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스누커 대들보’ 황철호 “미치도록 당구치고 싶다”
“훈련장 입주 건물 팔리면서 연습할 곳도 없어 막막”
“이대규는 스누커 미래…사회 알려주는 당구지도자 목표”
음대생 꿈꾸다 당구선수로 “세계적인 종목 스누커 선택”
황철호 선수가 지난 10월 ‘전국체전’에서 샷을 준비하고 있다. [MK빌리어드뉴스 이상연 기자]한국의 ‘차세대 스누커 에이스’로 급부상 중인 이대규. 그는 MK빌리어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스누커를 배울 때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다”고 말했다. 그 ‘선생님’이 바로 황철호(경기‧41)다.
2002년 선수등록한 황철호는 그간 전국대회 스누커 및 잉글리시빌리어드(이하 잉빌) 종목 정상에 수차례 오른 인물이다.
(스누커는 큐볼(수구)로 15개의 빨간공, 6개의 컬러볼을 6개의 포켓(구멍)에 넣는 당구경기이며, 잉글리시빌리어드는 이 스누커 테이블에서 3개의 공으로 행하는 당구종목을 말한다. 잉빌 득점방법은 수구로 제1‧제2적구 포팅(포켓에 넣는 것), 제1‧2적구 타격 등이 있다. 캐롬(1쿠션‧3쿠션), 포켓볼 득점방식이 합쳐진 당구게임이라고 보면 되며, 보통 스누커 선수들은 잉빌 선수도 겸업한다.)
황철호는 태극마크를 달고 ‘스누커 불모지’ 한국의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그의 ‘2009 홍콩 동아시안게임’ 잉빌 금메달은 한국 잉빌 사상 첫 메달이자, 현재까지 한국 잉빌의 가장 큰 성적으로 남아있다. 이어 2010년엔 ‘광저우 아시안게임’, 올해 9월 ‘월드게임’ 등에 차례로 출전하는 등 어느덧 한국 스누커계의 대들보가 됐다.
이런 그를 지난 ‘2017 강진청자배 전국당구대회(이하 강진청자배) 현장에서 만났다. 당시 그는 강진청자배 잉글리시빌리어드(이하 잉빌) 우승을 차지한 직후였다. 지난 10월, ‘스누커&잉빌 그랑프리 제3차’(이하 그랑프리) 이후 두 달만의 잉빌 우승이었다.
우승축하 인사를 건네자 황철호는 “고맙습니다. 올해 마지막 종합당구대회 우승이라 기쁘네요”라고 소감을 밝히더니 “그런데 연습을 많이 못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어 한국 스누커 선수로 살아가는 솔직한 심정과 그의 최종목표까지 이야기를 풀어냈다.
▲“올해 컨디션 최악...신기하게 성적 따라와”
인터뷰한 날(지난 14일), 황철호의 올해 성적을 되짚어봤다. 당시 기준으로, 5월 ‘그랑프리 제1차’ 스누커 및 잉빌 우승, 8월 ‘대한당구연맹회장배’ 스누커 3위, 10월 ‘그랑프리 제3차’ 스누커 및 잉빌 우승 등 ‘한국 스누커 대들보’로서 손색없는 성적이었다. 또한 스누커 국내랭킹 3위, 잉빌은 1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올 한해 컨디션이 최악이었다”고 고백했다.
“건방져 보이겠지만, 사실 이번 대회(강진청자배) 제 경기력을 평가한다면 평소의 60%밖에 발휘하지 못했어요. 공이 컨트롤이 잘 안돼요. 연습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이죠. 이 대회도 이재헌(광주) 선수가 운영하는 광주의 당구클럽에 들러 2일 연습하고 출전했어요. 하하. 정말 공치고 싶습니다.”
지난 달 11월 중순, 그가 속한 경기당구연맹 스누커 훈련장이 사라졌다. 연습장이 있는 건물이 팔리면서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 당시 황철호는 “허탈하고, 막막하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올 초까지만 해도 태국, 베트남, 미얀마 등 스누커가 활성화된 나라로 전지훈련 많이 나갔죠. 지금은 현실적으로 힘들어요. 계약된 체육회도 없고, 후원도 전무한 상황이거든요. 스누커 대회도 많지않아 감각 유지하려고 얼마 전(지난 10일) ‘평택 슈퍼오닝 풀투어’(포켓볼 대회)도 출전했어요. 포켓대회는 연간 한 번 정도 나가는데, 10년만에 본선 8강에 올랐네요. 하하”
황철호 선수는 MK빌리어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훈련장이 없어져 연습을 많이 못해 힘들다”고 심정을 털어놨다. 지난 달 중순, 그가 몸담고 있는 경기당구연맹 스누커 훈련장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홍콩 동아시안게임’ 금메달 “영광의 순간”
시간을 돌려 지난해 9월. 황철호는 UAE(유럽아랍에미리트) 알-푸자이라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안 빌리어드 챔피언십’ 잉빌 부문 은메달을 땄다. 아쉽게 결승에선 인도의 시다르 파릭에게 4:2로 패했지만, 그는 “오랜만에 얻은 좋은 성적”이라며 만족해했다.
이날 그의 은메달은 한국당구가 잉빌 종목에서 9년만에 얻은 국제대회 메달이었다. 이전 입상은 2009년 ‘홍콩 동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주인공은 역시 그였다. 황철호는 9년 전 홍콩에서의 기억을 “기쁨 가득했던 영광의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2009년 12월 5일. 홍콩에서 한국당구계에 예상치못한 낭보가 날아왔다. 황철호가 ‘홍콩 동아시안게임’ 잉빌 남자 개인 결승전에서 개최지 홍콩의 에릭 리를 세트스코어 3:1로 꺾고, 한국 잉빌 사상 국제대회 첫 메달, 그것도 금메달을 따낸 것.
“사실 (대회 입상이)힘들거란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하하. 연습장도, 선수층도 변변찮은 종목에서 성과가 나오겠냐는 의문들이 제가 이를 악물게 한 원동력이었죠”
▲‘트럼펫 주자’ 꿈꾸다 당구선수로…“세계적인 종목 스누커 선택”
“스누커 선수, 힘들지 않나요?”
황철호가 자주 받는 질문이다. 그는 왜 캐롬, 포켓볼 등이 아닌 국내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스누커를 택했을까.
황철호의 원래 꿈은 ‘트럼펫 주자’였다. 중학생때부터 음대생을 꿈꾸다 10년만에 ‘이길이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알고 다른 길을 찾았다. 그때 당구가 눈에 들어왔다. 21살부터 취미로 즐기던 당구를 직업으로 삼고 싶었다. 그의 나이 26살 때이다.
“우연한 기회에 한상희 스승님(스누커 선수)을 만났어요. 또 2002년 박승칠 당구아카데미(서울 영등포구)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스누커에 대해 알게 됐죠. 세계적인 시장을 가진 대중적인 스포츠란 말을 듣곤 기왕 시작하는 당구, 세계적인 종목을 택하자고 마음 먹었죠.”
스누커는 캐롬(1쿠션‧3쿠션 등)이 발달한 한국에서 생소한 종목이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가장 인기 있는 당구종목이다. 유럽권, 특히 스누커 본고장 영국에선 축구, 승마와 함께 황실의 3대 스포츠로 꼽힌다.
영국의 스누커 프로리그인 ‘월드 스누커’는 월 1회꼴로 치러지는데, 한 개 대회에 억대 우승상금이 걸려있다. 또한 리그 랭킹 10위권 선수들의 연간 수입은 수십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아시아에선 중국, 태국, 이란 등 선수들이 프로 스누커로 진출해 활약 중이다. 중국의 경우, 오래전부터 당구 유망주들을 선별해 체계적으로 스누커 선수로 육성하고 있다. 스누커가 ‘돈이 되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당구계 사정은 세계적인 흐름과 달랐다. 수많은 전국대회 우승컵을 들었고, 국가대표로도 활약한 ‘스누커 선수’ 황철호, 아니 스누커 자체가 주목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한국에선 스누커가 ‘찬밥취급’ 받는 게 현실입니다. 스누커 테이블이 있는 곳도 손에 꼽아요. 부산, 충남, 서울 영등포 등에 2대씩 놓인 게 전부입니다. 지금 사는 곳(경기도 수원)을 떠나 다른 지역에 정착하기도 힘들어요. 비용적인 문제도 있지만, 그곳에서 이미 연습하던 선수들에게 폐가 될까봐요. 선수층도 열악하죠. 전국대회 16강에 오른 선수들이 제대로 활동하는 스누커 선수들 전부라고 봐도 되요”
황철호 선수의 스승 한상희 선수(왼쪽), 제자인 이대규 선수(오른쪽)가 한데모여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황철호 페이스북)▲‘제자’ 이대규? “한국 스누커 미래” “지도자로 성공하고파”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 놓였지만, 황철호에겐 한 가지 ‘희망’이 있다. 바로 그의 제자인 이대규다. 지난해부터 부쩍 성장한 이대규는 한국 최초로 영국 ‘월드 스누커’ 진출에 가장 가까운 선수라고 평가받는다.
“대규(이대규)에게 한국 스누커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규는 해외 전지훈련도 꾸준히 하고 있고, 실력도 쑥쑥 자라고 있어 한국 선수들 중 그 누구보다 프로 스누커 진출을 가능성이 높아요.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에 스누커가 알려지는 계기가 되겠죠.”
이대규의 이야기를 하며 황철호는 “제 진짜 꿈은 학생을 가르치는 좋은 당구지도자가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말한 ‘좋은 지도자’란 무엇일까.
“학생 선수에게 ‘당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알려주려고요. 본업인 당구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사회생활을 두루 익히는 것도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큐를 놓더라도 다른 길을 찾아가도록 바탕을 깔아주는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인터뷰 말미에 황철호에게 “당구선수의 길을 후회하는가”란 질문을 던졌다. 그는 “절대 그런적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당구가 그리고 스누커가 제게 잘 맞아요. 이유요?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이죠. 예전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대신 국내 스누커 환경이 나아질 것이란 희망만 지금보다 더 커졌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렇고 전국 모든 스누커 선수들이 바라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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