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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포켓기대주’ 김보건 “모든 대회 입상하고 싶다”

[한국당구 미래]③16세때 전국대회 우승, 최연소 우승 기록
TV 출연해 ‘포켓신동’ 별명 “이젠 신동이미지 깨고 싶다”

  • 기사입력:2018.01.12 11:06:00
  • 최종수정:2018.01.15 16: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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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포켓신동"에서 "포켓 유망주"로 변모한 김보건이 당구 큐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MK빌리어드뉴스 이상연 기자] 한국 여자포켓볼 전국대회 최연소 우승자는 누굴까. 올해 만 18세인 김보건(경북연맹)이다. 13~14세 때 TV방송 ‘스타킹’에서 대선배 김가영 앞에서 예술구를 선보이던 ‘포켓 신동’ 김보건. 이어 2015년엔 16세의 나이로 ‘대한체육회장배’ 정상에 오르며 신동을 넘어 한국 여자 포켓볼 ‘초특급 유망주’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김보건은 이후 전국대회 정상 언저리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던 손목 통증이 점차 악화됐기 때문이다. 대회에 출전할 때면 항상 보호대로 손목을 감싸야만 했다. 이 가운데 그는 지난해 8월 ‘대한당구연맹회장배’ 준우승 등 성적을 올리며 한국여자포켓볼 랭킹 6위로 2017년을 마감했다.

지난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장프로포켓하우스’에서 만난 김보건의 손목엔 보호대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4개월 전 문석 삼촌(장문석 포켓볼 선수‧장프로포켓하우스 대표)에게 스트로크를 배운 뒤 손목 통증이 크게 줄었다”며 활짝 웃었다. 이어진 인터뷰에선 “올해에는 나가는 전국대회마다 트로피를 수집하겠다(입상하고 싶다)”는 당찬포부를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를 랭킹 6위로 마쳤다. 만족할 만한 성적인가.

=(단호하게)아니다. 물론 좋은 성적이지만, 더 높이 오르고 싶다. 최근 3년간은 악화된 손목부상 탓에 연습량이 크게 줄어 만족할 만한 경기력을 보인적이 손에 꼽는다. 다행히 문석 삼촌(장문석 선수)을 만난 뒤 손목에 부담이 덜한 스트로크를 배웠다. (김보건은 장문석 선수의 배려로 4개월 전부터 장프로포켓하우스를 연습장 삼고 있다) 그래서 올 시즌에 거는 기대가 크다. 오랫동안 유지한 긴 헤어도 경기에 방해될까바 단발로 싹둑 잘랐다. 하하.

▲어릴 때 TV에 소개된 ‘포켓 신동’ 이미지가 강하다. 신동 꼬리표를 떼고 싶지 않나.

(김보건은 2011년 ‘생활의 달인’(SBS), 2012~2013년 ‘스타킹’(SBS)과 ‘불멸의 국가대표’(채널A) 등 TV방송에 출연해 ‘포켓신동’으로 유명세를 탔다. 특히 스타킹에선 김가영, 김종석 서울당구연맹 부회장, 예술구 세계 챔피언 플로리안 베놈 퀄러 등과 예술구 시범을 보이며 주목받았다.)

=‘당구신동’, 감사한 타이틀이지만, 저는 신동이란 생각을 단 한번도 한 적 없다. 남들보다 빨리 시작해 빨리 실력이 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제 신동 나이는 지났다. 하하. 신동으로 TV출연할 땐 즐거웠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생활의 달인’을 보고 일기에 “나중에 꼭 저기에 나가겠다”고 적은 적 있는데, 그게 2년 뒤 실현됐을 때 놀랍고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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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인터뷰 후에 이어진 사진 촬영에서 김보건이 큐를 손에 쥐고 미소를 짓고 있다.


▲‘포켓신동’이 당구를 시작한 계기는.

=초등학교 4학년인 2010년에 당구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권유로 시작했다. 아버지는 3쿠션 동호인이셨지만, 세계적으로 저변이 넓고 상금 규모도 큰 포켓볼에 주목하셨다. 큐 잡고 한달만에 나간 ‘황득희배 당구대회’에서 3위에 올랐는데, 그때 박신영 선생님(2000년대 초반 세계포켓볼대회 8강 등에 오른 한국 포켓볼 제1세대 선수)을 만나 그 분이 운영하시던 경기도 일산의 클럽에서 체계적으로 당구를 배웠다. 이후 7~8년간 박신영 선생님 제자로 있었다.

▲생애 첫 우승은.

=2011년 ‘허리우드배 제2회 전국학생당구대회’ 포켓8볼 초중등부 우승이다. 당시 3~4살 많은 언니오빠들과 겨뤘다. 어린 나이였고, 부모님 손에 이끌려 나간 대회라 우승의 기쁨보단 대회가 끝났다는 단편적인 감정이 더 컸다. 이후엔 전국대회 학생부와 일반부(선수부)에 출전했고, 꽤 많은 상을 받았다.

▲큰 기대를 받으며 2013년에 선수등록 했지만, 이후 2년여간 슬럼프에 빠졌다고.

=14~15살때였다. 주변의 기대 등이 부담이 됐나보다. 경기에만 나가면 제 실력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2년 가까이 ‘예탈’(예선탈락) 행진이었다. 그러다 2014년 말에 광주에서 열린 전국대회 4강에 오르며 자신감을 찾았고, 이듬해엔 ‘대한체육회장배’에서 우승까지 했다.

▲생애 첫 전국대회 우승의 순간, 또렷이 기억날 것 같은데.

(16살 김보건은 ‘2015 대한체육회장배’ 여자포켓10볼 결승에서 초반 우세에도 불구, 세트스코어 6:4에서 3개 세트를 헌납하며 6:7로 역전을 허용했다. 하지만 김보건은 침착함을 유지하며 내리 2세트를 가져가는데 성공, 세트스코어 8:7로 생애 첫 전국대회 우승컵을 들었다)

=샷 하나하나 모두 기억난다. 그런데 우승 순간엔 정신이 멍해져 눈만 껌뻑거렸다. 기뻐 환호할 줄 알았는데, 우승이 믿기지 않았나 보다. 할머니가 전화로 우승 소식을 들으시더니 우셨다.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그때부터 ‘당구요정’이란 별명도 생겼다.

=(크게 웃으며)정말 부끄럽다. 요정이라. 제 실제 성격과는 정반대의 별명이다. 어린 나이에 선수생활을 시작해 참는 법을 많이 배웠다. 선수들이 거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지 않나. 그래서 그런지 털털하고 애교도 없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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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올해 전국대회 트로피를 수집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힌 김보건이 스트로크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런 환경이었다면 마음 터놓을 상대가 부족했을 것 같은데.

=우진 언니(이우진 포켓볼 선수‧19) 혜주 언니(진혜주 포켓볼 선수‧21) 등 제 또래 선수들과 두루 친하다. 하지만 선수로서가 아닌 평범한 10대 김보건으로 이야기를 나눌 친구는 부족했다. 그래서 2년 전 고등학교에 입학해 생전 처음으로 교복을 입었다. (김보건은 2016년 3월 숙명여고에 입학해 10개월간 학교에 다녔다. 이전까진 중학교도 다니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행히 학교에서 소중한 친구들을 만났다. 제 기분을 깊이 이해해주는 좋은 친구들이다. 요새 대회가 많아 자주 못봤는데, 보고싶다. 제 가장 큰 응원군이기도 한데, 올해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올해 목표는.

=지난해엔 결승에 딱 한번밖에 못 올랐다.(지난해 8월 ‘대한당구연맹회장배’ 준우승. 당시 결승에서 접전 끝에 박은지에게 세트스코어 5:8로 패배) 올해에는 출전하는 모든 전국대회에서 입상 트로피를 받고 싶다. 그리고 지금까지 별 생각없이 당구선수로만 쭉 살아온 제 자신을 잠시 젖혀두고, 제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도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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