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포켓 국내 톱’ 임윤미 “후배들아, 선배들을 위협하라”
지난해 6개월 만에 4개 대회 석권…“선수 17년만 최고 전성기”
“새해 당구인생 제2막 열겠다…세계 랭킹도 20위 도전”
19살에 남편 정영화와 첫 대면 “얼굴 뒤에서 후광이”
올해로 선수생활 17년째인 임윤미는 지난해 6개월 가까이 1위 자리를 수성하며 여자 포켓볼 중심으로서의 모습을 톡톡히 보여줬다. 사진은 `서울시청` 당구선수들의 연습장인 서울시 서초구 `준빌리어드클럽`에서 샷 시범을 펼치고 있는 임윤미.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박은지(동양기계‧국내 1위) 임윤미(서울시청‧2위) 김가영(인천시체육회‧3위) 등 ‘3강’은 2017년 한해동안 국내랭킹 1~3위를 독식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특히 임윤미는 지난 6월부터 총 4개의 전국대회 우승컵을 쓸어담았다. 비록 지난해 막판 1위 자리를 박은지에게 넘겼지만, 6월 ‘양구 국토정중앙배’ 및 ‘풀투어 2차’ 우승, 12월엔 ‘슈퍼오닝 풀투어’ 및 ‘강진청자배 전국당구대회’에서 연거푸 정상에 오르며 무려 반년 가까이 1위를 수성했다.
이런 그를 소속팀 서울시청의 연습장(서울시 서초구 준빌리아드클럽)에서 만났다. 임윤미는 “(지난해가)제 17년간의 선수생활 중 최고의 시즌이었다”면서 “하지만 어린 후배들이 더욱 성장해 저희 선배들을 보다 더 위협했으면 좋겠다”며 후배에 대한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이어 그는 1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두 딸의 엄마, 선수(정영화 포켓선수)의 아내, 국내 톱 여성포켓볼 선수로서의 삶을 털어놨다.
▲“2017년 우승 큰 의미” “후배들이 선배들 더 위협해주길”
임윤미는 ‘포켓여제’ 김가영 등과 함께 한국 여자포켓의 기둥으로 평가받는 선수다.
2009년 ‘올 재팬 챔피언십’ 준우승, 2012년 ‘차이나오픈’ 3위, 지난해 11월 ‘올 재팬 챔피언십’ 준우승 등 국제무대에서 괄목할 만한 족적을 남겼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선 스누커 국가대표로 뛰기도 했고, 지난해 9월 ‘투르크매니스탄 아슈바하트 인도어아시안게임’ 포켓볼 한국대표로 활약했다.
이 가운데 수많은 국내대회 정상에도 올랐음은 물론이다. “우승 횟수를 헤아리기 힘들다”며 웃는 임윤미는 “하지만 2017년의 우승들이 제겐 큰 의미로 다가온다”고 밝혔다.
“2000년대 중반에 시즌 1위까지 해봤지만, 당시엔 가영이(김가영)가 대만진출해 있고, 선수층도 엷어서 큰 의미는 없었어요. 지금은 달라요. 저와 가영이, 은지(박은지), 또 혜주(진혜주) 보건이(김보건) 혜현이(양혜현) 등 실력좋은 젊은 선수들이 많아 대회 입상이 쉽지 않죠.”
그의 말처럼 최근 한국 여자 포켓은 ‘영건 돌풍’이 거세다. “후배들에게 압박감을 느끼는가”란 질문에 임윤미는 “지금보다 더 그러길 바란다”고 답했다.
“10년 전만해도 국가대표 선발전을 선수 4명으로 치르던 시기가 있었어요.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죠. 격세지감을 느껴요. 솔직히 말하면 2년 전만해도 후배들을 경쟁자로 의식하지 않았는데, 기량들이 부쩍부쩍 늘더라고요. 이젠 모든 선수들이 라이벌과 같아요. (후배들이)기특하고 예뻐요.”(웃음)
한국 남자 포켓볼을 대표하는 정영화는 임윤미의 남편이다. 둘의 소속팀 "서울시청" 연습장(서울시 서초구 "준빌리아드클럽")에서 연습 중 서로 기댄채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정영화(왼쪽)와 임윤미. 한국 여자 포켓볼계의 ‘장밋빛 미래’를 염원하던 임윤미. 그는 “이렇게 성격이 변한 제가 신기하다”면서 “예전엔 승부욕으로 충만해 한 경기에서 패하면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고 고백했다. 그는 18살이던 1999년, 큰 언니를 따라갔다가 포켓볼을 처음 접했다. 그리곤 포켓볼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집(경기 부천시) 근처 당구장에 거의 매일 갔어요. 고등학교 포켓볼부도 가입해 주말에도 공을 쳤죠. 포팅(포켓에 볼을 넣는 것)이 그렇게 신기하고 재미었어요. 나중엔 자주 가던 당구장에 아트바이트생으로 취직해 거의 살다시피 했죠. 그때 정말 죽기살기로 연습했는데, 이유는 그 클럽에 오던 언니들 때문이에요. 자꾸 제 승부욕을 자극했어요.”
연습을 거듭하던 임윤미는 본인의 실력이 선수 수준에 근접했음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당구장 주인의 눈에 그의 남다름이 보였다. 19살 때다.
“사장님이 박승칠(현 스누커 선수‧박승칠아카데미 원장)씨세요. 후학 양성에 뜻을 품고 계신 분이셨죠. 제게 자넷 리(1990년대~2000년대 초중반 세계적인 명성의 한국계 포켓볼 선수) 사진을 보여주면서 ‘너와 체격이 비슷하니, 너도 이렇게 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솔깃했죠.”
그러던 2000년. 19살의 임윤미는 충북 청주에서 열린 전국 포켓볼 오픈대회에 동호인 신분으로 출전, 준우승을 거둔다. 이 대회는 임윤미가 ‘선배’ 정영화(서울시청‧47)를 처음 본 대회이기도 하다. 5년 뒤 이 선배의 신분은 ‘남편’으로 바뀐다.
“남편 첫 인상이요? 얼굴 뒤에 후광이 보였어요.(웃음) 한 달 뒤 광주에서 열린 오픈대회에서 또 만났는데, 신랑이 ‘네가 다크호스야?’라며 먼저 말을 걸어왔죠. 그리곤 반년 안돼서 제 남자친구가 됐어요.”
박승칠 원장이 그랬던 것처럼, 정영화에게도 임윤미의 재능이 남달라 보였단다. 정영화는 곧바로 박석준 당시 서울당구연맹 이사(현 JBS 대표)에게 ‘여자친구’를 소개해줬고, 그 계기로 임윤미는 2001년, 20살에 정식 당구선수가 됐다.
▲“2006년, 포켓볼 중흥기회 놓쳐 아쉬워” “김가영이 라이벌? 친한 동생”
당구선수가 된 임윤미는 곧 국내 여자 포켓볼 강자로 떠올랐다. 특히, 2000년대 초중반 김가영의 대만진출 기간 중엔 그와 견줄 상대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나가는 대회마다 입상이 따라왔다. 하지만 이는 달리 해석하면 여자 포켓볼 선수층이 그만큼 엷었다는 반증이었다.
“2005년엔 큰 아이 임신 중에도 대회에 나갔어요. 저마저 큐를 놓으면 한국 여자 포켓볼이 사장될 것만 같았거든요. 이듬해 아이가 태어나자 대회 출전이 더 힘들었죠. 전국대회 우승상금이 적었어요. 대전에서 남편과 함께 클럽(포켓볼전용)을 운영하지 않았다면, 선수생활 접을 뻔 했어요.”
이후 김가영이 국내로 복귀했다. 또 한국 당구 시장을 눈여겨본 ‘드래곤프로모션’도 들어왔다. 드래곤프로모션은 2006년 초부터 자넷 리를 비롯 일본 포켓볼 선수들을 초청해 한국 선수들과의 이벤트 경기를 개최했다. 이 경기는 TV로 중계됐고, 자넷 리를 비롯, 차유람, 김가영 등이 대중의 관심대상으로 급부상했다.
“한국에 포켓볼 중흥기가 오는 줄 알았어요. 저희 대전 클럽만 하더라도 손님이 크게 늘었죠. 하지만 얼마 후 드래곤프로모션이 한국을 떠나자 포켓볼 열기는 금방 식더라고요. 그러면서 3쿠션이 크게 부상했어요. 상황이 예전으로 ‘리셋’ 혹은 더 악화된거죠. 김가영이란 대(大)선수가 있음에도 (포켓볼 흥행)실패했다는 게 이해가질 않고, 많이 아쉬워요.”
임윤미는 지금도 김가영을 만나면 가끔 당시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1살 터울의 임윤미(36)와 김가영(35)은 살가운 언니-동생 사이란다.
“가영이와 라이벌이요? 하하. 승부에선 서로 핏대를 세우지만, 사석에선 웃으며 속내 터놓는 친한 동생이에요. 그런데 요즘엔 만나면 할 이야기가 별로 없어요. 가영이는 아카데미(김가영포켓볼아카데미) 등 일들로 바쁘고, 저는 삶의 포커스가 아무래도 아이들에게 맞춰 있잖아요. 하하.”
임윤미는 "강했던 과거의 제 승부욕이 2017년 끝자락에 되살아났다"면서 "2018년이 제 당구인생의 제2막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당구선수 정영화의 아내, 하은(12살)‧하늘(5살) 두 딸의 엄마 임윤미가 궁금했다.
“평범한 아내이자 엄마에요. 아이들은 엄마아빠를 닮았는지 당구에 재능도 보이네요. 하늘이(둘째 딸)는 당구선수 할 거라고 매일 말해요. 하하”
임윤미는 “자녀들의 성장이 기특하고 반갑다”면서 “주부이기에 선수로서 많은 걸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이 이젠 덜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계랭킹 20위권에 진입해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임윤미는 (지난해 11월)‘2017 여자 포켓 9볼 세계선수권’(이하 세계선수권) 16강에 진출했다. 비록 경기는 세트스코어 5:9로 패했지만, 그는 “오랜만에 즐겁게 임한 대회였다”고 말했다.
“최근 3~4년간 진지하게 (선수생활)은퇴를 고민했습니다. 심지어 (지난해)11월 까지도요. 당구에 대한 흥미를 잃었죠. 그런데 (11월)세계선수권 가기 전에 꾼 꿈 때문에 잃었던 당구 열정이 되살아났어요. 제가 그 대회 우승을 했는데 굉장히 기뻤어요. 나중에 꿈인걸 알았지만, 깨기 싫을 정도로요.”
승부욕에 불타던 ‘20대 초반의 임윤미’는 그렇게 10여년 뒤에 부활했고, 지난 시즌을 랭킹 2위란 좋은 성적으로 장식하며 끝냈다.
“2017년은 느낀 게 참 많은 한해였습니다. 다시 불타오를 줄 몰랐던 당구 열정이 되살아났고, 13년 결혼생활을 한 남편을 선수로 한번 더 바라본 해이기도 해요. 아이들도 많이 성장했고요. 하하.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2018년은 임윤미의 당구인생 제2막이 펼쳐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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