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랭커는 무조건 32강…네번만 이겨도 결승 “100m 경주할 때 30m앞에서 출발하는 셈” 100위권선수, PPPQ부터 최소 6승해야 32강 불합리한 랭킹포인트…톱시드는 출전만해도 8점 잇단 초청대회 신설로 3쿠션월드컵 위상 ‘흔들’
기사입력:2018.07.26 08:01:01
최종수정:2018.07.26 11:44:11
<시리즈 순서>
①세계 3쿠션 ‘별’들이 펼치는 최고무대
②‘세계 최고’ 무색한 동호인대회 수준 상금
③톱랭커 위한 ‘철밥통’ 시드
세계캐롬연맹(UMB‧회장 바르키)이 주관하고 연간 5~7회씩 열리는 ‘3쿠션월드컵대회’(이하 3쿠션월드컵)는 세계3쿠션선수권대회(이하 세계선수권)와 더불어 3쿠션 최고권위 대회다.
하지만 3쿠션월드컵 실상을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점도 적지 않다. 동호인대회 수준의 상금부터 새로운 스타 출현을 가로막는 ‘철밥통’ 시드, ‘선착순’ 대회 참가 시스템까지. 더욱이 최근엔 각종 초청대회로 인해 3쿠션월드컵 대회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러한 민낯은 ‘3쿠션월드컵=세계 최고 3쿠션 무대’라는 명성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3쿠션월드컵의 허(虛)와 실(實)을 짚어본다.
국내는 물론 세계무대에서도 정상급에 속하는 선수들이 줄줄이 국내 대회 첫판에서 짐을 싼 것이다.
압권은 3월 말 ’인제 오미자배 대회’였다.
직전 포천대회 우승(허정한) 준우승(김행직) 공동 3위(조명우) 3명이 모두 128강(김행직 조명우)과 64강(허정한)에서 떨어졌다. 이들은 당시 국내 랭킹 1~3위였다. 조명우는 랭킹 128위 전성일(전북)에게, 김행직은 127위 성상은(경기)에게 각각 패했다. 허정한을 64강전서 돌려세운 선수는 62위 박광열(경기)이었다.
◆ 톱랭커는 무조건 32강…‘철밥통’ 시드권
국내 대회에서 정상급 선수들의 ‘조기탈락’은 이젠 더 이상 ‘이변’이 아니다. 무엇보다 선수들의 실력이 상향평준화됐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 톱랭커에 대한 시드권은 128강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정상급 선수도 ‘아차’하면 탈락한다.
현 국내랭킹 1위 강동궁은 지난 3월말 인제오미자배 우승 인터뷰에서 “한국 3쿠션은 춘추전국시대다. 어느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기량이 상향평준화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UMB(세계캐롬연맹) 3쿠션월드컵에서도 톱랭커들의 조기탈락이 가능할까?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3쿠션월드컵에는 149명이 참가한다. 이 가운데 1~14위까지 톱랭커들은 기본 32강을 보장받는다. 이들 톱랭커는 다른 선수들이 ‘최대’ 4번의 예선(PPPQ-PPQ-PQ-Q)을 거쳐 32강 본선에 올라오면 그제야 첫 경기를 치른다.
이들 톱랭커는 단 네 번(32강-16강-8강-4강)만 이기면 결승에 진출한다.
이에 비해 중하위권 선수들은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32강에 오를 수 있다. 통상 세계랭킹 100위권 안팎 선수들이 해당되는 PPPQ 출전자는 8연승을 거둬야 안정적으로 32강에 올라간다. 60~90위권이 주를 이루는 PPQ는 6연승을 해야한다.
즉, 중위권 아래 선수들의 32강 진출과 상위권 입상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3쿠션월드컵에서는 최근 국내대회의 ‘고상운 우승’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없다. 고상운은 ‘대한당구연맹회장배 전국당구대회(춘천)’에서 512강부터 무려 9연승을 달린 끝에 우승, 국내 당구계에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다.
국내랭킹 50~100위권인 A선수는 “3쿠션월드컵에서 PPPQ권 선수들이 8연승해서 32강에 올라가는 것은 1년에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일이다. 설사 32강에 올라가더라도 체력이나 심리적으로 극도로 피곤한 상태여서 제 실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위권 선수가 한두 대회에서 반짝할 수는 있어도 이를 2~3년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현 시드제에서는 새로운 스타가 나올 수 없다”고 단언했다.
경기연맹 소속 B선수는 “4대천왕 등 톱랭커들의 실력을 인정한다. 그러나 3쿠션은 경기당일 자신의 컨디션, 테이블상태, 상대선수 컨디션 등 변수가 많아 상위랭커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며 “그런 측면에서 톱랭커들에게 32강 시드를 보장해주는 것은 지나친 혜택”이라고 말했다. 이 선수는 이러한 불합리한 점 외에도 대회 권위를 떨어뜨리는 ‘선착순 참가’ 등을 이유로 아예 3쿠션월드컵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해 국내에서 열린 "청주 직지 3쿠션 월드컵"
◆8연승해야 8점 vs 첫판서 탈락해도 8점…‘불합리한’ 랭킹포인트
3쿠션월드컵의 불합리한 랭킹포인트는 톱시드권자에 대한 ‘32강 보장’과 동전의 앞뒷면 사이다.
3쿠션월드컵의 랭킹포인트는 우승 80점, 준우승 54점, 4강 38점, 8강 26점, 16강 16점, 32강 8점순이다. 문제는 톱시드권자들은 대회에 출전만 해도 32강에 해당되는 8점을 얻는다는 점이다.
1년에 3쿠션월드컵이 6~7회 열리는 걸 감안하면, 톱시드권자들은 대회에 참가만 해도 48~56점을 얻는 셈이다. 이는 현재 세계 랭킹 52위인 이승진(대구‧56점)과 62위 선수(48점) 포인트와 맞먹는다.
반면에 PPPQ 출전자들이 8점을 따기 위해서는 8경기를 거의 모든 경기를 승리로 기록한 이후에 32강 본선으로 올라가야 한다.
지난해 7월 이후 6차례의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선수 C(세계랭킹 100~150위)의 예를 들어보자. 이 선수는 이 기간에 Q(5점)2회 10점, PQ(4점)3회 12점, PPQ(3점)1회 3점…, 이렇게 6회에 걸쳐 차곡차곡 쌓은 점수가 불과 25점이다. 이 선수 랭킹은 여전히 100~150위권이다.
중하위권 선수들이 3쿠션월드컵에서 높은 랭킹포인트를 따내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욱이 3쿠션월드컵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순회하며 열린다. 중위권 아래 선수들이 용품업체 등 외부 후원 없이 외국 3쿠션월드컵에 출전하면서 랭킹포인트를 쌓는 것은 힘들 수밖에 없다.
지방연맹의 한 선수는 “4대천왕 등 톱시드권 선수들이 오랜기간 세계 최고실력을 유지해온 점은 당구선수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해도 그들에게 ‘땅 짚고 헤엄치기’식 시드권 혜택을 주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당구용품업체 대표 K씨도 “현 UMB 3쿠션월드컵 시드제 및 이에 따른 랭킹포인트 부여는 몇몇 상위랭커에게만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도”라며 “이는 100m 경주할 때 상위권선수들이 30m앞에서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연히 국내 중위권 선수들의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올해 3쿠션월드컵 개최 횟수는 줄거나 그대로인데, 이벤트 성격 초청대회만 급증하고 있다. 올해 3쿠션월드컵은 6회로 작년보다 1회 줄었다. 2019년에는 더 심하다. 3쿠션월드컵 6번에 이벤트 대회는 10회 이상이나 예정되어 있다. 사진은 2018년 7월 이후 UMB(세계캐롬연맹)가 주관하는 대회 일정.(사진=UMB 홈페이지 캘린더 캡쳐)
◆초청대회에 뒷전으로 밀려나는 3쿠션월드컵
세계선수권과 함께 세계 최고 무대인 3쿠션월드컵 위상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들어 3쿠션월드컵이 점차 뒷전으로 밀리는 상황이다. 3쿠션월드컵 횟수는 줄거나 그대로인데, 이벤트 성격 초청대회만 급증하고 있다.
UMB는 올해 초 초청대회를 대폭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 동안 3~4회 열리던 초청대회가 올해만 8번이나 열린다. 우승상금 1억 6천만원의 ‘맥크리챔피언오브챔피언스’, 새로운 경기 방식의 ‘3쿠션챌린지월드마스터즈’, ‘클루망스컵’ 등이 새로 생긴 초청대회다.
반면 올해 3쿠션월드컵은 6회로 작년보다 1회 줄었다. 2019년에는 더 심하다. 3쿠션월드컵 6번에 이벤트 대회는 10회 이상이나 예정되어 있다.
이들 초청대회는 상금에서도 3쿠션월드컵과 큰 격차를 보인다. 최근 열린 3CC마스터즈의 우승상금은 4만 달러(한화 약 4,500만원), 8월 초 열리는 ‘맥크리3쿠션챔피언오브챔피언스’의 우승상금은 무려 15만 달러(한화 약 1억 6천만원)이다. 3쿠션월드컵 우승상금 16,000유로(한화 약 2,000만원)에 비해 최대 8배 가량 많다.
물론 큰 상금이 걸린 대회가 자주 열리는 것은 당구발전을 위해 긍정적이다. 그러나 새로 생긴 이벤트 대회는 출전선수가 제한적(20~30명)인 초청대회다.
이런 이유로 당구계에서는 UMB가 정작 정규투어인 3쿠션월드컵보다는 이벤트대회 개최에 더 매달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객이 전도됐을 뿐 아니라, UMB가 단지 몇몇 선수만을 위한 단체가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당구선수 출신 당구계 인사 D씨는 “고 김경률을 시작으로 최성원 강동궁 조재호 김행직 허정한 등 우리 선수들이 3쿠션월드컵에서 우승할 때 당구팬들이 얼마나 기뻐했나”라면서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3쿠션월드컵 권위와 가치가 떨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많은 당구선수와 당구팬들이 반기는 3쿠션월드컵으로 탈바꿈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시리즈 끝> [samir_@mkbn.co.kr]
지난 5월 열린 "호치민 3쿠션 월드컵"
지난 5월 열린 "호치민 3쿠션 월드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