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쿠션 ‘4대 천왕’ 야스퍼스 "내가 수비형 당구? 물론"
[MK빌리어드뉴스 창간] 딕 야스퍼스①
“‘인간줄자’로 불러주는 한국팬들 고마워요”
“어려운 상대는 4대 천왕, 그리고 자네티”
당구만큼 축구, 테니스 등 다양한 구기 종목 관전을 즐긴다는 야스퍼스.MK빌리어드뉴스는 월드컵 22회, 세계선수권 3회 우승 기록의 야스퍼스에게 최근의 호치민월드컵, 경기력과 전술, 가족 이야기까지 고루 질문했다. 일정이 빡빡해 유럽을 떠날 수 없던 그와의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됐다. 아쉽게도 포르투월드컵 개최 이전이어서 32강전(최완영 선수에 패)에 대한 내용은 담겨있지 않다.
2017 4월 룩소르 월드컵에서 큐를 들고 있는 야스퍼스.(사진제공=코줌코리아)야스퍼스의 경기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정확성’에 놀란다. 마치 큐가 아니라 요술 지팡이라도 휘두르는 듯, 공을 의도한 곳에 배치한다. 바둑으로 따지면 알파고처럼 한 수 앞을 내다본 전략을 펼치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계산적’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적지않다. 그말을 야스퍼스도 동의할까? 대답은 간단명료했고, 뜻밖이었다. “내가 철저히 수비형(thorough defense player)이라고요?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는 상대에게 일부러 난구를 주는 선수로 본인이 자주 언급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선수라면 당연히 자신에게 유리한 포지션을 고민해서 전술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는 경기를 전술적 측면에서 분석하는 걸 좋아한다(I like to think about tactical aspects of the game)"면서 “다음 공이 어떻게 놓일 것이며 어떤 일이 발생할지 지켜보는 것을 즐긴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샷할 때마다 주어진 시간을 철저히 쓰는 선수로 유명하다. ‘인터벌의 제왕’이란 별명도 얻었다. 그는 부인하지 않았다. 이유는 항상 최고의 샷을 하려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어려운 상대와 상황을 맞았을 때 ‘컨트롤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는 게 롱런 비결이라고 했다. 특히 큐를 잡고 있을 때는 잡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야스퍼스는 “잡생각을 없앤다는 게 쉽게 들리겠지만, 나도 감정을 가진 인간인지라 사실 어려운 일”이라면서 “되도록 가슴을 차갑게 한 채로, 감정이든 공이든 큐든 모든 것을 제어하며 경기에 임하려고 노력한다”고 밝혔다.
▲최강 야스퍼스…그를 잡는 한국 선수들
당구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월드컵 22회 우승, 세계선수권 3회 우승 등 기록을 보면 야스퍼스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그가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는데, 바로 한국 선수 앞에 섰을 때다. 야스퍼스는 올해 두 번의 월드컵 32강에서 한국 선수들에게 16강행 티켓을 양보했다. 지난 5월 호치민월드컵 32강전에선 한국의 ‘헐크’ 강동궁에게 31:40으로 패했다. 얼마전인 7월 포르투월드컵에서도 ‘돌풍’의 주인공 최완영에게 32강에서 32:40으로 패했다. 지난해말 후르가다월드컵까지 포함하면 최근 큰 대회에서 잇따라 세 번 연속 한국 선수한테 무릎을 꿇은 셈이다.
야스퍼스는 “내가 봐도 호치민월드컵 성적은 실망스럽다”면서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야 한다는 점 자체도 부담이었고, 워낙 덥고 습해서 베트남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그런 외부 요인들을 차치하고서도 월드컵에서 내 실력을 최대로 끌어내지 못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에 앞서 후르가다월드컵(지난해 12월), 부르사월드컵(지난 2월), 룩소르월드컵(지난 3월)은 결승까지 갔으나 세 번 모두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그는 “각 월드컵 결승전에서 허정한, 쿠드롱, 산체스가 환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우승컵을 너그럽게 양보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결승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이미 성공적인 경기였다고 스스로 평가한다”고 말하면서도, 한국 선수들과의 경기 성적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는 말을 아꼈다.
▲‘4대 천왕’ 그리고 마르코 자네티
많은 선수가 가장 어려운 상대로 지목한 그에게도 까다로운 상대가 있을까. 야스퍼스는 “쿠드롱, 산체스, 브롬달이 나에게 매섭게 달려든 경기가 몇 번 있었다”며 “역시 이기기 어려운 상대”라고 했다. 그 다음은? 혹시 한국 선수 이름이 나오지 않을까 해서 추가 질문을 던졌다.
‘4대 천왕’만큼 어려운 선수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가장 먼저 마르코 자네티가 떠오른다”며 “실력만큼 인품도 좋은 선수”라고 평가했다. 언제 강한 상대를 만나더라도 지지 않을 준비가 돼있다는 첨언도 빠뜨리지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도 브롬달과의 경기였다. 야스퍼스는 “살면서 절대 잊을 수 없는 경기가 있다”며 “2008년 프랑스에서 열린 유러피안 챔피언십 결승전”이라고 돌아봤다.
이어 “상대는 2007년 한 해에만 월드컵에서 4회 우승을 기록한 ‘괴물’ 브롬달이었다”고 말했다. 야스퍼스는 당시 8이닝 만에 브롬달을 세트스코어 3:0으로 꺾었다. 세트당 15점씩이니 에버리지가 무려 5.625나 됐다. (45점/8이닝)
일상 속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야스퍼스.야스퍼스는 정확하고 간결한 스트로크 덕에 ‘사람 같지 않다’는 등 온갖 수식어를 갖게 됐다. 다양한 별명에 관해서 그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는 편인데, 한국 사람들이 나를 ‘인간 줄자’, ‘인간 각도기’라고 부르는 걸 알고 웃음이 났다”고 말했다. 또한 “즐겁고 과분한 일이다. 한국 팬들, 고마워요!”라고 전했다.
큰 기복이 없기로도 유명한 야스퍼스는 스스로의 진중함과 의지력을 비결로 진단했다. 그는 “나는 경기 도중 상승세, 하락세를 타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며 “하루는 잘 되고, 다른날은 엉망이고 싶지도 않다”고 운을 뗐다. 이어서 “스스로를 기복이 없는 사람이라 믿고 연습한 성과는 내 경기 성적을 보면 누구라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야스퍼스는 큐를 잡고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 평소 성격도 조용하고 사려 깊은 편이다. ‘인간 줄자’로 불리는 그이지만, ‘줄자’이기 전에 ‘인간’이기에 징크스도 있다. 경기에 임하기 전에 꼭 조용한 환경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어차피 경기 직전에는 다른 것에 집중하지 못하니 조용한 곳에서 안정을 취해야 그 경기가 잘 풀린다”면서 “도저히 안정을 취할 수 없으면 잔잔한 음악을 듣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2회에 계속>
[MK빌리어드뉴스 박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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