. 하지만 새로운 뱅킹에 대한 연습이 부족했던지 대회 내내 한번도 초구를 잡지 못했다. 초구를 잡고 못 잡고는 경기운영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그 부분은 아쉽다. (기존의 뱅킹방식은 1쿠션 이상으로 선수 쪽 레일에 가깝게 공을 붙이는 선수가 초구를 잡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PBA투어에서는 2쿠션 이상으로 선수 반대편 레일에 더 가깝게 공을 붙이는 선수가 초구를 잡는 뱅킹방식이 도입됐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당구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던데.

=곧 결혼하기로 한 예비신부가 있다. 부양할 가족이 생기니까 투잡, 쓰리잡을 뛰었다. 낮에는 전기관련 일을 하고 밤에는 대리운전했다. 그 와중에 틈틈이 연습했다. 당구에 대한 열정이 있어서다. 시합에만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당장 성적도 잘 안나왔고, 가계에 보탬이 될 수 없었기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번 대회 상금이 선수생활하면서 가장 많은 상금이라고 들었다.

=맞다. 이번 대회 8강상금 500만원이 가장 큰 액수다. 2009년 선수로 등록해 11년 동안 꾸준히 시합에 나갔다. 하지만 그 동안 뚜렷한 성적이 없어 지역대회 빼면 지금까지 받은 상금 모두 더해도 500만원이 안된다. 그걸로는 출전경비 충당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PBA투어 참가를 결정할 때 망설이지는 않았나.

=뭘 고민해야 하고 왜 망설여야 하나. 프로당구 출범 소식을 듣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지난해 11월부터 하던 일 모두 그만두고 연습에 몰두했다. 다행히 아내(정경섭은 인터뷰 내내 예비신부를 ‘아내’라고 불렀다)가 이해해준 덕분에 그 어느때보다 열심히 연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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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선수생활 11년차인 정경섭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참가한 PBA트라이아웃에서도 탈락하며 당구를 접으려고 했지만 예비순위를 통해 1부투어에 합류해 당구인생이 극적으로 반전됐다. 스트로크 자세를 취하며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정경섭.


▲PBA트라이아웃에서 나갔는데 탈락했다.

=트라이아웃 나갈 때 아내에게 ‘이번에 1부투어 못들어가면 당구 접겠다’고 했다. 여기서 떨어지면 끝이라는 생각이 들어 심리적으로 쫓기며 경기했다. 그래서인지 트라이아웃을 통과하지 못했다. (3차에 걸쳐 진행된 PBA 트라이아웃에서는 1차 24명, 2차 16명, 3차 8명 등 총 48명의 1부투어 선수를 선발했다. 정경섭은 1차전 128강, 2차전 2일차 4강, 3차전 2일차 16강에서 탈락하며 트라이아웃 통과에 실패했다.)

▲하지만 예비순위를 통해 1부투어 멤버가 됐다. 트라이아웃 이후부터 최종 선수명단이 나올 때까지 심정이 어땠나.

=솔직히 트라이아웃을 치를 때도 예비순위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런데 트라이아웃 탈락하고 며칠 뒤 후원사(빌킹) 평가전에 갔는데 거기서 예비순위로도 1부투어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내 예비순위를 찾아보니 11위로 나쁘지 않았다. (PBA트라이아웃 예비순위는 22위까지 1부투어에 진출했다) 트라이아웃 떨어지고 나서 아내에게 ‘이제 당구 접고 돈 벌어야겠다’고 얘기했는데, 예비순위 알고나서 바로 ‘나 다시 당구 쳐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하.

▲우여곡절 끝에 PBA 첫 대회에 참가했다. 서바이벌 방식으로 진행된 128강, 64강전서 순항하며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128강전 점수를 64강전에 그대로 갖고 간다는 규칙을 처음 듣고 128강전을 잘 치러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128강 경기가 잘 풀려 64강전도 잘 치를 수 있었다. 또한 이전에는 경기시간이 들쭉날쭉했는데 프로대회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하루 한 경기만 치르면 되기 때문에 컨디션 조절 하는데도 용이했다. 여러 요인들이 겹쳐 예선을 잘 치렀고, 그때 이번 대회가 잘 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하지만 32강전, 16강전이 정말 어려운 경기였다고.

=(한)지승이와 붙은 32강전(3:2 승), 권영갑 선수와 치른 16강전(3:0 승) 모두 스코어 상관없이 매우 힘든 경기였다. 그런데 경기가 힘들어질 때마다 김포연맹에서 함께 선수생활하던 성인철 선수와 연습구장인 각구목클럽에서 자주 뵙던 동호인들이 관중석에서 환호하고 응원해주셔서 자신감이 붙었다.

이분들은 TV로 경기를 보다가 ‘상대 선수가 득점하면 환호도 나오고 그러는데 정 프로가 득점하면 왜 이렇게 조용하냐’며 TV끄고 바로 경기장으로 달려왔다고 하더라. (각구목당구클럽과 PBA투어 개막전이 열렸던 고양 엠블호텔은 밤늦은 시간에는 차로 20분 거리) 정말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덕분에 정말 큰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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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정경섭(왼쪽)과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그리그)의 8강전 경기는 PBA투어 개막전 최고의 명승부 중 하나로 회자된다. 정경섭은 "상대가 비록 세계적인 선수지만 의식하지 않고 즐겁게 경기했다. 하지만 후회도 남는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대회 우승자인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그리스)를 8강전서 만났다. 첫 두 세트를 내주고 패배 직전까지 몰렸다. 그 당시 불안하지는 않았나.

=필리포스가 세계적인 선수이기는 하지만 0:2로 지고 있다고 크게 개의치 않았다. ‘세계의 벽이 높구나’라는 생각도 전혀 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내가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면 힘없이 0:3으로 졌을 것이다. 평정심을 유지한 덕분에 3~4세트를 가져오며 5세트까지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5세트에서는 후회가 남는다고.

=너무 재미있게 경기를 즐기기만 하다보니 5세트는 11점제라는 사실을 깜빡했다. 0:4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1점을 낸 뒤 다음 배치에서 횡단샷과 투뱅크샷을 놓고 잠시 고민했다. 그런데 3~4세트를 이기며 분위기가 내 쪽으로 넘어왔다는 생각에 공격적인 경기운영을 하려고 횡단샷으로 결정하고 성급하게 엎드렸다. 결국 횡단샷을 실패하고 대기석으로 돌아와 전광판을 봤는데 15점제가 아니라 11점제더라.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이후 필리포스가 7연속 득점하며 경기가 그대로 끝났다. 돌아보면 좀 더 신중하게 선택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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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정경섭이 8강전 경기가 끝난 후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그리스)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정경섭은 세트스코어 2:3으로 아쉽게 패배했지만 "졌지만 잘 싸웠다"는 평가를 받으며 승자인 필리포스 못지 않은 큰 박수를 받았다.


▲결국 세트스코어 2:3으로 졌다. 하지만 소위 ‘졌잘싸’(졌지만 잘 싸운 경기)였다. 경기 끝난 후 관중들이 필리포스뿐만 아니라 정경섭 선수에게도 많은 박수를 보냈다.

=‘졌잘싸’ 얘기를 한 50번도 넘게 들은 것 같다. 하하. 돌아보면 경기운도 따라줘서 접전을 펼칠 수 있었다. 끝나고 관중들에게 박수를 받는데 평생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를 정도로 벅찼다. 열심히 준비한 보람이 있는 것 같아 뿌듯했다. 그 순간 ‘지금까지 당구치기 잘했다, 프로당구에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경기 내내 밝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원래 성격이 잘 웃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긍정의 힘’을 믿기 때문에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 한다. 당구 치다보면 상대방이 아닌 자기 자신과 승부를 해야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런 긍정 마인드가 경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준우승한 강민구와 같은 후원사(빌킹)다. 대회 이후 얘기를 나눈 적 있나.

=후원사 평가전 때 만나 축하한다고 인사를 나눴다. 그러면서 1회성으로 끝나지말고  좋은 성적을 쭉 유지하자고 서로 격려했다. 이번 대회에서 강민구 선수는 같은 선수가 봐도 참 멋있었다. 경기력은 물론이고 결승전 끝난 후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필리포스를 안아주며 축하해주는 매너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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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정경섭은 인터뷰 말미 프로선수로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성급하지 않고 묵묵하게 가려고 한다. 전 대회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면 결과는 자동으로 따라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첫 대회에 8강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고마운 사람도 많을 것 같은데.

=후원사인 빌킹 서영배 대표님에게 먼저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또 마음놓고 연습하게 배려해주신 각구목당구클럽 민광식 대표님께도 감사드린다. 매 경기 빼놓지 않고 시청해준 여동생과 매제, 조카들 생각도 많이 난다. 특히 여동생에게는 ‘정말 고맙다’고 꼭 전하고 싶다. 물론 가장 고마운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아내다.

▲처가에서도 열성적으로 응원해주었다고 하던데.

=장인어른, 장모님께서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주셨다. 덕분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사실 당구선수를 사위로 맞이할 때 먹고사는 것 때문에 걱정하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번에 프로 첫 대회에서 내가 잘하는 모습을 보시고 그런 걱정이 싹 사라졌다고 하셨다. 대회 기간 동안 내 경기를 모두 챙겨보시고, 내 기사까지 빼놓지 않고 보셨다고 하시더라. 아마 이 인터뷰도 보실 것 같다. 하하.

▲PBA 2차투어가 7월에 열린다. 대회에 임하는 각오와 프로선수로서의 목표는.

=선수라면 당연히 우승이 목표다. 하지만 성급하게 가기보다는 묵묵히 가려고 한다. 우선 첫 대회를 통해 강점과 약점을 알 수 있었고, 어떻게 해야할지 방향도 찾을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지금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는 게 1차 목표다. 어떤 대회든 전 대회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면 결과는 자동으로 따라올 것이라 생각한다. [cdh10837@mk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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